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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Sep 17. 2023

결국 귀찮아 죽겠...

https://groro.co.kr/story/5618



 이 글은 철저하게 변명이다. 더불어 자기 합리화이기도 하다. 어쩌면 최소한의 양심의 발로일 수도 있고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어쩔 수 없다는 너무나도 고전적인 핑계로 빠져나가려 하는 걸 수도 있다.



 같이 글을 쓰는 모임이 있다. 브런치에서 시작한 ‘라라크루’다. 어느덧 함께 한 시간이 1년을 넘어가고 있다. 많은 글을 쓰고 또한 많은 정보도 주고받았다. 글이라고 하는 하나의 매개를 바탕으로 함께 하는 동지 같은 사람들이다. 모임의 대장님이 있다. 크루들이 재미 삼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데 호칭이 굳어졌다. 여하튼 대장님의 모임을 이끌어 가는 역량이나 센스가 좋은 편이다. 그저 글쓰기에 국한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찾아 계속 제공해 주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쑥과 마늘 프로젝트’인데 단군 할아버지가 이 땅에 터 잡으시고 곰을 사람으로 맹글었는데 그 과정에 쑥과 마늘이 등장한다. 그렇다. 우리도 사람 한 번 돼 보자고 시작한 프로젝트다. 개인적으로 매일매일 실천할 수 있는 혹은 하고 싶은 과제, 목표, 계획 등을 공유하고 서로 응원하면서 사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모임 속의 모임이다.



 나의 처음 목표는 매일 걷기였다. 지난겨울이었던 거 같은데 3개월여간 열심히 걸었다. 주로 아파트 주변 산책로를 걸었고 너무 춥거나 눈 혹은 겨울비 등이 내리면 지하 주차장을 돌았다. 오늘 못 걸었으면 내일 두 배로 걷는 식으로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열심히 걸었다. 그렇게 3개월이란 시간을 보내고 났는데 사실 결과는 뭐 이렇다 하게 큰 변화는 없었다.



 그다음 프로젝트엔 내 목표가 뭐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는 소리다. 뭘 하긴 하겠다고 한 거 같은데 흐지부지 유야무야 세상에 없던 일처럼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이 세 번째 정도 되는 프로젝트인데 이번에 다시 걷기를 하기로 했다. 당시에 3개월을 다 걷고 나서 별 변화가 없었는데 돌아보니 잔병치례가 없었던 것 같다.



 최근에 이러저러 질병들이 자꾸 내 몸과 마음을 툭툭 치는데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그래서 오호라~ 걸으면 되겠구나! 걸으면 살겠구나 싶어 다시 걷기를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일을 마치는 시간이 늦어(처음에 실천에 옮겼을 때도 지금과 끝나는 시간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일 걷기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해서 매일 걷기를 조금 일찍 끝나는 날 걷기로 바꿔 매주 3일을 걷기로 했다.



 하지만 그마저 잘 되지 않았다. 걷기로 한 3일이 월, 수, 금요일이었는데 수요일은 요즘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인 ‘무빙’을 아내와 함께 봐야 돼서 걷기가 조금 그랬다. 무빙을 보는 수요일인 ‘무요일’엔 걸을 수가 없었다.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다시 시작한 걷기인데 드라마가 더 좋은가 보다. 인간이 이렇게 어리석다...(지가 어리석은 걸 인간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뻔뻔함이 대단하다.)



 전처럼 하루 미루면 다음 요일에 열심히 걸으면 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불과 6개월 정도 차이인데 이렇게 마음가짐이 다를 수가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 추운 겨울에도 아무렇지 않게 걸었는데 땀을 흘려도 상관없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걷는 여름에 이렇게 걷기 실천이 어려울 줄이야...



 그러는 와중에 참 고맙게도(?) 당장 해결해야 될 현실적인 상황이 생겨 버렸다. 하나는 집에 있는 오래된 책을 치워 버려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과학 공부를 시작해야 되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책을 책장에 적당히 꽂아 두고 자리가 없으면 앞에 뒤에 옆에 책을 쌓아 두는 그런 갬성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함께 살고 있는 그녀는, 나의 딸의 엄마인 그녀는 그걸 싫어했다. 그럼에도 같이 사는 남자의 성향을 존중하야 지금껏 그냥 뒀는데 아이가 커 가면서 기존의 물건들을 조금 정리하고 아이를 위한 물건으로 채우기 위해 결국엔 책장 속의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난 그 상황이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래서 싸우기도 했지만 별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아야 하고 잘 참아 주던 그녀가 다른 이유도 아닌 딸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니 마땅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나중에 집을 더 키워 방 하나를 아예 나만의 서재 혹은 작업 공간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 받아들이는 거 외엔 방법이 없었다. 별 수 없이 책을 정리하기로 했는데 오래된 책이라 도서관에 기부를 하려 해도 받아 주지도 않고 역시 오래된 책이라 당근에 올린다 한들 사 갈 거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버려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에 지금까지 한 번 정도 읽었거나 읽어야지 하고 박아 둔 책, 마지막으로 읽고 보내주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잔뜩 읽어야 하는 상황이 생겨 버린 것이다.



 더해서 과외교사로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현장의 변화 등에 의해 과학 수업도 시작해야 될 거 같아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과학 공부를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해야 되는 상황에 봉착해 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이라고 걷기를 해야 되는 게 맞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간사한 마음이 도무지 가만히 있지를 않고 계속 팔랑팔랑 귀를 흔들어 댔다.



‘야, 너 거 뭐냐 늦게 끝나고 오는데 그 시간에 걷고 뭐 하고 어~하다 보면 그냥 한두 시간 훅 지나가잖아. 그럼 글도 조금 써야 되고 책도 읽어야 되고 과학 공부도 해야 되는데 그거 할 수 있겠어? 그러니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걷기는 나중에 해.’ 아니 이런! 이렇게도 솔깃하고 합리적인(?) 악마의 속삭임이라니! 넘어가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어? 이거 아닌 거 같은데...) 그래서 우선 급한 불(정말 급한 불인 지, 뭣이 중한지 모르는 거 같긴 하지만)인 책을 읽어 버리기와 과학 공부를 하기로 했다.



 더해서 최소한의 양심과 다른 사람의 몸도 아닌 내 몸에 대한 걱정을 담아 걷기는 잠정적으로 중단하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생각날 때마다 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 일어서 있다 바닥에 엎드리는 형식으로 팔 굽혀 펴기, 플랭크, 스쿼트 등등등. 뭐든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걸 집에서 틈틈이 하기로 했다. 사실 그마저도 안 하고 싶은 마음이 솔직한 심정이지만(귀찮아 죽을 거 같다...) 거북목이 심해져 날개 뼈까지 아픈 지경에 이르렀다. 정말로 진짜로 살기 위해서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어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 버리고 과학 공부를 하며 어느 정도 상황이 수습이 되면 다시 굼뜨고 게으른 몸을 이끌고 기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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