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하는 늑대 Dec 29. 2023

300개의 씨앗

https://groro.co.kr/story/7457



 그로로와 만난 건 지난해 9월이다. 브런치에서 같이 글을 쓰는 분의 정보, 글 하나 써 올리면 커피 기프티콘 하나 준다는 말에 그럼 뭐 써 놓은 글 하나 복붙으로 올리지! 이게 그로로와 의 시작이다. 그때는 사실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할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체리피커처럼 기프티콘 하나 빼먹고 냅다 도망가려고 했는데 300개의 글을 올렸고 지금 글이 301번째 글이다.

 돌아보니 커피 기프티콘뿐만 아니라 잘 몰랐는데 꽤 괜찮은 스텐 컵도 하나 받았고 정확하진 않지만 네이버 페이도 한 두어 번 받았다. 스텐 컵은 생각보다 괜찮아 지금 현재 집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한 1번 컵으로 매일 쓰고 있다. 네이버 페이는 아이가 잘 먹는 부각을 시키는데 쓴 기억이 난다. 여하튼 이래저래 쏠쏠하게 잘 받아썼고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의도치 않은 식집사의 길을 열어 줬다. 사실 이 지점이 바로 그로로가 의도한 바다. 그 의도에 걸려들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쓴 건 아니고 식물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플랫폼임에도 불구하고 식물과 관련 없는 기존의 나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로로에 서식하며 간간히 진행되는 이벤트를 통해 곶감 빼먹듯이 받을 건 받아먹으며 지냈는데 이게 이게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식물을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동인은 역시 리워드!!! 요즘 다양한 앱을 통해 우린 생활 속에서 리워드를 받는데 그걸 통해 커피도 마시고 햄버거도 먹고 가끔 크게 피자도 먹는다. 그런데 그 어떤 리워드보다 보상이 크기도 했고 식물을 직접 키우면서 식물일기 비슷한 걸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여하튼 글쓰기를 통해 리워드를 받을 수 있다는 나름의 장점(작가가 꿈인 나에겐 이만한 장점도 없다.)으로 작용해 결국 팔자에도 없는 식집사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식물을 키우는 과정을 통해 식집사라는 타이틀도 한 번 달아보고 원했던 리워드도 받고(참고로 상품권이었다.) 더 나아가 이게 정말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는 전자제품인가 싶은 식물을 키우는 기계인 ‘틔운 미니’까지 이벤트를 통해 받았다. 아 하하하하하하하하, 표면적으론 누가 봐도 식집사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식집사가 아니라는 건 아닌데 식물을 키우고 대하고 정성을 쏟는 이런 지점에서 자세와 마음이 조금 애매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스스로는 딱히 인정이 되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을 키우는 이벤트인 ‘그로로팟’을 시즌 1부터 현재 시즌 3까지 계속 이어 오고 있다. 첫 시즌의 임파첸스는 나름 잘 키워냈고 지금도 중요한 건 죽지 않는 마음 뭐 이런 자세로 베란다에서 잘 버텨 주고 있다. 그에 반해 객원으로 참여하게 된 시즌 2는 라벤더를 키웠는데 시즌 1에 비해 강력한 도구인 틔운 미니를 활용했음에도 발아는 틔운 덕에 잘 시켰지만 이어지는 화분갈이 이후에 관리 미흡으로 결국 다 말려 죽여 버렸다...


 라벤더를 말려 죽이는 모습을 통해 아... 난 역시 식집사로 불리기엔 상당히 부족하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더불어 그런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 아내가 시즌 3을 신청할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하지 말라고 만류를 했는데 아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역시 리워드에 눈이 멀어 나도 모르게 신청서를 작성하고 말았다. 이런 불순한 의도를 갖고 시작하는 나보다 식물을 사랑해 마지않는 정말 순수한 마음의 식집사 분들이 해야 되는 그로로팟을 다시 시작하게 돼서 민망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뭐 이런 건 아니고 그냥 됐으니 택배로 그로로팟의 앙증맞은 꾸러미가 달려왔으니 풀어헤치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순수하다고 볼 수 없는 의도에 의해 시작한 식집사 생활도 생활이지만 사실 그로로에 오랜 시간 동안 머물게 된 주요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글쓰기 플랫폼보다 내 글을 인정해 줬기 때문이다. 3년 전에 혼자 글을 쓰기 시작해 지역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관련 강의 및 모임에 참여하면서 글을 쓰기도 했다. 이후에 브런치를 우연히 알게 돼 2년 조금 전부터 지금까지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서두에 언급한 대로 그로로를 만나게 됐는데 그야말로 글을 쓰기 위한 그리고 글로 인정을 받기 위한 플랫폼으로 시작한 브런치보다 더 내 글을 인정해 준 곳이 바로 식물을 키우는 그러니까 주主는 글이 아니라 식물 키우기의 공유를 통해 틔운을 팔아먹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그로로였다.


 물론 브런치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은 건 아니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브런치는 아무나 글을 써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뭐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냐? 그건 또 아니다. 다만, 약간의 작가 심사과정을 거치고 그 심사를 통과한 사람들만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올릴 수 있다. 그 심사에 한 번에 통과했는데 사실 지금까지 의지를 갖고 글을 쓸 수 있는 시작의 의미를 브런치가 시원하게 인정해 주고 열어 준 건 맞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글쓰기를 그냥 쓰고 마는 자기만족의 의미로 시작한 건 아니다. 나름 제2의 인생을 위해, 소위 글 밥을 먹고살 수 있기 위해 시작했는데 브런치는 이거 뭐 워낙 쟁쟁한 작가들이 많기도 하고 지금은 조금 바뀌었지만 근본적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돈이 지급되는 플랫폼은 아니었다. 그저 1년에 몇 번 있는 공모전에 응모에 당선이 되면 그걸 바탕으로 작가로서 한 단계 발돋움할 수 있는 그런 플랫폼이었다.


 글은 참 열심히 써 올렸고 그 안에서 서로 의지하며 같이 글을 쓰는 소중한 분들도 만났지만 사실 그게 다였다. 먹고살 수 있는 무언가가 주어지지 않았다. 전적으로 내 능력의 문제겠지만 여하튼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주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 보니 지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처음 생각과는 달리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그로로가 다가왔다. 그로로는 메이커가 써 올린 글을(각 플랫폼마다 글을 써 올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들이 조금씩 다른데 그로로는 메이커라고 한다.) 대상으로 이러저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일주일 그리고 한 달 정산을 통해 일정 부분의 응원금(글을 써서 받는 순수한 의미의 원고료일 수도 있고 해당 행위를 통해 그로로라는 플랫폼과 더불어 틔운이 홍보되는 결과에 따른 수수료로 볼 수도 있는데 응원금이라고 조금은 부드럽게 표현한 거 같다.)을 줬다. 이 응원금이 글을 쓰는 내 행위에 어느 정도의 정당성과 동기부여를 줬다.


 앞에서 이야기한 글 밥을 먹고살 수 있는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 여하튼 글을 써서 받는 원고료를 최저시급의 개념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지만 또 그렇게 계산을 해 본다면 법정 최저시급을 한참 밑돌지만 그럼에도 쓰고 있는 글이 어찌 됐든 어느 정도는 인정을 받고 있구나 하는 만족을 주는 건 사실이다.


 더불어 글을 써 올리는 플랫폼도 큰 의미에서 SNS와 다를 바가 없는데 난 소위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SNS로 인식을 잘 못하지만 전 국민의 SNS인 카카오톡도 상대적으로 늦은 2014년 이후에 시작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때까지 2G 폰을 썼기 때문에 카카오톡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일부 2G 폰도 카카오톡 정도는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의 2G 폰은 ‘쌩짜’ 그냥 전화와 문자만 되는 인터넷 한 번 연결할라치면 요금폭탄이 쏟아지는 그런 폰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잠깐 한 적은 있었다. 트위터는 뒤늦게 본 드라마에서 윤은혜가 너무 예뻐 트위터에 가입해 뭐 어떻게 하면 텍스트지만 한 두 마디 섞어 볼 수 없을까 하는 가당찮은 기대로 시작했는데 그렇게 한두 달 끼적거리다 끝났고 페이스북은 카페에서 일할 때 카페 홍보 좀 하자고 하는 사장님의 권유로 시작했으나 역시 그리 오래가진 못했고 그 카페를 그만두면서 죽어버린 채널이 돼 버렸다.


 2014년 이후에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했지만 유튜브도 한참 뒤부터 그러니까 정확히는 아내와 결혼해 같이 살기 시작한 2018년 이후부터 보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은 글을 쓰고 그 글을 홍보해 보고 싶은 마음에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죽어 있던 트위터(지금은 X)와 페이스북을 모두 살려 내가 쓴 글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으나 그 성과는 미미하다. 더 나아가 역시 쓴 글을 홍보하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와 카카오 티스토리도 시작했으나 역시 살았니? 죽었니? 물어봐야 할 정도로 그 파급효과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마당에 그로로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응원금도 주고 또 이 그로로라고 하는 세상에선 나름 이름이 난 메이커가 됐다. 그로로가 올해 2월 정도에 메이커에게 응원금을 주는 방식을 살짝 손봤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매달 ‘이달의 메이커’로 선정이 됐고 일주일 단위로 정산하는 공감스토리 30개 중에서 매주 1등을 했다. 더불어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그로로 측의 에디터들이 직접 뽑아주는 글에 선정되기도 했다.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면 그로로에 글을 올리는 메이커 중에 아마 처음으로 1만 뷰를 달성했을 것이고 이어서 2만 뷰, 3만 뷰도 최초로 달성했다. 이로 인해 웃기지도 않게 그로로 시스템의 오류를 찾아내기도 했다.(기억에 의하면 그로로 측이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2만 뷰를 달성해 시스템 상으로 설정해 놓은 최초 가용 범위를 넘어서서 약간의 오류가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그로로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메이커들은 알고 있는 그런 메이커가 됐다.


 기본적으로 자발적 아싸의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겐 상당히 생경스러운 상황을 매일 매주 접하고 있다. 앞으로 언제까지 그로로와 함께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부족한 내 글을 인정해 주고 제일 앞에 서서 나아갈 수 있게 응원해 준 그로로와 그런 세상 속에서 나름의 역량을 바탕으로 잘 뿌리를 내린 나 스스로 모두에게 ‘고맙고 칭찬해 상’을 수여하는 바다.


Thank you Groro! Happy new year!


 


매거진의 이전글 # 3rd 그로로팟, 프롤로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