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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11. 2024

산책? 드라이브? 데이트!

https://groro.co.kr/story/10542



 아내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일을 하고 나는 오후부터 밤까지 일을 한다. 괜찮은 것 같으면서 별로다. 아침 8시에 일어나면 세 가족 모두 나갈 준비를 한다. 아내는 아이의 간단한 아침을 챙기고 나는 먼저 씻는다. 씻고 나오면 아이는 아침을 먹고 있다. 그러면 아내가 씻으러 들어간다. 아이가 아침을 얼추 먹으면 세수도 시키고 옷도 입힌다. 아내가 나와 마저 준비를 하면 나도 아이도 나갈 준비를 마무리한다.



 아이 등원을 함께 배웅하고 아내는 일터로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들어온 나는 자잘한 집안일을 하고 주변 청소를 조금 한 뒤 전날에 쓰다 만 글을 정리하거나 책을 약간 읽고 낮잠을 잔다. 하원 시간에 맞춰 나가 아이를 나 혼자 받을 때도 있고 일을 마치고 들어 온 아내와 같이 받을 때도 있고 나도 아내도 모두 시간이 안 되면 어머님이 받을 때도 있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하러 나간다.



 이렇게 아이를 등원시키고 하원을 받고 중간에 아이에게 일이 생겨 병원에 가거나 하는 등의 관점에서 보면 아내와 나의 나누어진 일하는 시간대가 장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아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사실 확보하기가 힘들다. 내가 하는 일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어서 필요에 의해 주말에 일을 하기도 하는데 요즘이 딱 그런 시기라 더더욱 같이 보낼 시간이 마땅치 않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전엔 아내가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전에 같이 시간을 보냈고 내가 주말에 일을 하지도 않았기에 주말이면 뭐든 바리바리 싸들고 어디든 갔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는 유치원에 아내와 나는 각자의 일터에서 톱니가 맞물리듯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극히 정상적인 것 같으면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아내가 오전에 일이 없거나 조금 일찍 끝나고 점심 즈음해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어제 금요일이 그랬다. 여차저차 일이 빠져서 시간이 나게 됐으니 뭐 하고 놀까 하고 하루 이틀 전부터 계획 아닌 계획을 나름 세웠다. 우선 아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서 잠정적으로 보기로 했으나 인기가 없는지 개봉관이 없어 포기했다. 다른 영화 하나를 이야기했더니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해 다른 계획이 필요했다.



 그런데 사실... 아이가 하원하기 전 몇 시간이 비는 거라 대단하게 뭐 할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면 거의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집안 정리를 조금 하고 점심을 먹고 카페를 가는 거다. 시간이 어느 정도 남으면 주말에 있는 사촌과의 술자리를 위한 술과 안주거리 등을 사기 위해 마트에도 가기로 했다. 별 거 없는 평범한 일정이지만 나름 꽉 찬 일정이다.



 점심은 아내가 좋아하는 하지만 아이와 함께 가면 먹을 수 없는 쭈꾸미 볶음을 먹기로 했다. 빨갛고 매콤 달달하게 볶아 나오는 쭈꾸미를 역시 아내가 좋아하는 청국장과 두세 가지의 나물과 비벼 먹는 메뉴다. 나도 딱히 싫어하는 메뉴는 아니어서 먹으러 갔다. 식당에 들어섰더니 식당 한 면이 화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 역시 간만에 먹은 쭈꾸미 볶음이라 맛있게 먹었는데 오히려 기억에 남는 건 많았던 화분들이다.



 이제 카페를 갈 차례다. 요즘 시 외곽으로 조금만 빠져나가면 괜찮은 그리고 대형인 카페가 워낙 많아 고르는 것도 일이다. 적당히 검색을 통해 한 곳을 골랐는데 예전에 아내가 나에게 한 번 이야기했던 곳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시간도 여의치 않은데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가는 거다.



 와... 한 때 바리스타로서 요즘 대형 카페를 보면 뭔가 허탈한 마음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데 여긴 뭐 이거 뭐 카페가 맞나 싶었다. 최근에 오픈하는 그리고 괜찮다고 소문난 카페들이 워낙 대형 카페들이 많아 이거 나중에 카페 하나 열어 보는 게 소원인데 이 정도의 대형 카페를 내가 감히 열 수는 없을 텐데 이런 카페들하고 경쟁이 되려나 싶은 그런 허탈함이다.



 시 외곽 논밭 한 복판에 카페인지 한옥인지 작은 궁궐인지 모를 건물이 위용도 당당하게 서 있다. 구비된 책도 많아서 커피 마시며 책 보기 좋은 곳이라는 사전 정보를 알고 왔는데 일단 그것도 그거지만 외형에서부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들어가는 길도 이게 카페인지 박물관인지 헷갈렸다. 아내는 영화 기생충이 생각나는 입구라고 했다.



 길게 이어진 길을 걸어 가 입구에 다다라 자동문이 열리는데 다른 세상이 열리는 거 같았다. 왼쪽은 커피를 주문하고 전경이 트인 자리에 앉아 연잎을 보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었고 오른쪽은 거의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장서량으로 인해 정말 도서관에 왔나 싶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 보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연잎을 보는 자리를 잡았다가 도서관으로 오해할 수 있는(아니 도서관이 맞는 거 같은)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더 놀라운 건 도서관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한 공간이 무려 3층까지 있었다. 나는 카페에 왔는데 여기에 왜 도서관이 있지 하는 친근하면서도 낯선 시선으로 구경하면서 3층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장서량이 실로 놀라웠다. 처음엔 어디 서점이나 작은 도서관이 망하고 남은 책들을 싸게 가져왔나 싶었는데 그게 아닌 거 같았다. 다름 아닌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도서 분류표가 책마다 붙어 있었다.



 아... 이거 카페에 책을 조금 많이 들인 건 줄 알았는데 카페가 주主인 줄 알았는데 아니 구나, 도서관이 주主인데 거기에 카페가 붙어 있는 거구나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아내와 흔치 않은 데이트를 하는 날 정말 흔치 않은 공간에 와서 남달랐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책도 조금 넘겨보고(전국의 해장국을 소개하는 책과 작가가 세계를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을 찍은 사진만 모아 놓은 책을 봤다.) 밖에 나가 연잎도 보고 시간이 돼서 마트를 갔다. 마트에선 술과 소시지 그리고 과자와 피클 등을 샀다. 파스타 재료는 가격 비교만 하고 쿠팡에서 시키기로 했다.



 걸어 다닌 산책은 아니었다. 집에서부터 식당, 카페, 마트 그리고 다시 집까지 계속 차를 타고 다녔다. 연애할 때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 그랬던 것처럼 나는 운전석에 아내는 조수석에 앉았다. 연애와 결혼 후 아이를 낳기 전까지 4년 넘게 내 차로 그렇게 둘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최근 간간히 기회가 닿아 아내와 그렇게 단 둘이 차에 타면 요상하게 아직 조금 어색하다. 그만큼 우리 부부의 삶 속에 들어온 아이의 존재가 크다는 방증이다.



 4년 간 서로만 바라보다 4년 간 아이만 바라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가도 다소 아쉽기도 하다. 다행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이런 시간이 주기적으로 생길 테니 다만 몇 시간이라도 여기저기 다녀야겠다. 손잡고 여유 있게 산책을 하며 더 좋겠지만 앞으로 날이 더워지고 있어 더운 날에 쥐약인 아내가 녹을 수도 있기에 차를 타는 산책 그러니까 드라이브 아니 데이트를 해야겠다. 손이야 뭐 중간중간 잡으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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