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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n 16. 2024

노안에서 노안으로

https://groro.co.kr/story/10613



 엄마는 가끔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를 이야기한다. 너 정말 귀여웠다고, 밖에 데리고 나가기 무서웠다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도 귀엽다고 만져서... 뭐 자기 자식이 예쁘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나는 그냥 그 정도로 해석했다. 다소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해해 보기 위해 어린 시절의 사진을 봤지만 글쎄... 그 정도는 아니었을 거 같은데 정도로 마무리했다.


 초등 시절의 외모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기억이 없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쓴 시기가 아니었던 거 같다. 기억나는 범위 내에서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 중학교 시절부터였던 거 같다. 2차 성징에 의해 얼굴에 선이 서고 각이 두드러진 시점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이렇다 할 사춘기는 겪지 않아서 사춘기에 의해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관심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본격화 됐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아니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외모에 관심이 생긴 걸 넘어 이제 신경을 쓰기 시작한 시점부터 여드름이 얼굴에 만개했고 여드름 때문인지 피부 톤 때문인지 2차 성징에 의해 잡힌 각과 굵어진 얼굴 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안老顔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여드름이 정말 많았다. 지금도 피부가 깨끗한 편은 아닌데 20대 후반까지 상당히 많았다. 가능한 거라면 얼굴을 전체적으로 면도칼 같은 걸로 다 갈아엎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더 나아가 밝은 곳에 가는 걸 꺼렸다. 벌겋게 올라온 피부를 얼굴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노안은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이 나에게 길을 물어보기 위해 불러 세우는 호칭은 ‘아저씨’였다. 지금은 뭐 대 놓고 아저씨고 아저씨인 게 특별히 싫지도 않지만(당연하지! 나이가 만으로도 44인데!) 고등학생이 듣기엔 특히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는 고등학생이 듣기엔 상당히 충격적인 호칭이었다.


 하지만 뭐 어쩔 수가 없었다. 나를 그야말로 모르는 사람들이니 보이는 그대로 불렀으리라. 보이는 그대로 나를 불러 세운 그들을 붙잡고 따질 수 없었고 화는 났지만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덕분에(?) 술을 마시긴 좋았다. 중학교 3학년 시절부터 슬슬 몰래몰래 술을 마셨는데 노안 덕에 고등학생 때부터는 어렵지 않게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시대가 지금과는 달라 적당히 나이 들어 보이면 어렵지 않게 술과 담배 등을 살 수 있었고 술집에 갈 수도 있었다.


 친구들의 긴장과 불안 그리고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담배도 많이 사다 줬다.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담배를 배운 적이 없다. 그렇기에 핀 적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친구들에게 많은 담배를 사다 줬다. 아마 당시에 나에게 담배를 판 슈퍼 사장님은 내가 골초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렇다고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빵을 사다 나르는 ‘빵셔틀’ 같은 개념은 아니었다. 그런 일을 당할 만큼 내 인상이 그리 곱진 않다. 고등학교 시절에 선도부를 했다고 하면 아마 설명이 될 거 같다.


 지나 간 일이라 에피소드처럼 별스럽지 않게 이야기하지만 웃픈 그리고 씁쓸한 이야기다. 스무 살 때였나, 알바하는 곳의 사장님에게 한탄을 한 적이 있다. 친구들이 노안이라고 놀립니다 했더니 괜찮아, 너 같은 노안들이 나이차면 지금 모습 그대로 가서 오히려 나중엔 동안童顔소리 들을 수도 있다고. 정말 그런가 하면서 위로해 주시는 거겠지 하면서 네 하고 그냥 넘겼다.


 그런데 정말!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을 넘어서는 시점부터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본래 나이로 보거나 한 두어 살 더 어리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부터 여드름도 적당히 잦아들었다. 지금은 뭐 모르겠다. 아직 많이 젊지만 마흔도 넘어선 지 조금 지나고 나니 나이 그거 뭐 들어 보이면 어떻고 어려 보이면 뭐 대수인가 싶은 생각을 한다. 어렸을 때부터 노안 소리를 하도 들어서 나이에 대한 감각이 다소 무뎌진 걸 수도 있다.


 지금은 오히려 시간의 흐름에 맞게 슬슬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이 보기 좋다. 적당히 패인 주름도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잘 살아왔건 못 살아왔건 어찌 됐든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온 스스로의 훈장 같은 느낌이 들어 얼굴 곳곳에 파인 주름이 과히 싫지 않다.


 머리가 하얗게 새 가는 것도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가끔 머리를 들춰 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 흰머리가 거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염색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니 나는 살면서 염색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아니고 딱 한 번 해 봤다. 고등학교 시절 호기심에 집에서 셀프로 그것도 짙은 갈색으로 해 본 게 내 삶 속의 염색의 전부다. 왜 그거 아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아름다운 갈색 머리~’하는 광고 카피의 그 엄마 염색약.


 여하튼 파여 가는 주름과 새어가는 머리는 내 삶의 증거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특별히 건드릴 일이 없을 거 같다. 아니 그 이전에 나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별로 아쉽지 않다. 그저 뭐랄까 신기하다고 해야 되나? 이렇게 살다가 이르면 칠팔십 조금 더 살면 백 살 정도가 되면 죽는 건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살면 죽는 건데 이게 뭘까? 이 정도 생각을 할 뿐이지, 나이가 들어서 어쩌고 저쩌고... 이런 생각과 말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나중에 한 번 글을 통해 정리할 예정이지만 그래서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는 제목이나 가사를 조금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세百世시대에 서른은 미안하지만 꼰대 같다고 뭐라 할 수도 있지만 아직 애다. 뭔가 인생을 반 이상 산 그런 회환과 안타까움 등을 느낄 나이도 아니고 느낄 수도 없는 나이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지금의 대중을 대상으로 그런 가사와 제목은 뭐랄까 시대에 맞지 않는다. 요즘의 서른이면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뎌 한참 정신없이 뭘 배우고 부딪히고 할 시기인데... 세상 다 산 거 같은 그런 가사는 노래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조금 생각해 봐야 할 거 같다. 아니면 제목을 마흔 아니면 쉰 즈음으로 바꾸던지...


 옆으로 이야기가 많이 샜다.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쉬운 점은 분명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이 그야말로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 있었는데 상처가 잘 낫지 않을 때다. 별 거 아닌 까진 상처도 한참을 가는 걸 볼 때면 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현타 아닌 현타가 밀려올 때가 있다. 주름이 생겨도 흰머리가 생겨도 그냥 그랬는데 작은 상처들의 회복 속도가 더뎌지는 걸 볼 때 확실히 나이를 먹었다는 씁쓸함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온다.


 더불어 술을 어느 정도 마시는 편인데 술을 마신 다음 날 숙취가 오래가거나 회복이 느려 이제 술을 끊을까 하는 생각을 할 때 나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한창 때는 아침 7시까지 술을 마시고도 9시, 10시 알바를 하러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술을 끊지는 않겠지만 과한 음주는 분명히 스스로 자제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이가 참에도 불구하고 술을 많이 마시는 분들은 둘 중에 하나다. 몸 상하는지 모르거나 알면서 뭉개는 경우와 나이가 들어 힘든 걸 알면서도 아직은 이 정도는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다. 술 잘 마신다고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세상도 이제 지나가고 있습니다. 적당히 드시고 가족 챙기고 스스로 건강 챙기세요.


 자자 술 이야기는 그만하고 메인은 그게 아니었으니, 최근 생각지도 못한 문제 하나가 생겼다. 이미 진행되고 있었는데 확인을 이제 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얼마 전부터 책을 조금 읽고 있다. 지역 도서관에서 하는 이벤트에 참여 중이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정해진 기간 동안 누가 책을 많이 읽나 뭐 이런 행사다. 포기할 뻔했지만 아직은 진행 중이다. 한 달 새 10권 정도를 읽은 거 같다. 1년에 10권은 고사하고 5권도 못 읽었던 지난날과 비교해 보면 어마무시한 독서량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눈이 쓰기도 싫은 단어인 ‘침침하다’라는 표현이 어떤 뜻인지 직접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데 다소 침침하기에(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정말 쓰기 싫은 단어다. 내가! 내 눈이 침침하다니!) 어 이거 뭐야, 눈에 뭐가 꼈나? 어제 늦게 잤나? 조금 쉬면 되나? 간만에 책을 읽었더니 과부하가 걸렸나? 하면서 넘겼다. 그런데 다음 책 그리고 또 다음 책을 읽을 때도 지금도 그 침침함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1979년 생, 얼마 전까지 따지던 한국 나이로는 46, 만으로는 44. 40대 중반이라는 내 나이가 새삼 새롭게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노안老眼이 시작되는 건가? 아니겠지 했다. 일시적인 현상일 거야 하고 애써 외면했다. 조명을 조금 더 밝게 해 보고 이러저러 방법을 써 봐도 은근히 짜증 나는 정도의 그 침침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얼마 전부터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정보 등을 확인할 때 잘 안 보이기 시작하긴 했었다. 그때도 애써 외면했었는데 책을 거의 매일 읽고 있는 요즘은 외면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5월 말부터 안과를 가 볼까 하고 생각하다. 오늘 안과를 다녀왔다. 안압부터해서 시력까지 기본적인 검사를 했다. 별 거 없고 특이사항도 없고 시력도 괜찮은 편이었다. 1.0 선에 있는 숫자들보다 아래 있는 더 작은 숫자를 볼 수 있는데 안 물어보더니 마무리 짓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런데 분명히 노안이 시작된 건 맞는 거 같았다. 본 진료에 앞서 간호사가 확인을 어느 정도 해 줬는데 보통 마흔 즈음에 혹은 조금 넘어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사용 돋보기! 를 대 주는데 놀랍게도 잘 보이는 것이다. 아..... 돋보기라니.....


 물론 돋보기를 꼭 맞추라는 건 아니었다. 필요하시면 맞추라는 것이었다. 물어봤다.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문제가 될 게 있냐고? 특별히 문제 될 건 없다고, 잘 안 보이면 눈을 찡그리거나 하는 부분이 부수적으로 발생할 순 있지만 눈이 더 나빠지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다행히 당장 돋보기를 맞출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눈 건강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본 진료를 기다렸다.


 운 좋게도 대표원장님을 만났다. 아마 청주에서 거의 제일 유명한 안과라 진료 봐주는 선생님도 많고 환자도 많은 곳이라 대표원장님 보기가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았다. 자리에 앉아 책을 보는 데 눈이 조금 침침해서라고 말끝을 흐리니 일단 보자고 하셨다. 보시고는 뭐 특별한 건 없고 그냥 뭐 노안 시작이지 하면서 멋쩍게 그냥 웃으셨다. 나도 네 뭐 하고 받아 같이 웃었다.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으신 어른 앞에서 노안으로 웃으려니 조금 민망하기도 했다. 가끔 벌레 같은 게 보입니다 했더니 그거 비문증이라는 건데 가끔은 보일 수 있어 괜찮아 그러시면서 점안액 하나 처방해 줄 테니 넣어 봐 이러면서 진료가 끝났다.


 점안액은 생각보다 비싼 약이었다. 아내는 보자마자 아~ 인공눈물이네 이랬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시력도 좋은 편이고 보는 데 특별한 문제가 있지는 않아서 인공눈물을 써 본 적이 없어 잘 몰랐다. 비싼 약이니 빠지지 않고 잘 넣으라고 하기에 알았다고 했다. 다만 내가 약을 먹거나 바르거나 하는 부분에 있어 가장 쥐약이 안약을 넣는 부분이라 거의 전적으로 아내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안약만 넣으려고 하면 왜 그리 눈이 안 떠지고 웃기는지...


 여하튼 대충 노안이 시작된 거 같은 느낌을 받았고 미루다가 확인이나 해 보자고 갔는데 역시나였다. 다소 비싼 약에 조금 뜨악했지만 그래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잘 써 온 눈, 앞으로 남은 생 동안에도 잘 쓰자 하는 확인을 위해 이 정도 돈은 써도 된다 하면서 아내에게 하나 넣어 달라고 했다. 약을 넣는 건지 웃는 건지 약을 버리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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