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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론

카네기 교육 과제

by 이야기하는 늑대

Part 4


<대화의 기술>

1. 이야기하는 방법

1-1. 자의식의 껍질을 깨라.

1-2.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지 말라-자기 자신이 되어라.

1-3. 청중과 대화하라.

1-4. 온 마음을 쏟아 연설을 하라.

1-5. 힘차고도 유연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연습하라.

위 내용은 카네기 교육 교재 [스피치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 조금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긴 한데 잘 모르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 대화를 잘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굳이 대화를 하려 애쓰지 않는다. 딱히 관심도 없는 주제로 억지로 대화를 하느니 어색하고 뻘쭘할 수 있지만 대화를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다. 그 어색함과 뻘쭘함이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이렇다 할 관심도 없는 주제로 억지로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오는 불편함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단, 그런 상황이 한 두어 번 반복된다면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하긴 한다. 즉, 모르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한 번이 아니라 두어 번 이어진다면 일반적으론 그 사람과 결국엔 무언 갈 같이 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아주 약간의 진정성이 담긴 대화를 시작하는 거 같다. 그렇게 관계가 이어진다면 이후로 대화는 어려움 없이 진행된다.


이 부분에 있어 혹자는 반문할 수도 있다. 사람 혼자 사는 거 아니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름 인맥이라는 것도 필요한데 그렇게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화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원만하면서 나름 넓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겠냐고? 그런데 난 그게 일에 의한 공적인 관계건 개인적인 관계건 간에 그저 맹목적으로 원만하고도 넓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걸 딱히 원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많은 사람을 두루두루 만나는 것보다 몇몇 사람을 조금은 깊게(그렇다고 엄청 깊게 만나는 것도 아님) 만나는 걸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또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관계야 그렇다 쳐도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되는 업무적이면서 공적인 관계는 필요에 의해서라도 넓혀야 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 역시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관계만 맺고 그 관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과에 만족하고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시 별 문제가 없다.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 누가 도와주면 고마운 거고 아니면 말고 뭐 이런 거 아닌가 싶다. 해서 대화의 기술이란 게 내 입장에선 다소 공허한 기술 같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아니 그거 뭐 꼭 기술까지 배우고 부려 가며 대화를 해야 되는 건가? 그런데 또 웃긴 건 대중 앞에서 이야기하는 건 좋아한다.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목소리도 좋은 편이어서 대중 앞에 서서 이야기(강의의 형식을 빌려)하는 부분에 나름 강점이 있기도 하다.


이 부분이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대화라고 하는 부분을 잘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와 하지 못(안)하는 대화를 대신해 조금 더 많은 누군가들(대중)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는 걸로 대체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뭐 중요한 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표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그 대상이 마주 앉아 있는 한 명인지 여러 명의 대중인지는 그렇게 중요한 거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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