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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Jul 26. 2021

축제

 “아이고, 이게 얼마만인가요? 집에 별 탈은 없으시지요.”

 “이렇게 무슨 일이 생겨야만 보게 됩니다.”

 “좋은 일로 보면 좋으련만, 사람 사는 게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니….”

 “다들 바쁘게 사는 데 이렇게라도 보는 게 어딥니까?”

 “돌아가신 분 덕분에 이렇게 인사를 합니다.”

 “형수님, 형님은 잘 계시지요?”     

 

 경사慶事뿐만 아니라, 조사弔事에서도 흔히 하는 대화들이다. 한 편 세상과의 인연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신 분을 보내드리는 곳에서, 지극히 세속적인 일로 싸우기도 한다.


 “아니 그러니까, 그 땅은 우리가 가져가는 게 맞습니다. 형님!”

 “아주버님,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습니다.

  아닌 말로 아버님 병시중, 그거 누가 다 들었습니까?”

 “너는 내가 늘 이야기하지만, 그 버릇 못 고쳐먹으면 안 된다고.”

 “이 양반이 돌아가신 분 잘 보내드리자는 자리에서도 그 얘길 하네?”     

 

 참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것 같다. 희로애락喜怒哀樂중 ‘애’의 한 공간인 장례식장에 인간사의 모든 면모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묘하게 이질적이면서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축제]라는 우리 영화가 있다.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영화의 내용은 제목과 맞지 않게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다. 더 정확히는 장례식을 통해 만나게 되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더 자세한 내용은 직접 찾아보기를 바란다. 다만 인간사 중에 가장 슬프다고 할 수 있는 장례식을 다룬 영화인데 제목이 축제라니…. 영화를 보질 못했으니 반어反語인지, 풍자諷刺 혹은 해학諧謔인지 모를 일이다. 장례식을 왜 축제라고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고, 내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돌아가신 분은 삶을 마무리했다는 것 자체가 기쁠 일이기도 할 것이다. 돌아가신 분이니 기쁘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삶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무게를 벗어던진 거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기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죽음을 찬양한다거나 삶의 가치를 가벼이 여기는 건 아니다.     

 


 잘 살아왔건, 못 살아왔건 사람의 가장 큰 과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을 마무리했으니 슬프고 안타까울 것이다. 동시에 아쉽고 시원하고 섭섭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살면서 마무리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큰 마무리, 삶의 마무리. 기쁠 것이란 확신은 없어도 마냥 슬프진 않을 것 같다. 후련함 정도로 생각하면 알맞을 것 같다. 나중에, 한 참 뒤에! 내가 죽어 보면 알겠지?     

 


 가족이나 주변 지인의 입장에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기에, 분명히 슬픈 감정이 가장 크게 일 것이다. 그런데 한 편으로 돌아가신 가족을 두고 슬퍼하는 이에게 흔히 하는 위로가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말이다. 그래, 그렇다.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한다. 그 아픔이야 주변인으로서 어찌 감히 다 헤아릴 수 있겠냐만은 확실한 건 돌아가신 분께서 남아 있는 가족들이 본인의 죽음으로 인해 식음을 전폐하고 살아간다면 그리 반기진 않을 것이다. 물론 돌아가신 분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크나 큰 착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종교 이전에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돌아가신 조상님을 기억하고 살아왔다. 조상님의 은공 덕에 살아간다고 생각해 온 우리 민족을 보면, 돌아가신 분들께서 남아 있는 가족이 잘 살아가길 바라셨을 것 같다.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이기적인 추측을 해 본다.     

 


 조사弔事지만 이로 인해 가족, 친지, 지인들이 모인다. 그리고 서로의 삶을 아쉬워도 하고 축하해주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그걸 돌아가신 분, 저 세상 가시는 길 외롭지 마시라고 장례식장에서 밤새 떠들며 이야기한다. 술도 마시고 때로는 고성도 지르고,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밤새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 밤새 불을 밝히고, 음식에 술까지 마셔가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모습을 얼핏 보면 과히 ‘축제’라고 부를 만도 하다.      

 


 삶이라는 가장 큰 과업을 마무리하고 돌아가시는 분, 잘 가시라고 다시 못 봬 슬프고 아쉽기도 하지만 고생하셨다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가시는 분 추억하며 또 살아가겠다고, 밤새 이야기 나누는 장례식장의 모습을 해학의 민족답게 감독은 축제라고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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