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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로 그 아이 Nov 19. 2024

감씨 속 숟가락 하나



잘 익은 감을 먹다가

툭 삐져나온 감씨를 쪼개어 보면

그 속에 얌전히 들어 있는

앙증맞은 숟가락 하나.



장난감인양 가지고 놀

자근자근 씹기도 하지만

이 하찮은 숟가락에서

 자라고 줄기 커 간다.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

보란 듯 서 있다.



학창 시절, 4교시가 끝나기 무섭게

양은 도시락 뚜껑을 열면

감씨 속 숟가락처럼

밥 위에 다소곳이 놓여 있던

닳은 숟가락 한 자루.



늘어 가는 공부량만큼

바빠지던 숟가락.

조그만 나룻배 한 척

밥을 싣고 사랑을 실어

그 길이 반들반들해질 만치

나르고 또 나르는 동안



'나'는 잎과 줄기도 

어느새 쭉쭉 뻗어 나갔다.

잎이 넓은 아름드리나무 되어

그늘을 드리울 수 있을 만큼이나.



감을 먹다

입 안에 굴러다니는 감씨를 꽉 깨물면

그 옛날 미명 속에 시작되던

엄마의 바쁜 하루와

가슴을 뛰게 하던 구수한 밥 냄새가

내 그늘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리를 튼다.












가을이라 감이 제철이다.  

누구나 감을 먹을 때 한 번쯤은 감씨를 쪼개 보았을 것이다. 그 안에 숟가락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하얗고 조그만 숟가락은 배아이다. 씨앗 안에 들어 있는 싹을 말한다. 숟가락 모양에서 둥근 부분은 나중에 잎사귀가 되는 부분이고, 손잡이는 줄기가 되는 부분이다.

배아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배젖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점점 성장한다.


어릴 때는 감씨 속에 있는 숟가락이 정말 신기했다. 조그만 모종삽 같기도 하고 숟가락 같기도 했다.

엄마한테 숟가락을 꺼내 달라고 하면 엄마는 단단한 어금니로 하고 큰소리가 날 만큼 힘을 가해 단단한 감씨를 열어젖히셨다. 그리고 요정이 숨겨 놓은 하얀 숟가락을 꺼내 주셨다.

이 얼마나 즐겁고 신비로운 놀잇감인가. 어른이 지금도 감씨를 때면 설렘을 감출 수 없다.


감씨 속에 숟가락이 들어 있는 모양새는, 양은 도시락 속에 밥숟가락이 들어 있는 모양과 닮았다.

만화가 그려져 있는 타원형 은색 도시락 속에는 윤기 좔좔한 쌀밥이 담겨 있었고, 그 위에는 끝이 포크로 돼 있는 숟가락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반찬통은 별도였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밥뚜껑과 반찬 뚜껑을 열었을 때, 안 좋아하는 반찬이 들어 있어 실망한 날도 있었지만 엄마가 솜씨를 발휘하신 날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기에 조금씩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난다. 볶음밥, 미역줄기볶음, 장조림 등이었을 것이다.


공부가 이어지는 고단한 학교 생활에 지쳐서, 도시락을 먹을 때면 엄마가 보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반찬에는 엄마 음식 특유의 향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감씨를 쪼개어 보면 도시락이 연상되고, 도시락을 생각하면 엄마가 생각 나는 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 가을에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엄마를 그리워해 본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카페

※부탁드립니다.

감씨 숟가락을 못 보셔서 궁금하신 작가님들,

섣불리 치아나 칼, 망치로 시도하셨다가는 부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감씨가 단단합니다.

그러니 무리하게 시도하지 마시기를 권유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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