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에 D라도 안착시키고 싶었던 2년간의 일들
2022년 6월, 중고나라에 Growth TF 1인으로 입사했다. CFO로부터 '데이터 드리븐 조직을 만들자'라는 미션을 부여받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25년 3월 현재, 중고나라는 데이터가 흐르는 조직이 되었지만, 그간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는지 정리해본다.
당시 나는 양승화님의 브런치에서 읽었던 몇 편의 아티클(https://brunch.co.kr/@leoyang99/8, https://brunch.co.kr/@leoyang99/36) 에 영감을 받았다. 혼자서 조직이 일하는 패러다임을 바꾼 일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고, 나도 그처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조직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디고 복잡했다.
제일 먼저 한 일 : 돈 새는 구멍 찾기
Growth TF는 CFO산하였다. 왜 CFO조직에서 데이터와 그로쓰를 다뤘을지 생각해보면, 결국 그 모든 것은 전사적인 효율관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에는 데이터 분석 직군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데이터를 활용한 사례로 내가 처음 집중한 것은 페이드 마케팅 효과성 분석이었다.
당시 회사는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비용 대비 효율성을 따지는 논의가 부족했다. 신규가입자, MAU를 단기간에 찍어내긴 했지만 고객 리텐션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22년의 중고나라는 체리피커들의 온상이었다. 실행했던 마케팅별로 유입경로를 구분하고, 잔존율과 행동 특성을 분석한 나의 첫 리포트는 꽤나 인기가 있었고, 이후에도 프로모션에 대한 효과 검증 위주로 인사이트를 뽑아냈다. 하지만 페이드 마케팅이 완전히 종료되기까지는 10개월이 걸렸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여러 이해관계들이 얽혔던 것 같다. '투자를 했으니 돈을 써서 숫자를 찍어내라' 라는 대주주 PE의 방향성이 있었을테고, 당시의 CEO는 투자자의 방향성에 이의를 제기할만큼 근거와 논리가 부족했을테다. 나 또한 후회되는 것이 있는데, 의사결정권자보다 실무자들과 더 소통하는 방식을 택했던 점이다. 이 점은 이후 조직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내가 더욱 고민하게 되는 요소가 되었다.
바텀업으로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이 건전하다고 생각해서, 조직 내부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먼저, 데이터를 배우고 싶어하는 주니어들을 대상으로 SQL과 그로스해킹 스터디를 운영했다. 이를 통해 데이터 활용의 필요성을 느끼는 구성원들을 점차 늘려 나갔다. 또한, 주요 실무팀 팀장들과 여러 차례 술자리를 함께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러한 관계 형성 덕분에 협업 기회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었고, 데이터 분석 결과를 실무에 반영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아졌다. 하지만 느렸고, 효과는 미미했다.
다음 해에 CPO가 교체되었고, 나는 이를 기회로 삼았다. 새로운 CPO에게 '데이터 드리븐 조직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하고 싶다'라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이때부터 제품 조직과 데이터 분석이 어설프게나마 협업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6명의 팀(그로스전략팀)을 이끌게 되었고, 성과 측정 및 원인 분석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하지만 서비스와 비즈니스 전반이 급격하게 변화하지는 않았다. 기존 팀장들은 여전히 데이터를 상세히 분석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라는 개념이 조직 전반에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로스전략팀은 사용자 행동분석, A/B테스트, MVP 같은 이야기를 하는 반면, 제품조직 전반적으로는 나름 고민하여 만든 로드맵을 따라가야했다. 분석을 위한 분석, 실행되지 못한 테스트는 점점 쌓여갔고, 그로스 전략팀은 점점 조직 내에서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성과를 측정하는 팀이었지만, 이 정보가 실제 의사결정에 즉각적으로 활용되기에는 실무자들의 허들이 존재했다.
의사결정권자를 설득하는 것이 조직을 변화시키는데 우선되어야 했기에 CPO를 공략했지만, 그 조직 내 실무와 관행을 전부 바꾸기에는 바텀업으로의 접근 또한 필요했던 것이다.
그 CPO가 다음 해에 CEO가 되었고, 강력한 조직 개편이 단행되었다.(중고나라 최인욱 대표님) 전사적인 의사결정 속도를 빠르게 내기 위해 팀을 통폐합하고, 직급 체계도 단순화했다. 또한 새로운 CPO가 합류하면서 제품기획의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서비스 기획 단계에서 가설 설정과 데이터 분석이 정식 프로세스로 자리 잡았다. (드디어)
그리고 이 시점에서 나는 데이터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통일된 논의를 하지 못하는 이유, 서비스와 비즈니스 간 의미 있는 교차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할만한 환경이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깨닳았다. 그로스해킹, FP&A 같은 멋들어진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제품/매출/비용과 관련한 데이터들이 잘 자리잡혀있고, 상호 연결부터 시켜야 한다고. 당시 데이터 엔지니어들과 Databricks 도입 TF를 하면서, 단순히 도구를 바꾼 것을 넘어, 데이터 정책을 논의하고 비개발 조직 팀장들에게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선포한 것이 핵심이었다. 이 즈음에 BI도 Tableau로 변경했다. CPO조직 산하에 데이터분석팀도 새로 만들고, 내가 임시로 팀장을 겸임했다가 잘 하는 분께 팀을 인수인계했다.
비싸고 세련된 툴을 써야 데이터가 흐른다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결국 체계로 만들어진다. 처음에 내가 시도한 것은 실무자들에게 인사이트를 주는 것, 이것은 효과가 미미했다. 그 다음은 의사결정권자를 설득하여 실무조직을 변화시키는 것, 이것은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가운데 갈등이 존재했다. 결국 효과적인 것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업무 절차'를 만드는 것. 다만 그 업무 절차를 따를 수 있게끔 도와주는 존재가 있는 것. 이때부터 비로소 데이터가 회사 내에서 원활히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2022년 당시 CFO 조직에서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이 시기상조였을 수도 있다. 당시 회사는 과거의 외주 개발로 인한 기술 부채가 막대한 상황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네이티브 앱을 플러터로 전환하는 데 거의 1년을 소모했다. 그 시기에는 데이터 분석, 마케팅, 신규사업 같은 직군보다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와 같은 최소 인력만으로 운영하여 제품개발의 기반부터 다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적합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했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내 역할을 해냈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나 혼자만의 성과는 아니었지만, 한 가지 주제를 지속적으로 밀고 나간 것은 사실이다. 데이터 기반 조직을 만드는 과정은 단순히 분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문화와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나는 이 점을 몸소 경험했고, 이후 다른 조직에서 유사한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에게도 이 경험이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