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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업적은 대부분 '절실함'에서 탄생했다.
절실함은 성공의 지름길이다.
절실함은 성공의 지름길이니 혹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니(성공한 부모 밑에 성공한 자식이 나올 확률이 더 높지만) 사실 나는 이런 말들을 싫어한다. 꼭 성공은 반드시 실패를 기반으로 해야 할 거 같고, 절실함이 없으면 성공한 인생 같은 건 꿈도 꾸지 말라고 꾸짖는 거 같으니까. 하지만 나 역시 아내가 운전에 대한 '절실함'을 느끼길 바랬다는 걸 고백한다. 그리고 아내는 내게 절실함의 새로운 정의를 보여주었다.
내 아내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앞서 밝혔지만, 또한 아내가 다소 괴상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것도 밝혀둔다.
아내는 절실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여자다. 정확히는 필요성을 느끼면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하며(옮기는) 타입이다. 그래서 핑계나 변명부터 늘어놓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런 아내가 왜 나와 결혼을 했는지 묻고 싶어 지지만, 반대라서 더 끌리는 이유는 13년 전 god가 노래했다.
그런 아내도 운전연습의 필요성을 느낀 뒤 실제로 아내가 자동차 핸들을 잡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내는 처음부터 나를 배제하고 운전연수를 받으려고 여러 군데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친구들과의 여행, 가족들과의 여행 일정들이 겹치면서 운전연수에 대한 얘기조차 흐릿해졌다. 나는 아내가 '절실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아내는 그때까지만 해도 운전에 대한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거 같다.
장롱면허자들이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운전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장롱면허자들이 운전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운전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운전자들은 걸어갈 일도 운전을 해서 간다. (그리고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 위를 걷는다.)
사실 운전을 해서 생기는 '기동력'과 운전을 하지 않아서 얻는 '보행력'중 어느 쪽에 손을 들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선택은 기동력을 얻는 대신 과체중으로 인해 보행력을 잃는 결과(족저근막염에 심하게 걸려 2년 정도 엄청 고생했다.)를 나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없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아내가 기동력을 얻는 대가로 잃는 것이 무엇일까 상상하곤 한다.(물론 아내는 기동력을 얻지도 못했으면서 스피닝을 타다 족저근막염에 걸렸는데 액땜인가 싶다.)
아무튼 아내가 '운전 연습'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단순했다. 운전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아내는 매일 아침 구민센터로 운동을 다녔는데 항상 소금에 젖은 물미역이 되어 돌아왔다.(올여름 대한민국이 얼마나 더웠는지는 떠올리기 싫다.) 덕분에 아내는 진지하게 "휴대용 미니 선풍기"의 구매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 아내에게 나는 "왜 그냥 운전을 하지. 차는 에어컨도 있는데."라고 말했다.
그렇다. 아내는 더위를 피할 목적으로 '운전 연습'을 결심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