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신감이 넘친다.
핸들 잡은 손에 땀이 터지기 전까지는.
"금방 배울 수 있을 거 같아!"
이 말은 아내가 첫 운전연습을 마치고 나서 한 말이 아니다. 아내는 현관문을 채 벗어나기 전에 그렇게 말했다. 언제나처럼 아내는 자신만만했다. 그리고 나는 굳이 아내의 흥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래 여보라면 금방 배울 거야!"라는 선의에 거짓말을 했다.
나는 집 앞 골목길에 세워진 자동차 운전자석 문을 열어주고는 아내가 안전벨트를 매는 사이 보조석에 올랐다. 나는 우선 아내에게 핸들을 잡기 편하게 자리를 세팅하라고 권했다. 신장차가 별로 없는 탓인지 아내는 그대로가 편하다고 했기 때문에 룸미러나 사이드미러를 조절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룸미러와 사이드미러의 용도와 미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간단히 설명했다. 아내는 지난 3년 동안 몇만 킬로를 함께 했던 정열이(우리차가 선명한 레드색이라 지은 이름)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눈동자를 굴리며 안광을 사방으로 뿌리고 있었다.
자동차에 아주 기본적인 사항들을 속성으로 간략하게 설명해 나갔다. 아내는 설명 중에 차량의 브레이크(풋브레이크, 사이드 브레이크, 엔진 브레이크)만 세 개나 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로서는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는 게 맞다는 판단을 내리는데 아내의 이런 반응이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아내가 운전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차량 에어컨 작동>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아내는 마치 이런 종류의 차에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어떻게 해야 켜져?"라고 물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내와 이차가 함께 보낸 시간은 자그마치 3년이다.
"우리 차 아닌 거 같아!" 설명이 끝나고 난 뒤 아내의 총평이었다.
그렇다. 물론 정열이는 우리 차가 확실했지만 정열이의 운전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적어도 오늘은) 나는 보조석 의자를 당겨서 운전석과 똑같은 위치에 옮겼고 벨트가 잘 착용됐는지 두어 번 당긴 뒤에야 아내에게 브레이크를 밟아 오토기어를 P에서 D로 당기라고 했다. 그리고 천천히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내라고 했다.
나는 "앞으로 가야지 뒤로 갈 순 없잖아?"라는 말을 삼키고 다시 브레이크를 밟아보라고 했다. 시속 5킬로로 이동 중이던 정열이는 시속 100킬로 달리다 급정거한 차량처럼 덜컹! 하며 멈췄다. 나도 놀랐고 아내도 놀랐다.( 정열이는 더 놀랬다.) 나는 아내에게 괜찮다는 말과 함께 다시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보라고 했다.
"그럼 앞으로 가잖아!"
나는 "그래. 그게 바로 우리의 계획이었지."라는 말을 삼키고 나는 아내를 도닥이며 걱정 말고 브레이크를 떼어보라고 했다.
스르르...
덜컹!
스르르...
덜컹!
나는 다시 한번 "정열이 화 났니?"라는 말을 삼켰다.
번개를 발사하는 피카츄처럼 정열이는 조금씩 골목길을 벗어났고, 곧 핸들을 잡은 아내 앞으로 서서히 교차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내의 손에 땀이 차오르기 시작한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