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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핥hart Sep 19. 2017

05. 교차로: 우리 동네 호구 잡힘 NO.1




"언제 가?"



아내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는 하마터면 "눈치 껏"이라고 할 뻔 했다.  '어떻게'에 대한 생각만 가득하던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러고보니 나는 꽤 오랜 세월 '언제' 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나는 우선 아내에게 "좌 우와 맞은편 차량의 움직임을 살핀 뒤, 차량의 통행이 한적할 때 진입(=줄이면 '눈치껏'이 된다)"하라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설명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걸 깨닫게 된다.


언제 갈지를 생각해봤던 게 언제였던가....


동네 운전만큼 까다로운 게 없었다. 바닥에 버젓이 표시된 일방통행을 무시하고 역주행하는 차들, 정확한 신호체계가 잡혀있어야 할 교차로에는 신호등은커녕 그 흔한 도로반사경 조차도 없었다

그러니까 오감을 활짝 열고 신호와 보행자, 그리고 차량을 확인하며 눈치껏 운전해야 하는 게 맞지만 아내에게 그런 걸 기대할 순 없었다.


교차로에는 출근 시간이 지난 뒤라 차들이 한 두 대씩 지나가고 있었고 맞은편 골목에서도 서두를 게 없는 없다는 듯 느긋하게 차선에 합류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주부들이 야쿠르트 아주머니에게서 음료를 구매하는 평안한 오전이었다. 닳고 닳은 풍경 하지만 핸들을 잡은 아내에겐 무척이나 낯선 풍경. 나는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며 엑셀을 살짝 밟아 볼 것을(=좌회전) 권했다. 하지만 아내는 확신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안 될 거 같은데?"


아내의 두번째 반응 역시 내가 예상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나는 아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 원인을 알아야만 했다. 아내는 사뭇 다른 풍경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마주하고 있었다.


흥! 좌회전 하라고? 그건 니 생각이야!



아내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쪽 세상에선 고작 시속 20km로 달리는 자동차들이 아내 세상에선 시속 200km로 폭주하는 자동차와 그 옆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겁을 상실한 행인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광란의 트위스트를 추는 오토바이까지. 지극히 평범한 동네 교차로의 풍경은 아내에겐 혼돈의 카오스 자체였던 것이다.

(나는 이쯤에서 집앞에서 부터 핸들을 맡긴 내 잘못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야호 난장판이다!



아내가 느끼는 공포와 혼돈은 지극히 초보스러운 모습이었다. 문제는 아내에게서 시작된 혼돈이 곧 정열이에게 전달되었고, 아내가 전방을 주시하는 사이 룸미러에 소나타 한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가면 될 거 같아!"


아내는 용기를 내어 축축이 땀이 밴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룸미러에 있던 소나타가 곧바로 정열이의 옆구리를 비집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마악 엑셀을 으며 핸들을 왼쪽으로 꺾으려던 아내는 창가에 낯선 하얀 승용차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사이 하얀 승용차는 아내의 옆구리를 스치듯 지나쳐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아내는 클럽에서 만난 낯선 남자의 부담스러운 춤사위라도 본 것처럼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저...저...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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