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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Nov 01. 2020

아줌마

아줌마로 살다 행복한 할머니로 늙어 가기

                                                      아!줌!마!

딸 하나를 낳고 결혼 생활 25년 차인 나는 다양한 호칭으로 불립니다. 

아이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00 엄마, 00 어머니, 글 쓰는 일로 만났던 사람들은 작가님으로 나를 불렀습니다. 엄마랑 절에 가면 보살님, 친구 따라 성당 가면 자매님, 운동하러 가면 회원님, 실명이 필요한 병원이나 관공서에 가면 홍 00님으로 부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제일 흔한 호칭은 아줌마입니다. 


한 사람은 사회적 역할과 지위, 소속되어 있는 조직이나 집단의 직급, 참여하는 모임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호칭으로 불립니다. 어떻게 불리느냐는 한 사람이 특정 공동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가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이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가씨로 부르기에는 좀 나이 들고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는 젊은 성인 여자를 지칭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줌마라고 부릅니다. 만약에 내가 길을 가다 지갑을 떨어뜨렸는데 그걸 볼 행인이 있다면 누구라도 나를 아줌마라고 부를 겁니다. ‘아줌마 지갑 떨어졌어요’라고. 그래서 젊었을 땐 누가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면 나이 들어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아가씨라고 불러 줄 순 없는 나이가 된 이후에도 꽤 오랜 기간 아줌마로 불리는 것이 달갑지 않았습니다.   

   

세일 물건 싹쓸이 하기. 공공장소에서 슬쩍 새치기하고 남의 자리까지 맡아주기.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언성 높여 환불 교환 하기. 아이를 유명 학원에 등록시키려고 새벽부터 줄 서서 기다리기.

생활력 강하고 자기 가족이나 자식의 이익에만 관심 있으며, 이를 위해선 남들의 시선이나 입장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결혼한 여자들. 아줌마하면 이런 이미지가 자연스레 연상됩니다.

비난과 조롱을 의미를 담아 무서운 아줌마 대단한 아줌마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양식 있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은 자신이 아줌마로 불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나이 든 여자를 하대하거나 무시할 때도 아줌마라고 많이 부릅니다. 같은 맥락에서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을 때도 아줌마라고 많이 부릅니다. 

나는 운전하면서 남자 운전자들한테 ‘아줌마’ 소리를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아줌마 운전 똑바로 해. 아줌마 이걸 주차라고 했어. 아줌마 집에 가서 솥뚜껑 운전이나 해. 아줌마 지금 제정신이야?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여자들을 기죽이고 무시할 때 사람들은 아줌마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뭐 내 운전 실력이 별로라는 건 인정하지만 이런 식으로 아줌마라고 부르는 건 무례하다고 생각합니다.     

      


                                              날 것의 속물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자유로움


요즘은 아줌마로 불릴 때 자유롭고 편안합니다. 

몇 해 전 대학생이 된 딸의 옷을 사기 위해 함께 백화점에 갔었습니다. 쇼핑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 데 딸이 제게 ‘엄마도 별 수 없는 아줌마야’라고 했습니다. 

딸의 말을 빌리면 옷 살 생각은 하나도 없으면서 마치 살 것처럼 이거 저거 입어보면서 매장 직원 피곤하게 만들고, 추가 할인은 안 된다고 하는 데 전에는 해줬다며 다시 알아보라고 억지를 부리고, 일인당 한 박스 한정 세일한다는 딸기를 사기 위해 피곤한 자기까지 줄 세워 두 박스를 산 후 뿌듯해했다고 합니다. 가장 압권은 떡볶이를 입에 넣으며 딸이 한 말이었습니다. 

‘떡볶이 일 인분 더 주면 얼마나 더 준다고 엄마 콧소리까지 내면서 더 달라고 아양 떨더라’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내가 스스로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내 모습과 실지의 내 모습은 많이 다르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 일 이후 찬찬히 생각해 보니 아줌마 하면 떠오르는 뻔뻔함, 속물, 이익 앞에서 드세고 거침없음, 내 가족과 자식만 중요한 이기심. 이런 부정적인 속성들이 내 안에 다 있었습니다. 멋쩍고 창피했습니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도 개념 없고 이기적인 아줌마로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자주 있다는 것을.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은 후 희한하게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누가 나를 아줌마라고 불러도 예전처럼 듣기 싫지가 않습니다. 그냥 편안합니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울 때도 있습니다.  예의 바르고 품위 있는 교양인의 옷을 입고 날 것의 속물적인 욕망을 은밀하게 감추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줌마라고 무시당하는 부당함에도 좀 의연해졌습니다.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도 운전이나 기계 조작 같은 특정 영역에서는 서툴고 부족합니다. 종종 무시당합니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그건 그 사람 생각이죠. 누가 나를 꽃이라고 불렀다고 내가 그 사람에게 반듯이 꽃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 반대도 마찬가지니까요.


이렇게 아줌마로 잘 살아가다 할머니로 늙어 갈 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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