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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Nov 01. 2020

우울한 나도 괜찮습니다.

쉽게 우울해지지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날이 좋아 산책을 나갔습니다. 강아지들과 꼬마들도 많이 보입니다. 안녕하고 먼저 인사도 합니다. 가을볕이 따뜻합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 밑에 아파트 단지 안의 나무들도 단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곱고 예쁩니다.      


집 주변을 한 바퀴 돌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샀습니다. 이런 날은 우리 동 앞 놀이터의 벤치가 커피 마시기에는 아주 좋은 곳입니다. 조심스럽게 커피를 들고 약간 언덕진 길을 걸었습니다. 놀이터에 도착하니 마주 보고 자리한 두 개의 벤치 중 하나에 이미 사람이 있었습니다. 흰머리가 성성한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앉아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강아지도 아이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소란스럽던 놀이터 주위가 조용합니다. 벤치에 앉을까 말까 망설입니다. 할머니한테 말벗이라도 해 드려야 하나?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할머니가 쓸쓸해 보였습니다. 갑자기 슬퍼집니다. 

'이렇게 좋은 날도 순간이구나.' 

집으로 들어오니 공허함이 밀려오며 우울해집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 햇볕 바라기를 합니다. 

인생 참 덧없네.......     



                                                   인생의 힘겨움을 먼저 보는 사람


나는 쉽게 우울해지는 사람입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남들 보기엔 별 일 아닌 것에 슬픔과 허무를 느낍니다.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할머니가 진짜 쓸쓸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며 세월의 무상함과 슬픔을 느낀 겁니다. 자주 이럽니다. 쉽게 우울해지고 슬퍼합니다.      

어릴 적에도 그랬습니다. 


종종 중국집이나 불고기집에서 외식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자장면 탕수육 불고기가 엄청 특별한 음식이었으니 당연시 신나야 하는 데 나는 좀 달랐습니다. 물론 맛있게 먹습니다. 그런데 ‘이런 비싼 음식을 우리에게 먹이려고 아빠는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셨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배부르게 잘 먹고 난 후에도  슬퍼지곤 했습니다. 


집에서 잔치를 해도 나중에는 우울해졌습니다. 왁자지껄 맛있게 먹고 떠들던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고 식구들도 잠자리에 들면 혼자 깨어 한 바탕 잔치 뒤에 이어지는 적막함에 쓸쓸함을 느끼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에 우울해집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해 여름 방학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특별한 선물을 해주셨습니다. 세상에서 당신의 큰 딸이 제일 예쁘고 똑똑하다고 여기셨던 아버지는 내가 안경 끼는 것을 속상해하셨습니다. 급기야 당시에는 획기적으로 콘텐츠 렌즈를 맞춰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일하러 가시고  엄마랑 밑에 동생 둘과 종로의 유명한 안과에 가서 렌즈를 맞추고 다 같이 창경궁에 바람을 쐬러 갔습니다. 창경궁 울창한 나물 그늘 아래 앉아 간식거리로 사 온 떡이랑 과자 음료수를 펼쳐 놓고 먹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귀한 선물을 받은 아주 행복한 날인데 장난치고 까부는 동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갑자기 슬퍼졌습니다. 자식 셋을 키우는 엄마의 삶은 고달프구나.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엄마의 얼굴에서 삶의 고단함을 느꼈습니다. 나만 이렇게 좋은 걸 가지면 뭘 하나? 14살 먹은 소녀는 ‘삶은 힘든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하고 슬퍼집니다. 


학교에서 세상은 긍정적이고 도전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밝고 명랑하고 유쾌한 아이가 인기도 많았습니다. 쉽게 우울하고 슬퍼지는 나에게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이유를 알 없는 질문에 또 우울해집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성인이 된 후에는 일부러 명랑하고 적극적이고 활기 있는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목소리 톤을 높이고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하고 모임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오면 애를 쓴 만큼의 고단함과 눌러왔던 우울함이 한꺼번에 밀려와 더 힘이 들었습니다. 

연애시절 남편은 잘 웃는 나를 보며 ‘너의 웃음은 역경을 딛고 선 웃음이야’라고도 했습니다.  사는 것이 우울해서 힘이 드는 걸까?  우울해지지 않으려고 용을 써서 힘이 드는 걸까?  나는 늘 그랬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글 쓰는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쉽게 우울해지는 원래의 나와 이런 우울한 나를 바꿔보려고 잠시 내세운 밝고 활기찬 과장된 거짓 자아 사이를 오고 가며 바쁘게 살았습니다.      


나와 달리 여동생은 밝고 명랑했습니다. 그녀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 하나밖에 없는 언니가 자신과는 너무 달라 가까워지기 쉽지 않음에 많이 아쉬웠을 겁니다. 

동생과 모처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모습이 나의 생각과는 너무 달라 적잖이 놀랐습니다. 

동생은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처자식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시는 걸 아주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아버지를 보고 슬퍼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엄마에게 느꼈던 감정도 너무 달랐습니다. 동생은 엄마가 즐긴 건 즐기면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주말이면 부부 동반 모임과 여행, 친척들 친목모임으로 바빴으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하는 흥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가끔 엄마를 보면서 '자식보다는 자신이 더 먼저인 사람이네라는 생각에 섭섭했었다' 합니다. 동생은 엄마의 삶이 고달프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우울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 좋습니다.


내 주변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야 신난다. 오늘은 뭘 해야 재밌을까?' 하고 궁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고 쓸쓸함을 느끼기보다는 저 할머니 심심한가 보다 하면서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취미 활동들에 대해 찾아봤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밝고 환함과 동시에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함께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그림자에 더 민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슬픔과 우울함을 쉽게 느낍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별일 아닌 것에 기뻐하고 들뜨고 신나는 유쾌한 한 사람, 쉽게 화내고 분노하는 사람. 마찬가지로 나는 쉽게 슬퍼하고 우울해지는 사람입니다. 심리적 고통이나 슬픔에 민감한 필터를 가진 것이지 뭐 그리 크게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울하지만 괜찮습니다. 24시간 우울한 것도 아니고 쉽게 우울해지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니 더 깊게 우울함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우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니 우울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 좋습니다. 쉽게 우울해지지만 힘들지는 않습니다. 우울해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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