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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Nov 01. 2020

자기중심적이어도 이기적이지만은 않습니다.

매 순간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주  

 

                                                  

50이 다 되어서야 내가 매사 자기중심적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가족이 아프면 마음 한 구석에선 할 일이 많아져 힘들어지겠다며 은밀하게 내 안위를 먼저 걱정합니다. 

친구를 도와줬는데 상대가 충분하게 감사를 표현하지 않으면 괘씸한 생각에 기분이 안 좋아집니다. 그 친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친구가 자식 때문에 속상하다고 푸념을 합니다. 겉으로는 함께 걱정해주지만 가슴에서는 저 정도에 힘들면 나는 벌써 화병 나서 병원 신세 졌을 거라며 친구의 고통보다는 내가 격은 어려움을 먼저 헤아립니다.

모처럼 저녁을 푸짐하게 준비했는데 남편은 속이 안 좋다면 숟가락을 뜨다 맙니다.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기보다는 내가 들인 정성이 아까워 화가 나려고 합니다. 

친구가 유튜브에서 발견했다며 변기 청소 쉽게 하는 법을 알려 줍니다. 친구의 마음이 고맙기보다는 내가 더 먼저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우쭐해합니다.


매 순간 우주는 ‘나’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의 우주는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겠지요. 이러고 보니 이기적이라고 손가락 질 했던 사람. 나는 나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고 자책했던 순간들에 너무 야박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좀 봐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생겼나 봅니다. 


                                                        지금은 알고 그때는 몰랐던 것


결혼하고 3년이 되었을 때 남편이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염치없게도 시댁과 친정 양가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차를 팔자고 했습니다. 유지비도 많이 들고 없어도 많이 불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애가 한 밤 중에 병원 갈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냐? 아이랑 외출 한 번 하려면 짐이 얼만데 그때마다 택시를 타나'며 반대를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언짢아하며 누구 생각이 더 옳은 지를 두고 다퉜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해서 이런 상황을 만들기까지 원인 제공을 했다고 생각한 남편이 수세에 몰리다 결국 차는 팔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남편은 지출을 줄이고 싶은 현실적인 목적도 있었지만 수입 없이 공부만 하는 것이 걱정되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차가 없어지면서 당장 겪어야 할 나의 불편함이 먼저였습니다. 가장으로서 남편이 가진 부담감과 불확실함 미래에 대한 걱정, 차를 팔았을 때 발생하는 현실적인 득실에 대해서는 주의가 없었습니다.     


그런 내가 얼마 되지 않아 남편과 상의도 하지 않고 결혼 예물을 몽땅 팔아버렸습니다. 친구 부모님이 하시는 금은방에 가서 시세보다 후하게 쳐준다는 말에 두 번 생각도 하지 않고 망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최신형 노트북을 샀습니다. 아이가 어려 바깥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던 나는 세상과 단절되고 결국 시대에 뒤떨어져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노트북을 그런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알았다면 아마 차를 팔자고 했을 때의 나처럼 반응했을 겁니다. 어쩌면 내 행동이 더 비현실적이고 어처구니없는 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두려움 내 답답함만 중요했던 나는 다른 것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내 느낌, 내 감정, 내 생각, 내 입장 모든 것의 중심은 오직 ‘나’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러하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못했습니다. 당연히 관계에서 다툼이 잦았고 쉽게 상처 받고 또 상처를 주었습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가족들에게 주변 친구들에게 그리고 세상에 대고 제일 많이 했던 말입니다. 하지만 어찌 보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불안과 걱정이 주된 동기가 되어 차를 팔자고 했고 나는 나의 답답함과 두려움에만 갇혀 예물을 팔아 노트북을 샀으니까요.


그 이후를 보면 차를 팔지 않은 것이, 노트북을 산 것이 우리 가족에게 훨씬 이득이긴 했습니다. 아이가 클수록 차를 이용해야 할 경우가 더 많아졌고 나는 글 쓰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내가 섭섭했고 나는 처자식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 났었으니까요.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면에 각자 돌봐야 할 마음의 상처가 있음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이런 식의 갈등은 이후로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주장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유와 근거를 내세우지만 진실은 ‘너 때문에 내 맘이 상했음’입니다. 


                                               자기중심적이지만 이기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자기중심적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 또한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러면 상처를 덜 받습니다. 상처를 덜 받으니 상대의 처치도 봐줄 만한 마음의 여지가 생깁니다. 


남편이 공부하던 시절에 지금처럼 나에 대해 좀 알았더라면 남편에게 좀 너그러웠을 것 같습니다. 처자식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공격하기보다는 '당신 말도 일리는 있지만 내가 너무 불편할 것 같으니 차는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순하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천만다행입니다. 남은 인생 상처 받았다고 괴로워하기보다는 남들 입장도 헤아리며 내 볼일도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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