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나이 듦
*이 글은 들여쓰기 없는 글이다.
나이 듦을 특별히 정의하지 않아도 매일 날은 가고, 나이는 들어간다. 그럼에도 고민하고, 정의 내리려 애쓰는 이유는 결국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붕 뜬 느낌, 삶에 대한 지나친 증오를 조금이나마 덜 아프게 넘기기 위해서 아닐까. 삶은 때때로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욕실에 쭈그려 앉아 수치와 절망에 허덕이는 순간들을 요구한다. 내일을 걱정해 잠 이루지 못하는 밤들을 요구할 때도 있다. 우리는 잔인한 채권자가 그러한 시간을 요구할 때,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공짜로 받은 이 삶이 나에게 너무 과분한 것이 아닐까 하는. 물론 특별히 삶이 너무 미운 시간들이 있는 만큼, 삶이 특별히 사랑스러운 순간 역시 있다. 또 내 삶에는, 슬프거나 기쁘거나, 이 범주에 들지 않은 복잡하고 양가적 감정이 존재하는 순간도 자리한다. 그러나 산다는 것에 정 붙이기 참 어렵다.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붙이고 살아가는, 감정을 밑바닥에 떨어트리지 않기 위한 의식적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너무도 확실하고 명확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그 느낌. 복학해서 졸업하면,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있다면, 애인을 만든다면, 결혼을 한다면, 취업해 월급을 번다면, 내 집을 가진다면 그 경지에 도달할까. 그래서 사람들은 수많은 단계들을 만들어, 성취하며 사는 것일까. 아직 가보지 않았으므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삶에 대한 지레짐작은 무조건 어긋날 것이란 사실이다. 피조물이 제아무리 자신의 앞날을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도 어느 것 하나 점지할 수 없다는 것이 오랜 진리다. 결국 나이를 먹어가며 삶을 살아내는 것은 이 오랜 진리에 기대어 희망을 포로 삼아 전진하는 것이다. 강도가 희망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자신을 포획하려는 수많은 눈동자를 제치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그 강도는 나다. 강도가 희망을 포로 삼아 강탈하는 것은 바로, 활력이다. 강도짓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오늘의 몫을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갑작스럽지만 여기가 이 글의 끝이다. 삶에 대한 글을 공유한다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다. 산다는 건 들여 쓰기 없는 긴 글이란 생각이 문득 든다. 당사자는 콤마의 이유를, 쉼표의 쓰임을, 문맥의 모든 흐름을 꾀고 있으나 다른 이에겐 끊김 없이 써 내려진 뭉텅이에 불과하다. 시간이 흐르며, 나이가 들어가며 잊어버릴 순간들에 이름을 붙이고 색칠하며 이정표들을 세우고 내 순간들을 기억해줄 이들이 없다면 내 삶을 조금 더 칙칙해질 테니. 들여 쓰기 없는 긴 글이 끝이 나 마침표가 찍힐 때, 나는 마침이 없는 긴 글을 새롭게 시작하게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