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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지 Aug 14. 2021

[개샛길] 여유와 세심함의 상관관계

개-샛길 프로젝트 여섯 번째, 한중 이야기

이 글은 현지의 개-샛길 프로젝트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개-샛길 프로젝트는 획일적인 목표를 강요하는 사회 압박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샛길로 빠져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현지의 개-샛길 프로젝트는 2021년 12월까지 주위 사람 100명에게, 그들 자신에 대한 글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삶이 무료한 사람에겐 모든 순간이 반짝이는 극적 장면임을, 삶이 풍랑 같다고 느끼는 이에겐 결국 삶이란 조각들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걸 전달해 따스함을 나누고자 합니다. 부족한 표현으로 글이 누군갈 찌르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더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자 이러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기꺼이 제 주위가 되어준 모든 이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여유와 세심함의 상관관계


당신은 '일'을 할 때,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도움 되지 않는 말은 무시하는 등의 행동이

'필요하다면' 행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MBTI 검사에서 나올 법한 질문을 던지며 글을 시작해보고 싶다. 이건 열린 질문이다. 이건 yes라고 해도 no라고 해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법한 열린 질문이다. 심지어 yes/no로 단순하게 대답하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간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다. '일을 할 때 타인의 모든 감정을 존중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적절하게 예의를 차리는 선에서 말을 순화해야 할 필요는 있다.' 아니면 '얼마나 필요한지에 달려있지 않을까. 그를 존중하는 게 일을 망칠 정도로 방해되지 않는다면 구성원의 감정이나 자아 존중감을 지켜주는 게 바람직한 공동체다' 이렇게도 답할 수 있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대답은 어떠한가? 만약 당신의 대답이 yes 쪽에 가깝다면 당신은 일을 잘한다, 이성적이란 인상을 주는 사람일 테고 no 쪽에 가깝다면 당신은 조금 세심한 사람이란 평을 들을 테다. 이쯤 하니 정말 MBTI에서 T가 나왔는지  F가 나왔는지 맞히려고 꺼낸 질문인가 싶을 수 있다. 난 세심함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다. 방향과 수행 가능성만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어떤 것들이 결여되는지 그런 말랑함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고 싶다.


말랑말랑한 감정이 무엇인지 우린 이미 알고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둘러보며 누군가의 취향을 저격하려고 할 때라던가 맛있는 가게를 발견했을 때 함께 오고 싶은 사람을 떠올릴 때라던가. 내 호의로 누군가의 눈에 안정감이 서릴 때라던가 그 안정감이 눈가와 입가에 잔잔히 떠오를 때라던가. 그럴 때 우린 타인의 온기가 내게 스며들었음을 깨닫는다.


온기가 스며든다는 말이 지나치게 시적으로 느껴지는가. '너에게 내 행복을 다 주고 싶어', '너의 아픔을 다 가져오고 싶어' 한 친구는 애정 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불행이나 행복이 정량적인 것이 아님에도 마치 그것들이 가져오거나 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서로가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고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면 정보나 취향처럼 딱 정의할 수 있는 것만 공유하는 게 아니다. 마치 '야 껌 하나 줄까'라며 구취 제거용 껌을 가방에서 꺼내 건네는 것처럼 온기나 행복 같은 것들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말랑한 것들을 민감하게 느낄수록 그 사람은 세심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온기나 행복이 전달될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불쾌감이나 우월감 같은 것들도 쉽게 전달된다는 걸 알 테니까.  세심함이 모두가 당연히 갖춰야 할 자질인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노나 슬픔, 우울 같은 파란색 인간일 때보다 훨씬 다채롭고 덜 못된 사람으로 사는 게 더 행복하게 사는 삶 같다.


난 요즘 내가 아주 말랑해져 있단 사실을 문득문득 깨닫고 있다. 요즘 되게 자주 우는데 눈물이 많아져서 누가 울면 따라 울기도 하고 책이나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눈물뿐 아니라 다른 감정 표현들도 풍부해졌다. 끓는점이 낮아졌다고 해야 할까. 어떤 감정에 도달하기까지가 아주 초고속이다. 확실히 분노의 발화점만 낮았던 예전과는 대비된다. 여전히 쉽게 화내지만 동시에 쉽게 행복해하고 쉽게 따스해진다. 다채롭게 바뀐 모습이 난 더 마음에 든다.


그땐 뭔가 결여된 사람처럼 굴었다. 돌이켜보면, 진짜 내 안의 무언가가 빠져있던 것 같기도 하다. 결여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빠져서 없거나 모자란 상태를 말한다는 데, 그럼 내 안에서 빠져나간 건 무엇이었을까. 그걸 내 안에 다시 돌려준 건 무엇일까. 지금과 그때의 차이점은 단 하나다. 치열하게 해내야 하는 일이 없다는 거. 결국 일이 나에게서 무언갈 앗아갔던 것이다. 난 그걸 임의로 세심함이라 이름 붙였다. 내가 정확히 실체를 설명하지 않아도  빼앗긴 적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내가 왜 세심함이라 했는지 느낌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빠 죽겠단 사람한테 이것도 신경 쓰고 저것도 신경 쓰란 말처럼 잔인한 말은 없을 것이다. 다만 빠져나간 걸 알아야 나중에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치열함이 마무리될 때 잃어버린 것을 잘 찾아올 수 있도록 마음 안에 그것들을 잘 기록해두면 좋겠다. 만약 되찾으려 할 때 길을 모르겠다면 치열해지기 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일 것이다.




얼마 전 한중은 내가 일하는 곳의 매니저가 됐다. 엄청나게 바빠진 것 같다. 난 그가 바빠지기 전에 얼마나 세심한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다. 그는 내가 필요한 것을 말하기도 전에 선물해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아프거나 지칠 때 남몰래 일의 편의를 봐주곤 했다. 그의 치열함이 마무리될 때 포항 앞바다에서 '그땐 그랬지, 저땐 저랬지' 하며 수다나 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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