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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지 Aug 14. 2021

[개샛길]아직 닿지 못한 그의 서사

개-샛길 프로젝트 두 번째, 보경 이야기

이 글은 현지의 개-샛길 프로젝트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개-샛길 프로젝트는 획일적인 목표를 강요하는 사회 압박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샛길로 빠져보자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현지의 개-샛길 프로젝트는 2021년 12월까지 주위 사람 100명에게, 그들 자신에 대한 글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삶이 무료한 사람에겐 모든 순간이 반짝이는 극적 장면임을, 삶이 풍랑 같다고 느끼는 이에겐 결국 삶이란 조각들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걸 전달해 따스함을 나누고자 합니다. 부족한 표현으로 글이 누군갈 찌르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더 사랑하기 위해,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자 이러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기꺼이 제 주위가 되어준 모든 이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아직 닿지 못한 서사


그에겐 특유의 웃음이 있다. 꽤나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이다. 쌍꺼풀이 없어도 큰 그의 눈이 더욱 커지고, 입은 길게 호선을 그린다.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 꽤 많을 텐데, 그의 웃음이 유독 장난스러워 보이는 건 왜일까.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그의 성격을 내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어느새 그를 떠올리면 자동으로 웃음이 연상될 만큼, 그의 표정은 보경 자체에 대한 인상이 됐다. 난 그의 짓궂은 웃음을 좋아한다.


그만의 특이한 표정은 특유의 상황에서 발견된다. 보경은 종종 '이타적인 장난'을 친다. '이타적인'과 '장난'이 별로 어울리는 단어 조합은 아니다. 어울리지 않은 두 단어가 만나 보는 이에게 어색함을 느끼게 한다. 내가 보경의 장난이 색다르다고 느꼈던 게 바로 이 지점이다.


왜 ‘이타적인 장난’이란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질까. 세상엔 여러 장난이 있다, 꼭 그만큼 장난의 목적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장난의 목적은 보통 한 가지다, 누군갈 웃게 만드는 것.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이타적이기 때문에 장난의 이기성과 이타성을 따지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때까지 난 장난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다. 오히려 장난에 목적이 있음을 상기하는 게 이상하다. 보경의 장난을 마주했을 때, 그래서 난 참 색다르다 느꼈다. 그의 장난은 웃음 너머 다른 무언갈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경이의 장난은 특이한 빛깔을 띠고 있다. 그는 누군가 손쉽게 마음을 꺼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풀고 그가 공동체를 안전하게 느끼도록 스스로를 장난의 대상으로 삼는 장난을 시도한다. 약간은 의무적이고 약간은 눈치를 살피는, 어쩌면 배려를 목적으로 한 장난을. 꽤 자주, 계속해서.


보경의 배려를 목격할 때면 나도 모르게 당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의 배려가 아픔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공감이라는 게 선뜻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열여덟 해 동안의 서사는 어떠하길래, 그는 그토록 빠르게 타자의 민망함, 소외감, 떨림 등을 파악해낼까. 


공감은 상상력이란 말을 어디선가 봤다. 일부 동의하지만, 불충분한 설명이다. 말해주지 않는 타자의 서사를 파악해 이해하고 또 배려하는 공감에, 오로지 상상력만으로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감은 훨씬 짙은 향기를 내며 그러한 배려는 실수할 확률이 낮다. 그가 내는 목소리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에게 이런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그의 활기차고 유쾌한 웃음에 뒷면이 있음을 자꾸만 짐작하게 된다. 


사실, 보경이의 이야기를 써보겠다 마음먹은 건 몇 주전이다. 근데 쉽사리 글이 써 내려지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써도, 저런 이야기를 써도 그를 묘사하기엔 부족해 보이기만 했다. 내가 아직 그의 서사를 다 알지 못한 탓이다. 그의 서사를 몇 자 글 안에 담아보겠다는 몇 주 전 결심은 치기였다. 그렇기에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선에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너의 크고 긴 서사를 담아내기엔 내가 아직 거기에 닿지 못한 것 같아. 네가 허락한다면, 앞으로의 너의 삶에 나도 포함되고 싶어. 지금 함께하는 공동체를 졸업하더라도, 여전히 변함없이 너와 가까이 있고 싶다. 우리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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