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녀름 Aug 29. 2024

설득의 기술

오늘도 출동합니다


        

의료 공백이 6개월 넘게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금방 해결될 거라 믿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의정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자 부정적인 관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정도는 절망적인 수준에 도달했고, 이른바 ‘병원 수배’라고 부를 정도로 119에 신고한 환자를 치료할 병원을 찾는 건 이제 현상범을 검거하는 일만큼 힘든 일이 되었다.



상급 병원에 문의하면 더 위급한 환자가 많으니 지역응급의료센터를 알아보라 하고, 지역센터에서는 해당 수준으로 치료가 어려우니 상급 병원에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암 환자가 통증이 심하다는 신고로 출동한 건이었다. 평소 환자가 다니는 병원에 전화하니 풀베드라서 와도 입원이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환자가 입원을 원하지 않아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경기 남부, 서울 강남 일대를 이 잡듯 뒤져도 선뜻 오라는 병원 하나 없었다. 한 시간 넘게 구급차 안에서 했던 말을 반복하고 한숨 쉬는 모습을 보던 환자나 보호자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정말 딱 한 군데 남았어요. 여기도 안 된다고 하면 인천이나 강북, 어쩌면 밑으로 내려가야 할 수 있어요.”

당장 치료가 절실한 환자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어디라도 당장 가겠다는 의지가 비장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전화를 걸었다.

“입원 치료 불가능하고 검사를 원하셔도 판독할 사람이 없어서 진행 못 해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통증 조절뿐인데 환자, 보호자가 동의하면 오세요.”

나는 핸드폰을 잠시 내려놓고 환자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이 병원은 입원이나 검사는 안 되고 통증 조절만 가능하다는데, 여기라도 가시는 게 어떻겠어요?”

그러자 기가 막히는지 혀를 차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 들려왔다.

“대원님. 환자 설득하지 마시고요. 사실만 전달하세요. 사실만.”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병원에 사정하듯 전화기에 매달렸던 한 시간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오라는 병원 하나 없는 상황에 하다못해 진료라도 받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말이 어떻게 환자를 설득하는 말로 둔갑하는지 알 수 없었다. 더욱이 환자는 병원에 가길 원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나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애써 마스크로 가리며 환자의 선택을 기다렸다. 해당 병원에서 인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히 귀가 화끈거렸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앞뒤 사정을 알 리가 없는 제삼자가 들으면 주제넘게 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뭔데 참견이냐고 따져 물어도 할 말이 없다. 그때 무슨 말을 했으면 좋을지 생각했지만 그럴수록 자조적인 심정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은연중 암 환자가 입원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구급차를 타고 전국을 떠돌지 않아도 된다고 안도했고, 어쩌면 당직 의사는 그런 의중을 꿰뚫어 봤을지도 몰랐다. 지금 의료 현장은 창과 방패다. 병원은 부족한 의료 인력으로 최대한 환자 수용을 제한하려했으며, 갈 곳 없는 환자들은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전국을 떠돌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은 지금 순간에도 초침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설령 환자를 위할지라도 모두가 날이 선 상황인만큼 언행에 더욱 신경써야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나는 소위 말발이 약하다. 내가 하거나, 또는 실제로 하지 않은 일로 오해를 받을 때도, 의견을 내세울 때도 적극적으로 피력하기보단 대부분 수용하는 편이다. 머릿속으로 분명 반박할 말이 있는데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내가 들어도 횡설수설해서 부끄러워진다. 괜히 나서서 창피를 당하느니 차라리 말하지 않고 중간이라도 가자는 게 나의 신조다. 이런 태도에는 남을 설득해서 얻는 이득보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깔려있다. 요즘 인터넷에서 ‘반박 시 니 말 다 맞음’이라는 드립이 자주 보이는 이유도 어쩌면 사람들도 나처럼 언쟁을 싫어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성격 때문에 타인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고, 싫은 소리 들을 상황을 만들지 않게 행동을 조심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싫은 소리를 하기 싫다는 것은 결국 싫은 소리도 듣기 싫다는 뜻과 비슷하다. 이런 말을 하면 고집불통인 줄 알겠지만 오해하지 말길. 나는 포장지는 화려하지만 속은 질소로 가득 부풀린 과자 봉지 같은 말을 듣기 싫어한다는 의미다. 미안하다는 말을 돌려서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늘여 놓거나, 제품 판매라는 노골적인 의도를 숨기고 온갖 수식어와 장점만 적힌 광고처럼 말이다. 차라리 짧고 굵게 미안하다는 한마디나 살 사람은 사게 되어 있다는, 다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 같은 쿨함을 선호한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사자성어 중에 ‘갈이천정(渴而穿井)’이란 말을 가장 좋아한다. 목이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의미로 내 방식대로 해석하면 절실하면 언젠간 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내가 필요니까 사고, 내가 해야 하니까 하고, 내가 좋아하니까 좋아하고. 모든 결정에 나만 있을 뿐, 타인이 개입할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성공하던, 실패하던 상대 말을 들어서, 또는 듣지 않아서 그랬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말발로 설득하지 않는 건 다른 사람들 또한 저마다의 기준이 있으니 옆에서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다. 어찌되었든 본인의 선택이고, 본인의 책임이니까.    




그러나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철벽같은 성격도 많이 유해졌다. 내 조언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환자들 덕분이다. 연차가 들수록 환자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있었다.


“간호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보통 시술이나 수술을 앞둔 환자, 보호자들이 물었다. 이미 의사의 설명을 들었지만, 선택에 따른 득실을 저울질하기 어려운 상황이 대다수였다. 주문을 잘못하면 다시 주문하면 되고, 시험을 망쳤다면 다음 기회가 있지만 한번 잃은 건강을 되찾기는 어려워 더더욱 신중할 수밖에. 나는 다시금 치료에 따른 장점과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설명하면서 선택은 그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이 설령 그들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리라는 걸 알면서도. 몇몇은 괴로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이렇게 반문했다.


“그건 저도 알죠. 그래도 간호사님은 오래 일하시면서 저 같은 환자들을 많이 봤을 거잖아요.”

병원에서 환자와 가장 많이 접촉하는 의료진은 단연 간호사다. 수년간 일하면서 남들에게 못 보여줄 비밀도, 점잖은 교수님 뒷담화도, 저 병원이 환자 잘 본다더라 하는 소문들도 병원에서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도 간호사다. 비록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무구한 데이터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내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스스럼없이 대답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라면 이렇게 했을 거예요.”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판단할 내공은 안 되지만 나라면, 내 가족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예상과는 다르게 내 대답은 파장이 꽤 컸다. 대답을 듣고 난 그들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내 말이 장기적으로 좋은 방향이길 바라지만 그들의 선택에 내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논리적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상대방을 이끄는 일에 소질이 없고, 그 이전에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나라면’이란 말은 진심이다. 남들이 알아준다면 고맙지만, 설령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서운하지 않다. 남들이 모르는 내 사정이 있듯이 내가 모르는 이유가 분명 있으리라. 나는 간호사이기 전에 같은 하늘 아래 사는 한 사람으로서 모두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아프더라도 조금이나마 덜 아팠으면 한다. 환자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후회 없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그 선택의 길에 내가 이정표가 되었으면. 어느 길을 갈지 고르는 건 자신의 몫이지만 적어도 끝없는 길을 헤매지는 않을 테니까. 그것이 내가 간호사로 존재하는 이유다.     



오늘도 여전히 메뉴를 고민하고, 장바구니에 담은 물건을 살지 말지 고민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한번은 남의 말에 넘어가 보기도 한다. 별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당장에 필요하지 않은 상품을 ‘새로 생긴 집 한번 가볼래?’ 라던가 ‘사고 싶으면 사는 거지’라는 말에 도전해본다. 내가 남을 믿지 않는데 누가 나를 믿어주길 바라는 마음은 어불성설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듯이 내게 한 조언들이 그들의 경험에서 비롯된 진심 어린 조언이라 생각하면 그동안 고집을 부렸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진다. 당장은 사소할지라도 믿음이 쌓인다면 소힘줄보다 질긴 고집도 어느샌가 머리카락만큼 부드러워질 것이다. 옛날 말대로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내가 만나는 환자들도 "그때 그 말을 듣길 잘했어."라고 말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아직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내 설득 스킬을 레벨업하는 원동력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봄날의 외상센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