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어를 못해서 홀에서 서빙은 할 수 없었다. 바에서 음료를 만들거나 손님이 주문한 술들을 준비해 놓거나 컵 설거지를 했다. 바와 숯 방은 바로 옆에 붙어 있어서 숯 담당과 대화를 제일 많이 하면서 친해졌다. 여기서 7개월을 일했다는 숯 담당과 친해지니 자연스럽게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멜번 화로구이는 한국식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한인 식당이다. 오는 손님의 70%는 호주 사람들이고 30%는 한국사람이었다. 음료를 준비해 놓으면 홀 담당들이 와서 가져가 서빙을 했다. 영어를 할 줄 몰라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한국 사람이어서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사건은 발생했다.
모두가 정신없이 바쁜 금요일 저녁. 한참 전에 주문 들어온 레드 와인을 준비해 놓았지만 서빙 담당 그 누구도 오지 않았다. 그때 어느 테이블에서 누른 "띵동" 소리와 함께 눈에 보이는 빨간 전광판의 테이블 넘버 11. 아... 이 와인을 시킨 테이블이었다. 홀은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고, 홀 담당들은 각자의 테이블에서 고기를 자르거나 서빙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밖에서 웨이팅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모두가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바에서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마치 슬로모션처럼 홀이 보였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아... 내가 서빙을 가야 하는 건가? 망설이고 있는 그때 또다시 울린 테이블 넘버 11의 "띵동" 결국 난 레드와인과 와인잔 4개를 들고 진격했다. 나의 동공에선 지진이 났지만 태연한 척 인사를 했다. 보통 첫 잔은 따라 주고 간다. 그동안 어깨너머로 본 게 있어서 마치 소믈리에라도 된 듯 우아하게 와인잔에 와인을 조금씩 따라주고 테이블을 떠나려고 하는 순간! 호주인 60대 노부부 손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순간 공포 영화 BGM이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한국식 바비큐는 처음인데, 어떻게 먹는 건가요?"
홀리, 쓋!
정수리에서 식은땀이 났다. 아직 먹는 방법은 영어로 설명을 잘 못하는데... SOS를 청하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들 바빠 보였다. 60대 노부부와 일행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Um... You can eat this (등심) with this (상추) and put some 쌈장.."
쌈장? 당황해서 쌈장을 한국어로 말했다.
아.. 쌈장이 영어로 뭐더라?
이런... 쌈장!
this 하나로 모든 걸 설명하다니 래퍼였다면 나는 무조건 디스 당하고 탈락각이다.
가뜩이나 큰 눈동자가 내 설명으로 더 커진 부부였다. 손짓 발짓 바디 랭귀지로 설명을 했다. 마치 1박 2일의 코너 속 '몸으로 말해요' 미션을 치르듯 힘겹게 몸으로 설명한 후 도망치듯 바로 돌아왔다. 내 얼굴은 숯 방 친구보다 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쪽팔렸다.
수치스러웠던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국 소스, 양념들의 영어를 모조리 공부했다.
이날 이후 나의 영어 공부는 '문법 위주 영어'에서 '생존 영어'로 전략을 바꾸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는 바에서 음료 준비를 마치면 직접 서빙하기 시작했다. 주문을 받거나, 음식 설명은 무리였지만 음료를 서빙하는 간단한 소통은 가능해졌다. 한 달간 죽어라 식당에서 쓰는 용어,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부위와 각종 야채 이름을 영어로 공부한 덕분이었다. 제일 어려운 건 역시 와인 이름 외우는 것이었다. 와인은 라벨에 필기체로 쓰여있는 게 많아서 처음엔 많이 버벅거렸다. 아, 이젠 필기체를 공부할 때가 온 것인가?
확실히 실전에서 창피함을 당하고 나니 동기부여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목표는 고깃집에서 일하는 동안의 필요한 모든 소통은 영어로 공부할 것! 오로지 한놈만 패기로 했다. 결과는 대 성공!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스피킹은 가능하지만 리스닝이 안된다는 것. 리스닝은 귀가 틔여야 한다는데 도대체 언제 귀가 틔인다는 걸까?
창피했던 경험은 영어 공부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생존 영어를 배우는 제일 중요한 법칙!
한 주제만 패기.
하나의 주제만 열심히 파보니 어느새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워킹 홀리데이로 어디선가 외국 땅에서 영어로 고생하고 있는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