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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Nov 02. 2022

청소 인생 2회 차

칠전팔기 의지의 한국인


아파트 청소하는 일이 있는데 한번 해 볼래?


함께 울월스를 청소했던 C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단번에 "OK"했다. 사우스뱅크에 있는 아파트를 청소하는 일인데, 한국으로 치자면 한강변 옆에 있는 고급 아파트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역시나 면접을 보고 바로 청소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다행히도 이번엔 매니저가 한국 사람이었다. 그녀는 두 군대의 집을 보여 주며 청소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한군대는 인도인이 사는 집이었는데 겉은 고급 아파트이지만 안은 쓰레기 소굴이었다. 방 3개 거실 1개, 화장실 2개, 주방 1개. 보통은 한방에 2~3명이 살겠지만, 이곳은 한방에 10명이 살고 있었다. 주방엔 각종 향신료가 가득해서 누가 봐도 인도인이 사는 집이었다. 그녀는 1시간 동안 청소를 하면서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해야 한다며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두 번째 집은 중국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음.. 대체적으로 이 집은 깨끗한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문화 충격을 받았다. 현관에 있던 신발에도 방안에 있던 신발에도 다 양말이 꽂혀 있었다. 


아니 왜? 나중에 시간이 흘러 흘러 대만 사람과 함께 산 적이 있는데 그 아이도 이렇게 하더라. 이유인 즉, 양말을 한 번밖에 안 신었다고. 그리고 아주 잠깐 신은 거라고. 그래서 다시 신으려고 넣어둔 거라고.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화장실은 또 어찌나 더럽던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쓰레기 화장실 비주얼이었다. 속이 좋지 않았다. 역시 매니저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1시간 반 가까이 청소를 했다.


첫날이라 나는 청소하지 않고, 청소하는 그녀를 보며 교육만 받았다. 그러면서 3시간 가까이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호주 온 지 7년 되었다는 매니저는, 처음부터 청소를 해서 지금까지 쭈욱 청소를 하고 있다고 한다. 호주 와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신혼 2년 차라며 수줍게 말해 주었다.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소소하게 집 마당에서 바비큐를 해 먹으며 여유롭게 지낸다고 했다. 마당이 넓은 1층 주택이었는데 집이 근사했다. 페이도 꽤 괜찮아서 돈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영어를 잘 못한다고 했다. 청소는 대부분 혼자 하는 일이다 보니 대화를 할 일이 없고, 만나는 사람도 한국사람들이다 보니 영어를 크게 쓸 일이 없다고 했다. 

"다른 일도 해 보셨어요?"

"다른 일도 몇 번 해 보았는데, 제 적성에는 이 일이 제일 잘 맞더라고요. 마음이 편해요."

그녀는 지금의 삶을 만족한다고 했다. 영어를 잘 못하지만 불편하지 않다는 말과 함께.




나는 생각했다.

청소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그녀나 청소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땀 흘린 노동은 그 어떤 것보다 값지다. 하지만 나와 그녀는 가고자 하는 방향성이 달랐다. 그녀는 청소가 적성에 잘 맞았고, 지금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현재의 삶을 만족하며 살고 있다. 


나는 어떤가? 멜버른에 온 지 3개월. 여전히 영어를 못하고 지금 청소 일을 하려고 여기 있다. 영어 공부보다 청소하는 일에만 집중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혼자 하는 청소가 적성에 맞지 않다. 나는 여기 온 목적이 분명하다. 영어로 솰라 솰라 할 수 있게 되기. 


순박하고 심성이 고운 한국 매니저는 나중에 가든파티에 나를 초대하겠다고 했다. 

"내일부터 여기로 나오시면 돼요. 봐서 알겠지만 일은 별로 안 어렵죠? ㅎㅎ"

그녀는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 간 후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곳에 취업이 되었다는 거짓말과 함께. 그렇게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칠전팔기라고 했던가?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눈빛을 반짝거리며 멜버른 시티를 돌아다녔다. 

'나는 의지의 한국인이야'를 마음속으로 외치면서. 그러다 우연히 책자를 하나 보게 된다. '멜버른의 하늘'이라는 A4 크기의 한인 잡지였는데 그곳엔 다양한 정보와 모집 광고도 있었다. 이 잡지엔 한인 식당 리스트가 수두룩했다. 


아. 이거다 싶었다. 영어를 못하니 일단 한인 식당을 목표 삼기로 했다.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몇 군대는 거절을 당했고, 몇 군대는 면접을 보았지만 떨어졌다. 유일하게 붙은 곳은 한 고깃집이었다. '멜번 화로구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쏙 닮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한인 음식점. 

이곳에서 나는 워킹홀리데이, 학생비자, 이민 2세대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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