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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까자까 Oct 25. 2022

청소 인생 1회 차

생계형 초보 청소부


단돈 300만 원을 들고 온 유학 길이었다. 


무슨 배짱이었는지 준비하지 않고 일단 왔다. 몸으로 부딪히며 영어를 배우겠다고 호기롭게 온 것이다. 당연히 영어는 할 줄 모른다. 알파벳만 겨우 아는 나는 'BUS'도 쓸 줄 모르는 영어 무식자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영어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영어 선생님이 싫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난 지금 호주 멜버른에 와 있다. 그것도 영어를 배우겠다고. 








그렇다. 300만 원은 적은 돈이었다.


호주 물가에 비하면 작고 귀여운 돈이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꽤나 큰돈이었는데 3개월도 안돼서 바닥이 났다. 아. 이러다간 홈리스가 될 판이었다. 생계를 위해 뭐라도 일을 해야겠다.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영어는 못한다. 무식하게도 멜버른 시티를 돌아다니며 랜덤으로 가게에 들어가 구직 문의를 했다. 당연히 나를 써주지 않았다. 영어도 못하는 외국인을 누가 써줄 것인가? 


함께 살고 있던 룸메이트 언니는 청소 일을 하고 있다. '울월스'라는 대형 마트에서 새벽에 청소하는 일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홈플러스' 정도? 우연히 룸메이트 언니가 아파서 대타로 일을 하게 되었다. 도클랜드에 있는 울월스는 집에서 거리가 꽤 멀었다. 지하철 3 정거장 정도의 거리였는데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늘 걸어 다녔다. 아침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깜깜한 새벽 4시. 6월의 멜버른은 초겨울이다. 한국과 계절이 반대인데 새벽은 한겨울만큼이나 추웠다.


청소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대형마트 안을 타고 다닐 수 있는 청소차를 운전하는 C 오빠. 그 뒤로 길고 큰 밀대로 먼지를 닦아내는 나와 H 언니. 이렇게 3명이 한 팀이었다. 청소는 마트 바닥, 직원 휴게실, 화장실 순서로 했는데 마지막이 제일 힘든 구간이었다. 남의 집 화장실 청소를 할 때의 기분이란 오만가지 생각이 들게 되는 순간이었다. 


직원 휴게실을 청소할 때면 함께 일하던 H 언니는 커피와 티백, 작은 과자들을 그녀의 가방 속으로 넣었다. 아마 내가 모른다고 생각을 했던 같다. 그녀가 무안할까 모른 척해 주었을 뿐이었다. 고작 일주일을 청소했는데 손에는 물집이 생겼다. 일주일 룸메이트 언니의 감기는 나았고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청소 일을 한번 해 보니 다른 청소 일이 생겼다. 


한번 연락이나 해 보자 했던 호텔에서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하우스키핑 일이었는데 호텔 객실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검은색 복장으로 오라는 전달을 받았다. 나에게 검은 바지는 딱 하나였다. 스판기 제로, 소녀시대가 입던 검은색 스키니 진. 


삼삼오오 면접을 보러 모인 사람들이 보였다. 말이 호텔이지 C급 모텔이었다. 전부 동양인이고, 서양인은 한 명도 없었다. 호주 매니저는 솰라솰라 설명을 해 주었다. 대부분 못 알아 들었지만 한 가지는 알아 들었다. 30분 안에 객실 하나를 끝낼 것. 화장실 포함. 


매니저는 몸소 청소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군인도 울고 갈 만한 각 잡힌 침대 시트, 청소기 사용 방법, 화장실은 천장 빼고 걸레로 다 닦았다. 심지어 바닥을 닦을 땐 거의 누워서 닦던 매니저의 열정이 인상적이었다. 


드디어 나의 미션 시간이 왔다. 째깍째깍 시곗바늘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배운 대로 차근차근 청소를 했다. 쭈그리고 앉아 좁은 화장실을 청소할 땐 정말이지 피가 통하지 않아 죽을 맛이었다. 어쩌겠는가? 이런 바지를 입고 온 나의 잘못인 것을.. 30분은 금세 지나갔다. 현장에서 바로 합격, 불합격을 알려주었다. 


나는 불합격. 

이유는 30분을 초과해서. 30분을 청소했지만 3일 같은 하루였다. 고된 나의 하루는 맛없지만 호주 캔맥VB와 함께 했다.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은 살이 찢어졌다. 안주는 없다.


다음날 함께 울월스를 청소했던 C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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