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신고식
설레는 마음으로 멜버른 시티를 혼자 돌아다녔다. 로망이었다. 외국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 길거리 곳곳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전부 영어인 것이 아직은 신기했다. 외국 처음 온 사람인 거 티 내지 않으려고 너무 두리번거리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히죽히죽 나오는 웃음은 어찌 안되더라. '와.. 건물들이 전부 너무 클래식하다. 와.. 영어밖에 안 들려~ 정말 신기하다.' 아직은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통영 촌년은 제일 멋들어져 보이는 노천카페에 앉았다.
아직은 영어가 두렵지만 당당하게 말했다.
"Cafe Mocha, One please." 굉장히 정직한 발음이었다.
휴. 다행히 더는 나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참으로 고마운 직원이다. 아마도 흔들리는 나의 동공 속에서 말 걸지 말아 달라는 수신호를 눈치챘나 보다.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트램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누구 하나 서두르는 사람이 없었다. 밝은 표정의 사람들. 그때 지나가던 호주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생긋 웃으며 인사했다.
"Hi. How Are You."
나는 순간 얼음이 되었고 한국어가 불쑥 튀어나왔다.
"앗"
얼떨결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그녀는 웃으며 지나갔다. 나의 얼굴은 거꾸리를 탔을 때 얼굴에 피가 쏠리면서 느끼던 뜨끈함이 느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호주 사람들은 그냥 이렇게 모르는 사람과도 눈이 마주치면 인사를 한다. 그럴 땐 그냥 "I'am good. Thanks"라고 하거나 "Hello" 또는 "Good"이라고 하면서 간단히 인사면 하면 되는 거였다. "I'am fine, Thanks you. And you"도 필요 없다.
그렇게 어색한 영어 신고식을 치르고 난 후 나의 첫 호주식 커피를 만났다. 유리 글라스에 담아주는 모카는 왠지 모르게 더 클래식하게 느껴졌다. 마시기 전 경건한 마음으로 인증샷을 열심히 찍었다. 한국에 있을 땐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다. 유당 분리증이 있어서 우유가 들어간 커피만 마시면 바로 화장실행이었으니깐. 처음 마셔본 멜버른의 커피는 달콤하면서도 씁쓰름하게 느껴졌다. 마치 나의 미래 같았다.
옆자리엔 누군가 놓고 간 호주 신문 '헤럴드 선'이 있었다. 읽을 줄도 모르면서 나는 얼른 신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신문을 읽는 척 뒤적거렸다. 물론 빈칸은 종이고, 채워져 있는 건 글씨였다. 순간 왠지 모르게 내가 되게 있어 보였다. '훗, 현지인처럼 보이겠지?' 나는 나에게 한껏 취해 있었다. 집으로 돌아 갈 때 신문을 접어서 손에 들고 갔다. '헤럴드 선' 타이틀이 잘 보이도록. '나 신문 보는 사람이야' 티를 내면서.
그리고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거울 닦는데 썼다.
'역시, 거울은 신문이 제일 잘 닦이지'
룰루랄라 웃으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