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호주 유학
한참 욜로족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퇴직금을 탕진하고 오겠다며 나는 호주 멜버른으로 떠났다. 멜버른은 여전했다. 진토닉을 자주 사 마셨던 노천 바, 진탕 술 마신 다음날 해장으로 사 먹었던 저렴한 쌀 국숫집, 과제를 하기 위해 자주 갔던 주립 도서관까지도 모든 게 여전했다.
문득 아직 그 아파트도 있을까 싶었다. 멜버른에서의 나의 첫 유학 생활은 한 이상한 아파트에서 시작되었다. 참으로 다양한 인종이 사는 재미있고 스펙터클한 아파트였다.
내생에 처음으로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호주 땅에 발을 딛고 멜버른이라는 도시에서의 외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422 Collins Street. 클래식한 외관에 아파트 내부는 정사각형 구조로 건물 중앙이 네모나게 뚫려 있었다.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구조여서 그런지 내가 살고 있는 집 거실에서는 맞은편, 옆집, 아랫집이 훤히 다 보였다. 참으로 이상하고 신기한 구조였다.
이른 아침 맞은편 집에서는 호주 아주머니 두 명이 늘 베란다에 앉아있었다. 그녀들은 풍채가 좋은 편인데 항상 속옷 차림에 담배를 물고 신문을 보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가끔 눈이 마주칠 때면 인사를 나누었다.
"Hi, How Are You"
"I'am fine. Thank you"
and you. 는 하지 않았다. 나의 영어는 짧았다.
맞은편 아랫집엔 인도 사람들이 살았는데 오후만 되면 카레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한 달이 지났을 때쯤엔 카레 냄새만 맡아도 오후 4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꼭 밤 10시 이후에 청소기를 돌리는 윗집엔 중국인 여자들이 살았다. 낮에는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밤만 되면 우당탕탕 시끄러운 소음을 냈다.
밤 11시 이후엔 맞은편 윗집 일본인들이 매일 밤손님들을 바꿔가며 파티를 즐겼다.
방음이 좋지 않던 100년 된 아파트는 야심한 새벽이면 심심치 않게 커플들의 신음소리를 라이브로 들어야만 했다. 처음엔 룸메이트 언니와 나는 시끄러운 커플 소리에 벽을 몇 번이나 분노의 주먹질을 했는지 모른다. 한국에서의 층간 소음은 이곳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라이브 방송에 적응이 될 때쯤 방송이 평소보다 일찍 종료되는 날이면 '윗집 남자 기가 쇠했나 보다' 하며 놀리는 여유까지 생겼다.
낮에는 대체적으로 조용했지만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빨래는 늘 눅눅하고 쾌쾌한 쉰 냄새가 났다. 햇빛이 들어오는 시간은 오전 11시. 거실 창문 쪽에 아주 잠깐이었다.
내 허리춤보다 높은 세면대는 호빗족인 나를 번번이 주눅 들게 만들었다. 세수라도 할라치면 세수 물이 팔을 타고 팔꿈치로 흘러 늘 옷이 젖기 일쑤였다. 이럴 거면 샤워를 하는 게 더 나았다. 변기 안에 물은 또 얼마나 조금밖에 안 들어 있던지 처음엔 참으로 생경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7년 후 한국에 도착한 공항에서 변기에 물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느껴지기까지 했으니까.
미국 드라마 '히어로즈'에 빠져있던 때였다. '스스 스스'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손발을 정지시키고 한껏 어깨를 움츠렸다. 왠지 모를 기분 나쁜 감정과 함께 팔에는 소름이 돋았다. 자연스럽게 공포영화 BGM이 들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내가 앉아 있는 소파 왼쪽엔 그가 있었다.
호주 바 선생.
내 엄지 손가락보다 더 큰 바퀴벌레를 맞닥뜨리곤 나는 소리를 꽥 질렀다. 잠깐 나를 응시하던 호주 바 선생은 재빨리 어디론가 몸을 숨겼다. 1마리가 있다는 건 최소 100마리가 있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들은 생각이 났다. 이날 이후 거실은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커플들의 요란한 라이브 방송에 새벽잠이 깬 나는 물을 마시러 주방에 들어갔다. 어두울 땐 몰랐으나 불을 켜는 순간 어림잡아 15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 바 선생 패밀리들이 일제히 가구 밑으로, 냉장고 뒤로, 싱크대 안으로 도망을 갔다. 그 모습은 마치 갈라지는 모세의 바다 같았다. 그날 밤은 전쟁이었다. 킬라를 몇 통이나 뿌렸는지 모르겠다. 이러다간 바 선생보다 사람이 먼저 죽어나갈 것 같았다. 함께 살고 있던 하우스 메이트들과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린 한 달 후 급히 그곳을 떠났다.
어둡고, 소음 많고, 바 선생 천국이었던 422 콜린스 스트릿. 26살 반짝이던 내 청춘이 시작된 곳.
내생에 처음으로 큰 꿈을 꾸기 시작했던 출발점이 된 100년 된 아파트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단돈 300만 원을 들고 어쩌다 호주 유학길에 오른 통영 촌년.
눈물의 공원 분수대, 왕따, 나의 게이 친구 K, 한국에서 온 미친년, 의지의 한국인의 눈물겨운 취직 스토리.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대학 생활과 환희의 졸업. 잊지 못할 추억들과 소중한 인연들.
나는 정말 몰랐다. 이곳에서 7년이나 살게 될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