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점점 더 잘하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by 디자이너 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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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다는 사실 앞에서


AI는 무엇이든 점점 더 잘해진다.
글을 쓰고, 정리하고, 기획하고, 요약한다.


어떤 날은 화면을 바라보며 잠시 멈춘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매끄럽고 빠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망설임이 없다.

그때 조용히 질문이 올라온다.


'이렇게까지 잘하는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잘함과 다름


17년 동안 UX/UI를 설계해오면서 나는 늘 더 나은 흐름을 고민해왔다.

사용자가 덜 헤매도록, 덜 지치도록,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잘 만들어진 구조는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알고 있다.
잘 설계된 경험이 사람의 선택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AI는 점점 더 잘 만든다.
하지만 ‘무엇을 남길지’까지 결정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남겨야 할 것


AI가 문장을 건네면 나는 그 문장을 잠시 바라본다.

이 문장이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괜히 과하게 똑똑해 보이려 하지는 않는지,
나의 결을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결국 내가 하는 일은 새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고르고 덜어내는 일에 가까워졌다.

속도는 기술이 가져가도 괜찮다.
나는 그 위에 온도를 얹는 사람이고 싶다.

조금 느리더라도 이 문장이 내 호흡을 닮았는지 확인하는 사람.
조금 돌아가더라도 이 방향이 나다운지 점검하는 사람.




멈추는 감각


AI는 요청하면 계속 이어간다.
끝없이 확장하고, 멈춤 없이 생성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멈춘다.

여기까지면 충분하다고, 이 문장은 빼겠다고, 이 흐름은 조금 과하다고.

돌아보고, 덜어내고, 다시 고쳐 쓰는 시간.


어쩌면 내가 지켜야 할 역할은 더 많이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절한 순간에 멈출 줄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UX/UI를 설계할 때도 그랬다.
정보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숨을 쉴 수 있는 여백이 있을 때 경험은 비로소 편안해졌다.

지금도 같다.
기술이 만들어낸 가능성들 사이에서 나는 여백을 고른다.




그래서, 나는


AI가 점점 더 잘하는 시대에 나는 더 잘하려 애쓰기보다 더 분명해지려 한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온도를 남기고 싶은지, 어디에서 멈추고 싶은지.


기술은 나를 돕는다.
때로는 나보다 빠르게 생각을 펼쳐준다.

하지만 방향은 여전히 내가 정한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믿으며 일한다.

속도보다 리듬을, 완성보다 밀도를, 생산보다 선택을.


AI가 잘하는 시대에 나는 조용히 묻고, 고르고, 멈춘다.

아마 그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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