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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에고 Jan 17. 2020

달나라를 품은 6펜스 사람들

<달과 6펜스> 그리고 서머싯 몸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서 전설을 지은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내가 오랜 시간 기다렸던 사람은 다름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날아올 거인이었다. 11살 생일날, 자신이 마법사임을 알게 된 해리처럼. 그 순간이 언젠가 내게도 찾아올 것 같았다. 헛헛한 믿음이지만 머글임을 인정하기까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인간(人間)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미하듯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더 인간이 되었고, 그 틈바구니에서 특별한 삶에 대한 열망은 무뎌졌다. 일상 속 소소한 행운들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그것에 대한 믿음은 닳을대로 닳았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포부를 안았던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한다. 화가가 되겠다고 무작정 일상에서 도망친 증권브로커, 스트릭랜드. 그에게 중요한 건 성공이 아니다. 그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며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하는 것.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그는 자신의 강한 충동에 이끌려 살기로 다짐한다. 화자는 그리고 세간은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짐승쯤으로 취급한다. 그럼에도, 하나도 팔리지 않는 그림들과 허기짐만이 넘치는 매일에도, 스트릭랜드는 행복하다며 현실로 돌아갈 생각을 않는다. 그가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그리고 연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그것은 인생이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른 것이다.


우리들의 세상살이는 모름지기 상대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 잘난 사람과의 비교는 우리를 구렁텅이에 몰고, 못난 사람과의 비교는 우리에게 한없는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정작 자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뿐인데. 그래서인지 스트릭랜드는 자신을 움직이기로 결심한 듯 하다. 인정을 받진 못하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던 소년은 결국 증권브로커라는 제 자리를 나섰다. 비교대상이 필요치 않은 그곳. 스트릭랜드는 행복을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


비좁은 6펜스의 세상에서 달로 건너간 스트릭랜드의 인생. 또 다른 6펜스의 일원인 난 달나라에 대한 낭만을 품는다. 이렇게 사람들은 <달과 6펜스>에 열렬했고, 서머싯 몸은 부와 명예를 얻었다. 6펜스의 세상에 달나라 이야기를 던지고 간 그는 6펜스의 세상에 거대한 집을 짓고, 훈장을 받았다. 그가 달나라 사람이었기에 6펜스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일까, 그저 6펜스 사람들을 기만한 또 다른 6펜스의 구성원일 뿐이었을까.


아름다운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야.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니야.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그것을 우리 가슴 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해.


스트릭랜드가 그리는 멜로디를 이해한 화가가 있었다. 당대인의 입맛에 맞는 그림을 그리던 그는 괴짜의 그림에 찬사를 던진다. 부인을 죽게 만들어도 그는 달나라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 우리도 그렇다. 6펜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스트릭랜드에게 감정이입이 돼,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할 수 있는 달나라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그래서인지 그저 부러워하는 마음을 속에 품은 채 다시금 일상을 살아낸다. 달은 하늘에만 있는, 닿을 수 없는 그 무언가다. 서머싯 몸은 어쩌면 달나라 사람이 되기 보다 달나라를 지켜보는 것에 대리만족하는 6펜스 사람들, 그 독자들을 떠올리며 글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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