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나의 산부인과 초진, 그리고 임산부는 간접흡연이 싫어요.
산부인과 예약은 토요일이었다. 빨리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금요일 반차를 쓰고 병원을 갈 작정이었는데, 금요일이 워크숍이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코로나 일상 회복이 시작되며 우리 팀은 워크숍을 계획했다. 그리고 병원 가기 전 날 금요일, 오랜만에 회사 밖에서 다 같이 모였다. 우리 회사는 기계회사이자, 초남초회사이다. 초남초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여성 임직원 비율이 10%를 밑돌기 때문이다. 물론 사무직 비율로만 따지자면 조금 더 높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전 직장(금융업)보다는 여자가 훨씬 적다.
남성 임직원 비율이 높은 만큼, 흡연 비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우리 팀의 경우도 절반 이상이 흡연자다. 나는 평소 흡연자에 대해 딱히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임신 전에도 담배 냄새에는 아주 예민한 편이었지만, 그들의 흡연에 대해 꽤 너그러운 편이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보니, 내가 맡는 담배 냄새는 나만 맡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에 극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워크숍은 오전 회의 이후 오후엔 다 같이 스크린 야구장에 가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나는 평소에 프로야구를 즐겨 보기도 하고 임신이라는 걸 알기 전에는 막연히 재밌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나는 임산부일 가능성 99%인 사람이 되었고, 공이 날아오는 스윙 존에 들어가는 것조차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잘못해서 배에 맞으면 어떡해...?
공을 무서워한다는 핑계를 대서 깍두기로 빠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스크린 야구장으로 들어섰다. 단체 손님인 우리에게 가장 큰 방을 내어주셨는데, 세상에나. 방 안은 담배 찌든 냄새로 가득했다. 순간 너무 역해서 마스크를 부여잡았지만 뚫고 들어오는 담배 냄새는 그 방에서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방은 우리 팀원 전부가 들어가기에 좁았다.
게임을 즐기는 60분 정도의 시간 내내 나는 불안했다. 아직 임신 확인을 위해 병원에 가기도 전이라 임신 사실을 말하는 것도 너무 일렀고, 담배 냄새가 힘들어 계속 밖에 나가 있기에도 모양새가 이상하고, 그렇지만 너무 불안한 마음에 발만 덜덜 떨었다. 그 와중에 불안한 티는 내면 안되니 호응은 열심히 해야 해...
너무 힘들었던 스크린 야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 냄새가 내 몸에 배어버린 것 같았다. 마스크에서도 그 냄새가 나고 내 머리카락에서도 그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마스크를 주며 냄새나지 않냐고 물었는데, 내 기분 탓인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찝찝한 마음에 온몸을 깨끗이 씻어내고, 창문을 열어 신선한 공기를 마셨다.
토요일 아침에도 역시나 일찍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한 개 남은 임테기로 이틀 전 보다 진해진 결과선을 확인하고는 아직은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확신 한 방울을 더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엘레비트(임산부용 비타민)를 한 알 꺼내 먹으며 오늘은 병원에서 임신 진단을 받고 엽산 처방을 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다.
접수를 하고, 예진을 했다. 예진실에서는 간호사 선생님이 지난 생리 시작일, 엽산 섭취 유무 등을 간단하게 물어보셨고, 키와 몸무게, 혈압을 체크했다. 근처에 있는 시청에 주차를 하고 병원까지 걸어오는 동안 심박수가 꽤 증가했었는데, 게다가 임신 초진으로 인한 설렘 때문인지 혈압이 너무 높게 나왔다. 왼팔, 오른팔 두 번 쟀는데 두 번 다 너무 높게 나왔다. 너무 떨렸나 보다.
간호사 선생님은 아직 4주밖에 되지 않아서 초음파로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초음파를 볼 것인지, 피검사를 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생리주기가 28일보다 짧고, 내 계산으로 4주 4일째였기에 이때쯤 아기집을 보는 사람도 있어서 봐보고 싶다고 했다.
진료실 앞에서 얼마를 기다렸을까, 내 이름이 불렸고 바로 초음파를 확인했다. 아기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선생님은 자궁 내막이 두껍게 잘 형성되어 있어 착상이 잘 되었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리고 진료실로 돌아와서는 4주에는 아기집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걱정할 것은 없고, 다음 주에 다시 와서 확인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는 임신인지 궁금하다면 피검사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확실하게 하기 위해 피검사를 받겠다고 했다.
오늘 아기집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무언가 "임신하셨습니다!" 또는 확인서 등등의 절차는 없었고, 오늘 본 초음파는 비급여로 처리되었다. 그리고 채혈실로 가서 피를 뽑으려고 앉았는데 그 순간 남편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어 다녀와~" 했는데, 앞에 계신 선생님이 "남편 분이 이럴 때 손도 잡아주시면 좋은데 이 타이밍에 화장실을 가시네..."라고 하셨다. 세상 갑자기 그 순간부터 좀 서운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그런데 진짜 난 피 뽑는 거 무서워한다. 몇 년을 해왔지만 적응이 안 돼.
피를 뽑고 집으로 돌아와서 낮잠을 한숨 자는데, 금방 전화가 걸려왔다. 오전에 뵈었던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피검사 결과 임신이 맞고, 다음 주에는 초음파에서 확인 가능할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배가 아프거나, 피가 나면 병원에 빨리 오라는 말씀과 함께!
아가야, 다음 주까지 또 잘 지내보자, 그때는 집 잘 지어서 엄마한테 꼭 예쁜 다이아반지 보여줘!
4~5주 차에는 초음파 상으로 1cm 미만의 아기집과 난황이 보이는데, 이 아기집과 난황의 모양이 땅콩, 콩 같이 생겼다.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태명을 Peanut, Bean 등으로 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모양으로 불리는데, 나는 그중에서 다이아반지 같이 생겼다는 말이 가장 예쁘게 느껴졌다. 내가 너무나도 갖고 싶어 했던, 정말이지 세상 어떤 것보다 아름다울, 변하지 않을 나의 마음속 1순위 우리 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