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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s May 12. 2022

[5주차 임신일기] 공식적인(?) 임산부가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임밍아웃, 그리고 임신 확인서 발급 받기

4주 차, 아기집을 확인하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을 품고 돌아왔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렸다.

5주 차, 병원에서 아기집을 확인하고 임신 확인서를 발급받았다. 5월 7일 토요일 기준 임신 주수는 5주 2일, 우리 아기의 태명은 '써니'로 정했다.



5월 3일 화요일 (4주 5일)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둘과 나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다. 같은 중학교를 나와서, 나는 다른 고등학교를 갔지만 둘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그 둘 중 하나는 나와 같은 대학교에 갔다. 성인이 되고 언제부터인가 셋이서 만나고 술 먹고, 여행 가는 일이 잦아졌고, 서로의 남자 친구를 소개하고 하나둘씩 결혼까지 하다 보니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우리는 SSG랜더스의 팬이다. 나의 첫 임밍아웃이 있던 이 날도 SSG랜더스의 경기를 보러 간 날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근 2년간 야구장에 가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다 같이(한 명의 남편까지 총 4명이) 모여 바비큐석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경기를 관람하기로 했다.

SSG로 구단주가 바뀐 뒤 처음으로 오는 문학구장이었다. 새로운 유니폼에 추신수 선수 이름과 번호를 마킹하고, 바뀐 응원가가 어색하지만 가슴이 뻥 뚫리는 야구장은 언제 와도 기분이 좋았다.

경기는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나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임신 소식을 알려야 할까 계속 고민했다. 7회를 앞두고 경기장을 정비하고 있을 때, 친구들에게 준비한 선물이 있다며 봉투를 내밀었다. (그 봉투는 사실 회사 봉투.. 급하게 준비한 티가 난다.) 봉투 안에는 가장 진하게 두줄로 표시된 임신테스트기와 우리 아기의 입장에서 이모들에게 쓴 편지를 담았다.

이모들에게 쓴 편지

혹시라도 친구들이 눈치챘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나의 깜짝 이벤트에 너무나도 놀라버린 친구들은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줬고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되어버렸다. 나도 남편하고 안 울었는데, 친구들하고 있으니 왜 눈물이 나지.. 광광..

임신소식을 알리고 나서, 7회 말 우리의 공격에서 신나게 점수를 뽑으며 경기는 재밌게 흘러갔다. 경기도 이기고, 내 이벤트도 성공했다.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런 친구들을 둔 나는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야.

야구장은 언제가도 즐겁다. 답답함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


5월 5일 어린이날 (5주 0일)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지하철에 탑승했다. 아직 공식적인(?) 임산부가 아니라서, 계단만 잠깐 오르내려도 금방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임산부 자리에 앉기엔 맘이 편치 않았다. 지난번 병원 방문 때 혈압이 높게 나왔었는데,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너무 금방 차서 정말 내 혈압이 높아진 걸까 걱정이 되었다.

영화는 정말 재미있었다. 특별한 정보를 미리 알고 간 건 아니었는데, 너무 깜짝깜짝 놀라는 요소가 많아서 내심 이렇게 깜짝 놀라도 괜찮나 싶었다. 그리고 옆의 백화점에서 임산부들이 많이 신는다는 편한 드라이빙 슈즈를 한 켤레 샀다.

평소에 나는 체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높은 3대 봉우리를 다녀오기도 했고, 코로나 전에는 러닝 크루도 정기적으로 참여했었다. 그런 내가 임신하고 나니 조금만 남편 속도로 걸어가도 숨이 차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이런 건가.

닥터 스트레인지2를 봤다!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다.


5월 7일 토요일, 병원 예약일 (5주 2일)

떨리는 마음으로 또 일찍 잠에서 깼다. 오늘은 날씨가 좀 우중충했다. 곧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였다. 아기를 보러 가는 길, 날씨가 좋으면 더 좋을 텐데.

병원 예약은 10시 30분이었지만 우리는 9시 30분쯤 출발했다. 아침을 먹고 출발했으면 든든했겠지만 이날 따라 속이 좋지 않았다. 과자를 한입 먹고는 내려놓았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예진을 했다. 지난주에 혈압이 너무 높게 나와서 걱정이었는데, 오늘도 심박수가 빠른 것 같아서,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요"라고 말했지만 혈압은 정상이었다. 휴, 다행이다.

주치의 선생님은 우리 병원에 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환자 대기가 길지 않다. 인기 있는 선생님들의 경우 예약 시간보다 두 시간까지 더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는데, 나는 예진을 보자마자 바로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기집과 난황

  "오늘은 아기집이 보이네요."

질초음파로 내 자궁 속을 확인하자마자 내 눈에도 아기집이 보였다. 초점을 잘 맞추니 난황까지 보였다. 아기집의 크기를 재어 확인한 주수는 5주 2일.

주치의 선생님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4장의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주셨다.

아직 아기는 안 보이는 시기로, 2주 뒤에 다시 내원하면 아기를 초음파로 확인할 수 있고,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아기가 초음파로 보일 때, 아기 크기를 재어 정확한 주수를 다시 정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분만예정일이 변경될 수도 있다.

입덧이 현재 있는지 물었다. 아직 없다면 곧 입덧을 할 텐데, 많이 심해지면 약도 쓸 수 있고, 내원하면 수액도 맞게 해 줄 수 있으니 너무 식사를 못하면 병원에 와야 한다.

(지난번과 똑같이) 피가 나오거나 배가 심하게 아프면 병원에 당장 와야 한다.

아직까진 초기라 장거리 여행이나 격렬한 운동은 피해야 한다.

수납을 하고, 출산 코디네이터에게 가서 임신 확인서를 받았다. 태낭(아기집)이 발견된 시점이 임신 확인일이 되고, 주수에 맞게 분만 예정일이 계산되었다. 내년 1월 5일이다. 그리고 병원에서 알아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나를 임산부로 등록했다. 워킹맘에게 맞춤으로 여러 가지 필요한 사항들을 안내해주셨고, 우리 병원에서 초진 산모들에게 주는 아기 배넷저고리도 받아왔다. 작고 소중한 아가 옷이다. 아가야, 그런데 엄마가 생각할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너무 많네...

평균 0.91cm 크기의 아기집. 이 크기의 아기집은 통계적으로 5주 2일인가보다.

병원에서 집에 가는 길. 출발할 때 흐리고 꿀꿀했던 날씨는 어디 가고 햇빛이 환하게 내리쬐는 아침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따뜻하고 푸르른 이 날, 남편과 함께 느낀 이 기분을 간직하고 싶었다. 아가야, 너의 태명은 써니로 할게. 엄마랑 아빠가 처음으로 너를 알아본 날, 그날은 햇살이 정말 좋은 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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