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심해지는 입덧, 그리고 예민해지는 후각
7주 차, 아기 심장소리를 들었다. 입덧약을 먹기 시작했다.
8주 차, 입덧약을 먹어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 입덧약을 먹었을 때는 이렇게 드라마틱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회사에서 먹는 점심 식사는 속이 거북해지지 않을 정도로 양껏 먹고, 저녁밥은 직접 해 먹는데는 무리가 있어서 그때그때 생각나는 배달음식으로 연명하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전 먹은 입덧약 2알로는 하루 종일 버티기가 어려워졌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재택근무로 교육을 듣게 되었다. 3시에 퇴근하고 돌아오니 교육 중이지만 집에 있는 남편이 정말 반가웠다. 5시가 조금 지나면 저녁을 바로 먹어야 속이 메스껍지 않아 저녁식사를 부탁해두고 잠시 잠이 들었는데, 교육이었음에도 쉬는 시간 동안 틈틈이 식사 준비를 해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맵고 칼칼한 갈치조림을 뚝딱 만들어두었다. 식탁에 앉아서 오랜만에 남편과 저녁식사를 해보려는데, 속이 턱 막힌 것처럼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한두 숟갈 떠 보고 나선 결국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열심히 요리해줬는데, 내가 많이 못 먹어서 미안해." 레몬 사탕을 하나 물고 다시 누울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우리의 결혼 1주년 기념일이다. 임신 사실을 알기 전부터 예약해둔 사진관에 가서 올해의 각자의 모습을 기록하기로 했다. 이런 컨디션인 줄 알았더라면 차로 갈 수 있는 곳에 예약했겠지만, 임신 전 예약할 당시엔 내 컨디션이 이럴 줄 몰랐다. 대학생 때 자주 가던 신촌의 거리를 남편과 다시 가보고 싶어 신촌의 한 사진관에 예약하고, 요즘 들어 더 초췌해진 내 모습을 조금 정돈하기 위해 예약 시간 전에는 미용실에도 들러 머리를 조금 자르기로 했다.
신촌까지 지하철을 타는 시간은 고작 30여분이었다. 열차 내에 사람이 많아서인지, 계단을 오르내려서 인지, 열차에 타기만 하면 숨이 너무 찼다. 가는 1호선에서는 모든 임산부석이 꽉 차있어서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한 젊은 남성분에게 남편이 자리 양보를 부탁했다. 앉아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고,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관은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아주고, 그대로가 아름답다고 칭찬 감옥에 가두는 곳이라 좋다. 나도 20대까지는 자기혐오와 외모지상주의에 갇혀 남들보다 못해 보이는 내 외모에 불만을 가지고 살았는데, 남편을 만나고 자존감이 올라가면서 내 모습에 만족하면서 산다. 화면에 보이는 내 모습, 쌍꺼풀이 없는 눈을 억지로 크게 만들지 않고, 얼굴형을 안 어울리는 브이라인으로 바꾸지 않아도 그냥 이 모습이 괜찮다. 그들은 만나는 모두를 칭찬 감옥에 가두는 것이 일이라지만, 피부가 너무 좋다는 칭찬에는 새삼스럽게 요즘 화장을 안 했더니, 진짜인가?라는 생각도 조금 하면서.
오랜만에 걷는 신촌 거리는 여전했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것이 이젠 정말 10년 전이야,라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걸었다. 축제기간이라 그런지 주말에도 무언가 열심인 연대 학생들을 보면서, 그때 우리 조금 더 열심히 놀아볼 걸 생각하면서.
입덧이 시작된 이후로 나는 하루 외출 한계량이 정해졌다. 이동 시간 포함 3시간 이상 외출을 하면 체력의 한계가 오기 시작한다. 이 날은 4시간 가까이 외출했으니 체력이 한계를 넘은 날이다. 2호선은 차량 배차가 넉넉하여 무난히 앉아올 수 있었지만, 문제는 1호선이다. 항상 자리가 꽉 차 있고, 임산부석에는 죄다 노인분들이 앉아계셔서 자리 양보를 부탁하기가 마음이 불편하다. 결국 그냥 서서 갈까, 생각하던 차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열차에 넘어질 뻔했다. 그때, 아내 옆에 아이와 함께 앉은 남편분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의 임산부 배지를 본 것 같았다. 아이에게 "우리 다 왔으니까 저기 가서 서있자"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나도 1호선으로 출퇴근하던 때엔, 몇 번 일반석에 앉은 내 앞에 서있는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한 적이 있다. 보통 전철에 앉으면 휴대폰을 쳐다보기 바쁘다. 나도 그렇게 휴대폰을 쳐다보다가 내 앞에 서있는 임산부를 발견하곤 성급히 일어나 양보하려는데, 그 틈을 타 갑자기 어떤 젊은 분이 어디선가 날아와 자리를 차지했다. 임산부이신 여성분과 나는 당황하며 "여기 임산부 셔서... 제가 자리 양보한 거예요..."라고 말하니 그 분은 머쓱해하시며 일어나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전철로 출퇴근하지 않아 정말 다행이지만, 임산부석에 대해 익명의 탈을 쓰고 일반인들이 하는 말들을 보면 정말 경악스럽다. "니들이 갖고 싶어서 가졌으면서, 양보는 의무가 아니다", "남편이 능력이 없어서 임산부가 지하철을 타냐? 차를 사주던가, 데려다주던가, 택시라도 타고 다니던가", "임산부보다 출퇴근에 지친 내가 더 피곤하다" 대꾸할 가치가 없는 말들이다. 당신의 아내가, 당신의 여동생이 임신해 출퇴근하는 산모여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결혼한 지 1년이 되었다. 작년, 코로나 상황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을 끝내고, 후련한 마음으로 보낸 지난 시간들은 내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다. 아무 걱정할 것 없이, 정말로 편안한 상태.
그 고요함을 깨는 '임신'이라는 이벤트가 우리 부부에게 찾아왔고, 우리 둘 다 처음인 하루하루를 퀘스트 깨는 기분으로 함께 헤쳐나가고 있다. 남편은 깜짝 이벤트랍시고, 늦은 아침까지 자는 나를 깨워 점심 예약을 해두었으니 식사를 하러 나가자고 했다. 차로 멀지 않은 전망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고, 마침 운이 좋았는지 재즈 연주까지 들을 수 있었다. 속이 좋지 않아 맛있는 식사를 눈앞에 두고도 마음껏 즐기지 못해 속이 상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와선, 내가 자는 동안 어디서 케이크 주문을 해 받아와서는, 예쁜 버터크림 꽃 케이크를 내밀었다. 이렇게 좋은 날에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 미안해, 서러움을 삼키며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맛있었다.
또 한참 낮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저녁 챙겨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남편은 내 덕에 점심을 많이 먹어 저녁은 거르고, 나는 남편이 먹다 남은 국에 밥을 좀 말아먹기로 했다. 남은 밥이 없어 밥을 새로 지어야 했는데, 주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력밥솥의 밥 냄새가 너무 역했다. 집의 창문을 다 열어서 아무리 환기를 해봐도 밥솥에서 계속 뿜어져 나오는 밥 냄새에 이불로 코를 틀어막았다. 임신 전엔 아무렇지도 않던 냄새들이 임신했을 땐 역하게 느껴진다더니, 이런 거였나 싶었다. 밥이 다 지어질 때까지 나는 냄새를 날려버리려고 튼 선풍기 앞에서 이불을 돌돌 말고 밥 냄새를 참아야 했다.
밥 냄새뿐만이 아니다. 예전엔 향긋하게 느껴졌던 핸드워시의 시트러스 향도, 깔끔하게 느껴졌던 우리 집 화장실의 방향제 냄새도, 차에 타는 사람마다 좋다고 했던 내 자동차 냄새도, 모든 향이 증폭되어 결론은 '역하다'로 통하는 것 같다.
내 몸이 신기하다가도, 가끔은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