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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s Jun 13. 2022

[9주차 임신일기] 눈물의 입덧 기록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입덧, 그래도 아기를 보면 행복해 :)

8주 차, 입덧약을 먹어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9주 차, 입덧 지옥중 행복, 병원에서 아기 움직임을 처음 관찰했다.


5월 30일 월요일 (9주 0일)

회사 점심도 한 숟갈 먹고 내려놓았다. 속에서 음식이 전혀 받지 않는 기분이다. 그리고 임신 기간 내내 임산부를 괴롭게 하는 변비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자궁수축을 억제하는 프로게스테론은 자궁뿐만 아니라 다른 장기의 수축도 방해한다. 그래서 장 운동이 이전처럼 원활하지 못해 변비에 쉽게 걸린다. 

입덧 증상 중 하나인 것 같은데, 두통이 너무 심하다. 평소 같았으면 이 정도의 두통엔 진통제를 먹어서 해결했을 텐데, 약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임산부도 타이레놀 정도는 먹어도 괜찮다는데, 웬만하면 먹고 싶지가 않다. 3시 퇴근시간 즈음되니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집에 가는 길 운전이 걱정됐다.

오늘은 원래 친한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뭘 먹을지, 먹고 나서 뭘 할지 즐겁게 얘기하는 자리에 나는 불참 소식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 와서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오지 않는다. 또 출장 갔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서러워졌다. 집에 오자마자 힘들어서 침대에 누웠는데, 머리가 너무 아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뭐라도 집중을 해야 잠시나마 고통을 잊을 수 있으니,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해보려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왔다.

초기 임산부들이 우울감을 겪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걱정, 불안 등이 찾아오는 것인데, 나름 정신건강은 자신 있는 편이었던 나는 임신 전, 임신하고 우울해하며 우는 산모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입덧하고 아파서 울 수는 있어도, 우울한 감정에 대해선 공감하지 못했다. 역시, 본인이 느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선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났다. 코로나가 풀리고, 이렇게 좋은 날씨에 사람들은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남편도 없이 여기 침대에서 두통과 메스꺼움을 참아내며 누워있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오늘 약속에 가지 못한 것도 억울하고, 나도 잘 놀 수 있는데 누워있어야만 하는 게 너무 서럽다. 언제까지 이렇게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다. 남편에게 말해도 소용없고, 엄마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남편과의 눈물의 카톡(편집), 심지어 아기가 밉다는 말까지 했다.

한참을 울다가 자다가, 뭐라도 먹지 않으면 더 메스꺼워질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달 어플을 한참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자장면이 먹고 싶어 졌다. 그러나 자장면 한 그릇을 배달해주는 곳은 없다. 결국 탕수육에 자장면 세트를 시켜 탕수육은 그대로 냉장고로 직행하고, 자장면은 1/3 정도를 먹고 남겼다. 남은 자장면을 개수대에 버리면서 또 울었다.

오늘은 이유 없이 역대급으로 서러운 날이다.


6월 3일 금요일 (9주 4일)

이 날은 외근이 있는 날이었다. 다행히도 외근지가 남편 회사 근처라, 오늘의 출퇴근은 남편이 책임지기로 했다. 풀타임 업무 워크숍이 있는 날이라 자리를 내 맘대로 뜨지 못하기 때문에 출근 전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잔뜩 사고, 샌드위치도 사서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 입덧약의 약빨이 가장 잘 드는 오전에 열심히 먹어둬야 하루를 버틸 수 있다.

일을 할 때는 집중이 되어 아픈 게 잊혀진다. 그리고 오늘 만나는 사람 모두 나의 임신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오늘 알릴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잘 행동해야 했다. 다행히 일을 하는 와중에는 컨디션이 잘 따라주었고, 무사히 외근을 마칠 수 있었다. 퇴근 이후, 나는 남편의 퇴근시간까지 1시간 30분가량을 기다려야 했다. 외근지에서 지인을 만나 잠시 티타임을 갖고, 근처에서 조금 휴식을 취하다 남편을 만났다.

긴장이 탁 풀려서일까, 오늘의 에너지를 업무시간에 다 쏟아서 일까, 두통과 메스꺼움이 차에서 몰려왔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아픔을 참아내며 내가 운전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내가 너무 불쌍해 보였는지 뭐라도 먹고 싶은걸 자꾸 생각해보라는 남편이 이틀 전 먹었던 햄버거 이야기를 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다가 저녁에 남편이 사 온 햄버거 세트를 뚝딱 해치운 것에 놀랐나 보다.

이상하게 햄버거가 당긴다...

임신 전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음식을 임신하고 나서 이상하게 찾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한테는 햄버거가 그랬다. 임신 전에는 햄버거를 싫어하진 않았지만, 즐겨 찾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한 번씩, 기회가 생기면 먹는 정도. 근데 요즘은 햄버거 생각이 자주 난다. 그제도 햄버거를 먹고, 오늘도 햄버거가 당겨서 남편에게 집 앞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다 달라고 했다. 맥도날드나 버거킹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다른 음식 사진을 보거나 떠올리면 대부분 속이 울렁거리는데, 햄버거를 생각하면 왠지 한입 가득 와앙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하다. 제일 먹고 싶은 건, 미국 프랜차이즈 맛이 잔뜩! 소고기 육향 풍부한 치즈버거...


6월 4일 토요일 (9주 5일 → 9주 6일)

병원 진료 예약일이다. 오늘은 어떤 아기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예진실에서 체중과 혈압을 재고, 다음 진료 때 있을 기형아 검사 관련 설명을 간단하게 들었다. 진료실로 들어가서 오늘도 역시 질초음파로 아기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한눈에 봐도 아기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기가 많이 컸다. 오늘재는 아기의 머리-엉덩이 길이로 분만예정일을 확정한다. 이후에는 분만예정일이 바뀌지 않으며, 주수보다 아기가 작다, 크다를 판단한다. 이렇게 잰 아기의 머리-엉덩이 길이는 2.74cm, 주수는 9주 6일로 하루 앞당겨졌으며 분만예정일은 2023년 1월 1일로 정해졌다.


초음파로 만난 아기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3cm도 안 되는 작고 소중한 아기가 꼬물꼬물 움직였다. 진심으로 아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은 주치의 선생님도 너무 귀엽다며 웃으셨다. 벌써부터 도치맘이 되는 것인가...

의사 선생님의 상담내용을 기록하자면,  

    아기의 크기, 움직임, 심박수, 양수의 양 모두 정상이다.  

    이전에 보이던 피고임은 없어졌다. 유산의 위험은 매우 낮아졌다고 할 수 있다.  

    입덧이 너무 심하면 자기 전 2알 외에 오전에 1알, 점심 먹고 1알 이런 식으로 추가 복용할 수 있다.  

    임신 중 변비는 흔한 증상이다. 유산 위험이 낮아졌기 때문에 변을 볼 때 배에 힘을 너무 준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푸룬주스나 유산균을 먹으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너무 심하면 약을 처방해줄 수 있다.  

그리고 9주 차에 반드시 설명해주시는 기형아 검사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이 검사들에 대한 것은 적다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 별도의 글로 발행할 계획이다. (정리하느라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예비부모님들께서 많이 봐주시길...)

입덧약은 넉넉히 4주 치를 처방해주셨고, 다음 진료는 3주 뒤로 잡았다. 2주 뒤에 오려고 했으나 주치의 선생님의 학회 일정 때문에 한 주 미뤄졌다. 이번엔 아기를 또 볼 때까지 3주를 참아야 한다니, 그래도 할 수 있다! 꼬물이 아기를 영상을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공유하고는 도치맘, 도치대디가 되어버린 우리는 한참 동안이나 그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무 귀여운 우리 아기, 계속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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