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smos Aug 13. 2022

[18주 임신일기] 임신부의 여름휴가 기록

보드게임, 시현하다, 디테일링, 신라스테이 구로, 고든램지 버거, 영종도

17주, 철분제를 먹고 시작된 변비지옥

18주, 임신부의 차분한 여름휴가 기록




8월 1일 월요일 (18주 1일)

오늘부터 직장인들의 방학, 여름휴가가 시작되었다. 나는 남편과 여름휴가 일정을 맞추지 못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체력이 많이 약해진 임신부는 오랫동안 돌아다니는 건 무리가 되기 때문에 하루에 한 개씩만 일정을 소화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직장 동료의 집에 방문해 보드게임을 하는 게 주 일정이다. 우리 팀에선 점심시간마다 회의실에 모여서 보드게임을 하는 재밌는 문화(?)가 있는데, 그때마다 보드게임을 협찬해주시는 책임님이 있다. 그분 집에 방문해서 하루 종일 작정하고 보드게임을 해 볼 생각이다. 


1. 페이퍼사파리 (포켓몬 버전)

귀여운 포켓몬과 숫자 같이 있는 카드를 가지고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각자 6개의 카드를 가지고, 어떤 카드로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카드를 정해진 규칙에 따라 오픈하며 가장 높은 숫자로 구성된 카드 모음을 만들어야 하는 게임. 포켓몬 카드가 너무 귀엽다. 그리고 내가 이겨서 더 인상적이었던 게임.

포켓몬들이 너무 귀엽다. 룰도 간단해서 가볍게 즐기기 좋은 게임.


2. 센추리 : 향신료의 길

각자가 가진 일꾼으로 향신료를 모은다. 향신료로는 일꾼을 사거나, 승점 카드를 살 수 있고, 일꾼은 향신료를 얻거나, 향신료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쓸 수 있다. 규칙 이해도 쉽고, 몇 번 하다 보면 전략도 생길 것 같은 재밌는 게임이다.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갈색의 향신료를 모아가며 승점 카드를 빨리 모으는 사람이 승리!


3. 미크로마크로

윌리를 찾아라 처럼 엄청나게 깨알 같은 사람과 건물들의 그림이 빼곡히 그려있는 큰 종이를 구석구석 찾아보는 게임. 그림들에는 무언가 사건들이 펼쳐져 있고, 우리는 탐정이 되어 사건에 관련된 힌트를 쫓아가며 사건을 해결한다. 별 5개 문제까지 열심히 풀어냈다. 사건을 푸는 열쇠는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재밌는 게임이지만 정말 눈알이 빠질 것 같다.

4. 언락3 : 김종말의 역습

방탈출 게임의 보드게임 버전이다. 언락1은 오늘의 호스트께서 회사에 몇 번 가져오셔서 해봤는데, 새로운 테마를 해보기로 했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여 60분 안에 탈출해야 하는 게임. 처음에 이 게임을 해보고는 너무 충격적으로 재밌어서 (특히 어플을 이용해 플레이한다는 점이 무지 신박했다.) 나도 언락1,2를 중고로 구매했다. 한 번 구매하면 다시 플레이할 수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방탈출 카페를 가는 것보단 훨씬 저렴하니 추천!

한 박스에 3개의 게임이 들어있다.


5. 로코코

가장 길고 어려웠던 게임. 룰을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지만 한 턴을 돌고 나면 감이 잡힌다. 각자가 재단사가 되어 예쁜 드레스를 만들어 전시하고, 룰에 따라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무엇보다도 게임 아이템들이 굉장히 화려하고, 왜 이름이 '로코코'인지 알 것 같은 구성품들까지, 보는 재미가 있다. 한 판 하고 나니 게임 룰이 이해가 돼서, 다음에 하면 더 재밌을 것 같은 게임.


8월 2일 화요일 (18주 2일)

딱 20살 때 만들었던 여권이 올해 12월에 만료된다. 남편과 해외로 떠나는 태교여행을 계획하고 있어 여권을 갱신해야 하는데, 스무 살 때 만든 여권의 여권사진이 너무 맘에 안 들어서 10년 동안 여권이 별로 맘에 안 들었다. 30대의 여권은 마음에 들길 바라면서 여권사진을 위해 선택한 곳은 시현하다.

남편과의 결혼기념일 때 서로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방문했던 곳으로, 그때의 좋은 인상을 받고 이번에 재방문했다. 사전 예약은 필수고, 네이버 예약을 통해 예약 가능하다.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신촌역으로 가는 길. 요즘 들어 부쩍 숨이 빨리 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지하철 탑승은 힘들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계단이 많아서인지 숨이 너무나도 찼지만, 다행히도 평일이라 그런지 임산부석 자리가 남아있어 앉아서 이동할 수 있었다.

여권 사진은 마음에 들게 나왔다. 엔데 믹에 맞춰 많은 사람들이 여권 사진을 찍으러 올 것을 기대했는지, 여권 사진을 찍은 사람들에게 예쁜 프레임에 합성한 사진도 같이 제공해주었는데, 시현하다는 항상 친절하고, 나다움을 강조하며, 실망시키지 않는 곳이다.

오랜만에 신촌에 나와 사진 찍는 것 말고도 무언가 하고 가고 싶었지만 체력이 역부족이었다. 아쉽지만 오늘의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

이렇게 카세트테이프에 담아주는 '시현하다' 만의 감성


8월 3일 수요일 (18주 3일)

새 차를 구입하고 나서, 원래 타던 경차를 처분하지 않고 세컨드카로 유지하고 있다. 새 차는 내가 주로 운행하고, 경차는 남편이 가끔씩 출퇴근하는 데 사용하거나 가까운 곳을 이동할 때 사용하곤 했는데, 원래도 내가 차에 무심했던지라 세차를 안 한 지 꽤 오래되었다. 특히 내부 세차는 안 한지 정말 오래됐는데, 언제 세차장에서 청소기를 돌렸더라 기억도 안 날 지경...

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새 차가 출고되면 이 경차는 디테일링을 꼭 한번 맡겨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휴가 때 일정이 없는 겸, 근처 디테일링 샵에 방문했다. 공단 지역으로 출퇴근하기도 하고, 항구가 인접해 있어서 화물차들 사이로 주행하는 일도 많아 그런지 차의 상태가 심각했다. 기본 세차 요금으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사장님의 말에, 그래 한 번 사장님도 믿어볼 겸 나름 거금(?)을 들여 디테일링을 맡겼다. 

새 차 같다 새 차...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차를 찾으러 갔을 때... Wow... 차 도장면 색이 달라졌다. 하부 도장면은 타르로 떡져있어 기계 세차든, 손세차든 절대 지워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말 깨끗해졌다. 그리고 내부도 깨끗하게 변신. 이래서 세차 환자들이 생기고 디테일링을 좋아라들 하나보다. 친절하신 사장님이 내 차 안에 있던 임산부 주차증을 보셨는지,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면 세차와 더불어 내부 소독도 해주시고, 카시트 장착도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다. 작은 것에 감동하는 나... 다음엔 쏘렌토 데리고 방문할게요!


8월 4일 목요일 (18주 4일)

남편이 돌아왔다. 중요한 업무로 출장을 가있었던 터라, 출장지에서 야근이 많아 피곤에 절어 돌아온 남편을 위해 점심 식사로 신라스테이 구로 런치 뷔페를 예약했다. 예약은 캐치테이블에서 간편하게 가능하고, 평일 런치는 22,000원으로 아주 가성비가 훌륭한 편이다. 나는 전 직장 동기들과 몇 년 전부터 자주 왔었는데, 각자의 이직 기념, 결혼 기념 등으로 방문했어서 올 때마다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평일 런치로는 처음 방문해보았는데, 평일 디너 또는 주말 런치와는 메뉴 구성이 조금 다르긴 했다. (일단 맥주 무한이 안 되는 것은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왜 평일엔 낮술 안돼...?) 그러나 역시 가성비 넘치는 음식들로 구성되어있다. 남편은 어쩜 음식이 하나하나 다 맛있냐며 감탄하며 몇 그릇을 해치웠다. 나도 임신 중 양이 줄어 많이는 먹지 못했지만, 이왕 먹는 거 맛있는 식사로 채울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평일에 시간이 난다면 한 번쯤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집에서 가까운 구로로 방문했지만 마포, 서대문 등도 가격대가 비슷하니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골라 갈 수 있다.


8월 5일 금요일 (18주 5일)

내 생일은 항상 방학이었다. 아버지도 항상 이때가 여름휴가였어서, 내 생일은 언제나 여름휴가와 함께였다. 학교를 다닐 땐 학기 중에 생일을 맞으면 친구들이 축하해주는 모습이 조금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휴가 중에 맞는 생일이 더 좋다. 일 안 하는 게 최고의 생일 선물이야...

올해 생일엔 평소에 먹어보고 싶었던 고든램지 버거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이 또한 캐치테이블에서 예약 가능하고, 워크인으로도 방문 가능하다. 우리는 가장 첫 타임을 예약해 아침을 먹지 않고 방문했는데, 평일이라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워크인으로 오는 손님들이 꽤 많았고, 입장도 수월하게 하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헬스키친버거, 포레스트버거, 트러플 파마산 프라이즈, 바닐라 밀크쉐이크를 주문했다.


1. 바닐라 밀크쉐이크

바닐라 밀크쉐이크를 여러 프랜차이즈에서 먹어봤지만 진짜 바닐라빈이 들어간 밀크쉐이크는 여기가 처음이다. 베이킹이 취미라서 바닐라빈의 사악한 가격은 익히 알고 있는데, 이렇게 바닐라빈을 때려 넣은 밀크쉐이크는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다. 심하게 달지도 않은, 딱 적당한 당도에 입안을 감도는 바닐라빈의 풍미... 가격이 납득되는 맛이다.

사진엔 잘 안 잡혔지만 바닐라빈이 콕콕 박혀있다.


2. 트러플 파마산 프라이즈

여기에 방문했던 유투버들이 극찬했던 메뉴라 꼭 시켜보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딱 나오자마자 한 입 먹어봤던 그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하겠다. 갓 튀긴 감자튀김에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갈아 올리고, 리얼 트러플. 이게 중요하다. 리얼 블랙 트러플 소금이 올라간다. 수많은 트러플 감자튀김들을 먹어봤지만 찐으로 트러플을 올려준 곳은 여기가 유일했다. 오일로 그냥 흉내 내는 트러플 향 말고 진짜 트러플이라구... 곁들이는 소스도 좋다. 양파맛 소스(?)로 추정된다.

감자튀김에 거뭇거뭇하게 묻어있는 것이 트러플이다. 


3. 헬스키친 버거

고든램지 하면 헬스키친 아니겠는가. 뭔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 같아 일단 한 개 골랐다. 버거를 반 갈라 남편과 한쪽씩 나누어 먹었는데, 두꺼운 소고기 패티의 육향이 팡팡 터진다. 미국에서 많이 먹어보았던 미국 치즈버거의 맛 같은데, 고든램지는 영국 사람 아니었던가? 아주 느끼하고 맛있다. 그래서 사실 콜라는 필수다. 콜라는 역시 제로콜라.

패티의 두께가 어마어마하다. 투쁠한우를 사용한다는데, 원가를 생각하면 가격이 납득된다.


4. 포레스트 버거

이 버거가 진짜 찐이다. 내가 즐겨보는 유투버도 이 버거가 제일 맛있다고 하며 정말 잘 만든 요리 같다고 평했는데, 왜 그렇게 말했는지 납득되는 맛이다. 처음엔 버거에 풀떼기(?)와 반숙 계란후라이가 들어있길래 이건 무슨 조합이지, 싶었는데 역시 고든램지는 고든램지다. 본인의 이름을 걸고 파는 이유가 설명되는 맛이다. 훌륭한 음식엔 적절한 산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구석 미식가인데, 전체적인 밸런스가 너무나도 완벽한 맛이다. 옆 테이블 손님들은 버거를 스테이크 썰어먹듯이 해체해서 재료 하나하나 맛보던데, 제발 그렇게 먹지 말고 반만 갈라서 손으로 집어먹자. 다 같이 먹어야 완벽한 음식이다.

중간에 저 버섯볶음? 이 대박이다. 사진을 보니 또 먹고 싶다.


처음에 나온 버거 사이즈를 보고는 배가 부를까 싶었다. 나야 양이 줄어 당연히 배부르겠지만, 나 때문에 대식가가 되어버린 남편의 배를 채울 수 있을지 조금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다. 우리는 너무나도 맛있었던 감자튀김을 남기고 올 정도로 배가 터지게 포식했다. 둘이서 방문하면 버거 두 개에, 감자튀김이면 충분하다. 그중 나의 추천 메뉴는 포레스트 버거와, 트러플 프라이. 그리고 취향에 따라 바닐라 쉐이크.


8월 6일 토요일 (18주 6일)

계속 실내 데이트만 해서 그런지 남편이 교외로 떠나기를 원했다. 다행히 이날 오후 늦은 시각이 되니, 해도 구름에 가려지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 기온이 선선했다. 주말에 영종도에 종종 가긴 했었는데, 그때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가는 식당이나 카페마다 주차난에, 줄 서기 바빴는데, 이번엔 시간차 공격을 해보기로 했다. 

5시 30분쯤 출발해 미리 알아둔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도착한 시간이 6시 30분 정도 되었는데 영업 마감이란다. 그래서 옆 옆 칼국수 집으로 향했는데, 못 간 칼국수집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 다음엔 여기의 시그니처 메뉴인 해물만두전골을 먹어봐야겠다.

깔끔한 국물과 부추면, 면이 두꺼운 편이라 꽤 오래 익혀야 한다.

그리고 카페로 이동했다. 영종도 사는 지인이 데려가 준 카페인데, 절벽 위에 위치해있어 전망이 아주 좋다. 우리는 썰물 때 방문해서 찰랑찰랑한 바다는 볼 수 없었지만 낙조가 꽤 멋졌다. 음료와 같이 먹은 쑥팥케이크와 현무암같은 빵도 아주 맛있었다. 날씨가 선선해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는데, 오랜만에 뻥 뚫린 전망을 바라보고 앉으니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는 듯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진 밤, 인천대교를 드라이브하며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여름휴가도 좋은 휴식이었다고, 우리 둘이서 보내는 마지막 휴가라고. 

내년엔 둘이 아니라 셋이서 함께 보내는 여름휴가가 되겠지?

작가의 이전글 [17주 임신일기] 변비지옥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