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결국 최선의 선택들로 만들어진 집합체이다
이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십 대의 자신을 만나는 상상을. 그렇게 과거의 나와 마주했을 때 무슨 말을 해 줄지 그리고 과거의 나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할지 하는 상상 말이다.
십 대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과에 가라고? 기술을 배우라고? 전문직에 종사하도록 자격증을 찾아보라고? 그러나 나는 그 당시의 내게 무슨 말을 하던 통하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그때의 나는 글에 대한 열의와 작가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다. 머릿속에 있는 상상들을 메모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뛸 듯이 벅찼다. 짧은 장면, 순간의 감상과 단편들을 적어 모으면 그게 글이 되고 소설이 되고 작품이 되리라 믿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놀라우리만치 백지 앞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무색할 정도로 절망했다. 텅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 그만한 절망이 다시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던 순간들.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밝은 화면에 눈은 부셨고 커서를 노려 본다고 글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에 겨우 적어 내려가는 게 ‘나는 지금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다’로 시작되는 문장인데 그렇게 시작한 글은 대게 한 문단도 못 적고 다 지워버리기 일쑤였다.
십 대의 희망엔 백지의 절망도 함께 자리했다. 지금의 내가 희망만을 기억하고 과거로 돌아가 글을 써야 한다고 닦달한들, 그리고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그 꼴이 뭐냐고 원망을 한들 우리는 같은 희망과 절망을 공유했다. 항상 마주해야 하지만 피해 다녔고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텅 빈 백지와 그 시간들을.
그러니 타임머신은 필요 없다.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결정들을 내릴 것이다. 글에 대한 열의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결국 좌절하는 순간들을 마주할 것이다. 텅 빈 메모장 앞에서 절망하겠지만 그럼에도 꾸역꾸역 키보드에 손을 올리고 글을 쓸 것이다. 지금의 내가 최선의 나라는 사실을 안다. ‘지금 생각해 보면’이라는 핑계는 결국 과거로 돌아가봐야 하등 쓸모없는 말이다. 겪어보고 싶지 않았던 경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후회하고 반성하며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니 과거의 나의 최선인 지금이 혹여 다시 절망하고 좌절하더라도 이렇게 써 내려가길, 텅 빈 여백에서 멍 하게 있더라도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