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지 못했던 시간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리라. 그런 다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책을 읽게 되는 빈도는 줄어들었고 책을 잊고 사는 날이 늘었다. 내 키보다 더 큰 책장에 책을 가득 넣어 놓고도 책을 잊고 지냈다. 책장의 책 중 거의 절반은 읽지 않은 책들인데 누군가 사주거나 선물 받은 것이 아닌 내가 보려고 산 책들이다. 인터넷 서점은 물론 독립서점과 크라우드펀딩 등 산 곳도 다양한 데다 장르도 소설, 인터뷰집, 에세이, 희곡집, 사전 등 여러 가지다. 하지만 그 책들을 꽂아 놓고만 지냈다. 읽으려 했으나 금방 덮었고 어떤 책은 처음 사서 꽂아 넣은 후로 손도 대지 않았다. 그 위로 먼지가 덮였는지 깨끗한지도 모른다. 확인을 위해 쳐다보지도 않았으므로.
한순간 일을 그만두고 1년을 넘게 백수로 지냈다. 모아놓은 돈을 야금야금 써가며 최대한 아끼며 살았다. 일을 그만둘 때만 해도 부지런히 책을 읽고 글을 쓰리라 다짐했지만 체득되지 않은 습관은 금방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마치 운동하겠다 마음먹은 사람이 스쿼트를 하려다 그대로 앉아서 숏폼을 보는 것처럼 내 의욕은 고작 손바닥 안에서 무너졌다. 어쩌면 그게 내 의지의 크기였을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낮의 여유가 점점 지루함과 권태로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었고 해가 지면 불안과 우울로 자책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눈을 감은 채 잠들기를 기다렸다. 분명 누워있고 눈도 감았지만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뒤죽박죽해서 잠자며 꿈을 꾼 건지 아니면 그냥 공상만 하다 날이 샌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의도치 않게 잠을 못 잔 날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밤낮이 바뀌는데 밤은 불안과 우울로 자책하는 시간이라 이 시간이 늘면 어쩔 수 없이 사는 의욕도 같이 줄어들게 된다. 아침은커녕 점심에 눈을 뜨기도 힘들었고 그렇게 일어나 미적대며 늦은 점심을 먹고 난 후면 또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5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글을 써야 했지만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 마음에 답답해서 쓰기 시작한 일기였다. 하루는 후회, 하루는 우울, 하루는 다짐을 반복하며 썼다. 그래봐야 고작 일기. 남들에게 내 보이지 못하는 문장은 다듬어지지 않았고 다시 발굴되지도 않았다. 기록은 축적되었으나 다시 꺼내 살피는 일이 없어 쓰이질 못했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는 흔적이었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이 과거에도 했던 고민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나는 발전 없이 늙기만 했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 후회, 어제의 후회로 오늘 우울, 그리고 다음 날에는 다시 해 보자는 다짐을 반복했다.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지난날을 비웃기라도 하듯, 쓰기만 하고 여전히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그저 관성에 따른 삶을 살았더니 관성만이 존재한 삶이 되었다. 매일 밤 그날의 무지를 깨달아도 다음날이 되면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 반복이 학습되지 않는 건지 아니면 인식조차 못하는 건지, 그런 반복이 지겨울 만도 하건만 이제는 고쳐질 만도 하건만, 끝끝내 그러지 못하고 결국 또 지진한 주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후회.
무언가를 시도하기보다 포기하며 살았다. 포기의 대표적인 이유는 '실패가 두려워서', '남들이 비웃을까 봐', '아직 준비가 덜 돼서'였다. 하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어차피 안 될 거 같아서'였다. 시도하지 못한 일은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부터 준비했으면 지금은 끝났을 일', '잠자려 누운 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일', '시도했다면 미련은 덜했을 일'이 되었다. 10년 간 포기한 일들은 앞으로 10년을 해도 다 못할 것 같이 덩치를 키웠고 나는 언제나 그것들에 짓눌려 밤잠을 설쳤다. 그렇게 쓰지 못한 이야기, 읽지 못한 책, 하지 못한 운동, 내 보이지 못한 글, 편집하지 못한 영상 등 시도하지 못했거나 시도했으나 마치지 못한 것들이 빽빽하게 주변을 에워쌌다. 그리고 다시 후회.
글을 계속해서 쓰면서 살고 싶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무명이라기에는 써 놓은 작품이 없었고 작가라기에는 등단하지 않았고 아마추어라기에는 열정이 없었다.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는 다짐을 했던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저 지망생일 뿐이었다. 진작에 뗐어야 하는 꼬리표다. 죄책감이나 걱정은 늘 가득했다. 그 꼬리표를 눈앞에서 안 보이게 치운들 뒤통수에 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누군가 내 뒤통수의 꼬리표를 보며 어째서 글을 쓰지 않느냐고, 왜 책을 읽지 않느냐고 물으면 얼굴에 가면을 쓰고 나름 읽고 쓰고 있다 호소했다. 그리고 다시 후회.
모든 시도는 그에 앞서 걱정을 데리고 온다. 누군가는 준비라 부르고 누군가는 망설임이라 칭하는 그 선두에게 나는 번번이 져왔다. 그 어떤 전쟁도, 저항도 없이 그저 항복하며 성문을 열었다. 이미 포기의 식민지가 된 나는 독립의 의지도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아아 부디 아량을 베풀어 되도록 빨리 저 문을 열고 나가주기를. 아니, 차라리 더 오래 머물러 주기를. 나를 밀어내고 이 집에 눌러앉아 언제까지고 계속 통치해 주기를. 내 의지를 무시하고 언어를 부정하고 사상을 꺾어가며 절망도 절망이라 느끼지 못하게 하기를. 그 두려운 치세 속에서 누리는 것들을 영광이라 여기며 살게 하기를. 그리고 다시 후회.
힘이 없는, 힘을 내고 싶지 않은 매일이 반복된다. 일상은 이미 부서져 형태를 잃었고 나는 그게 어떤 모습이었는지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책을 언제 읽었는지, 얼마나 읽었는지 가물가물하다. 읽다만 책을 다시 펼친들 끊긴 부분부터 다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을 본다. 책등에 적혀있는 제목이 아스라다. 언제 마지막으로 읽었는지,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삶에서 글이 이토록 멀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그리고 그 멀어짐을 다시 붙잡을 자신이 없다. 마치 생애 온 불안과 우울이 지금 이곳에 집중된 기분이다. 지금 이렇게 불안에 떨고 나면 남은 생은 믿음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 지금 이렇게 무기력하고 우울하면 남은 생은 활기가 넘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럴 리 없다. 그리고 후회.
나는 내가 무의미하게 보낸 시간들이 내게 달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복수처럼 다가오는 시간에 담담히 무릎을 꿇을 것이다. 그 복수는 정당하고 한편으로는 정의롭다. 한낮의 권태가 옆구리를 베면 밤의 자책이 가슴을 꿰뚫고 마침내 불안이 내 목을 칠 것이다. 후회는 이 광경을 보고 유유히 자리를 뜰 것이다.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을 지켜보는 것처럼 이내 다른 사람을 물색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복수의 얼굴은 나의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그러니 후회
후회는 사라지지 않고 불안은 옅어지지 않는다. 보람으로 조금씩 희석될 뿐이다. 그리고, 여전히 읽진 않으나 쓰고 있는 일기를 생각한다. 미쳐 다 못 읽은 책이 내게 어떤 감상과 감정을 불러왔는지를 생각한다. 인물이 그려내는 장면의 찬란함과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갈등과 말하지 못한 생각에서 흐르는 감정을 생각한다. 집에 남아 있는, 아직 다 못 먹은 시리얼과 냉장고 속 재료들을 생각한다. 며칠에 걸쳐 조금씩 읽고 쓰기를 반복한 이 글을 생각한다. 아직 못다 완성한 메모들을 생각한다. 내가 나를 수렁에 넣어 머리를 누르고 절벽에 붙잡은 손을 밟는 순간에도 나는 허우적대며 빠져나가려 발버둥 치고 안간힘으로 버틴다. 삶의 기록과 흔적이, 그 관성이 나를 살렸고 그 반복이 나를 움직이게 했고 그 무지가 나를 다시 자리에 앉혔고 그 포기가 나를 다시 시도하게 했다. 불안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고 후회가 완성했다.
남은 모든 생의 불안이 이와 같진 않겠지만 이와 비슷하기도 할 것이다. 살아 생애동안 불안이 사라지지 않을 것을 안다. 돈은 버는 수단보다 나가는 구멍이 더 많을 것이고 아무리 모아도 쓰려는 순간에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여유는 사치일지 모르나 독립의 자유처럼 바랄 것이다. 그러니 후회를 안고 다시 이렇게 글을 쓸 것이다. 울며 쓸 것이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