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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Feb 08. 2023

분리수면보다 중요한 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은 분리수면에 도전하고 있다. 자신의 방 싱글 침대에서 자다가 굴러 떨어져 중간에 돌아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눈 떠보니 아침이기도 하지만 연속 이틀 이상 분리수면에 성공한 날은 없다. 아이의 돌이 지난 후 이사를 한 뒤 남편에게 분리수면을 하자고 제안했다. 아직 어린 아가를 혼자 재우기 좀 그렇다는 남편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그때 좀 더 강력하게 내 의견을 주장하고 실행에 옮겼어야 한다고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 차라리 뭘 모를 때부터 잠은 그냥 혼자 자는 거라는 걸 받아들이게 했어야 했다. 부부의 침실에 킹 사이즈 침대와 퀸 사이즈 침대를 붙여 한 침대에서 어른 한 명, 아이 한 명이 자고 있다. 4명이 함께 자는 잠은 마치 날마다 수련회에 가서 자는 느낌이랄까? 불편하고 숙면을 취할 수 없다.


잠에 예민한 편이다.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잠들 수 없다. TV 화면을 보다가 소파에서 잠드는 동생이 신기했다. 내일을 위해 자야 한다고 침대에 누운 날이면 유난히 시계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린다. 방에 아날로그시계도 치웠다. 방문을 꼭 닫고 잔다. 방문을 닫지 않으면 잠들 수 없다. 자다가 누가 살짝만 방문을 열어도 그 기척에 놀라 깬다. 그렇게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드는 일이 쉽지 않다. 회사를 다닌 뒤로 편두통이 심해졌는데 편두통은 잠과 상관관계가 있다. 피곤한 날이나 잠을 잘 못 잔 날은 두통이 찾아오기 쉽다. 그래서일까 점점 숙면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잠들면 매번 코를 고는 남편. 패턴도 일정하지 않고 소리도 크다. 침대에서 가로로 자면서 뒤척임이 심한 아이들과 함께 자는 일은 곤욕스럽다.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숙면하지 못하는 날은 아침에 잠에서 깨는 일이 늘 힘겹다.


잠들었을 때 누군가 나를 깨우면 짜증이 난다. 그 짜증은 애 어른을 가리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낳은 내 자식이라도 예외는 없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런 내 모습이 나의 부모와 소름 돋게 닮아있다.


나도 분리수면에 도전했던 시기가 있다. 그게 언제였는지 기억을 떠올리면 1년 정도 수원에 살았던 집이 떠오른다. 서울이 아니어서일까 그 집은 우리가 살았던 집 중 최초의 쓰리룸이었다. 그리고 나는 7살이었다. 입학을 앞둔 해였다. 엄마는 빈 방에 요와 이불을 깔고 이제부터 여기서 혼자 자야 한다고 했다. 살림살이도 없던 휑한 방은 7살인 내가 혼자 자기엔 너무 커 보였다. 무서워하는 나에게 엄마는 오래된 라디오를 내 머리맡에 놔주었다. 안테나를 길게 뽑아야 하고 직육면체에 동그란 스피커 부분이 있고 테이프를 하나 넣을 수 있었다. 라디오를 켜 놓은 채 혼자 자는 연습을 했다. 그 집을 떠나 서울의 달동네에서 국민학교 1학년을 다녔고 2학년 때 이사를 하며 전학을 했다. 2학년 때 살던 집은 서울 변두리의 투룸빌라였는데 전세가 아닌 자가였다. 그 집에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다. 다섯 살 동생이 좀 클 때까지 나는 작은 방에서 혼자 잠을 잤는데 중간에 잠이 깨면 늘 무서웠다. 공포가 찾아오면 잠은 달아난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꿈뻑꿈뻑하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베개를 들고 안방으로 갔다. 살금살금 갔다. 엄마 아빠가 깨면 분명히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라고 할 테니까. 안방에선 부모님과 남동생이 함께 잠들고 있었다. 셋이 한 팀이고 나만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방문에서 가까운 쪽 이불 끝에 겨우 누웠다. 온 가족과 같은 방에 누워도 한번 찾아온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등이나 팔뚝에 내 손을 가져다 대었다. 아빠의 체온을 느끼며 다시 잠에 들었다.


살금살금 이동하고 조심했지만 아빠의 피부에 내 피부가 닿는 순간 아빠가 잠에서 깨는 날도 있었다. 그 순간 아빠는 크게 화를 냈다. 그런 날은 아빠의 짜증을 듣고 깬 엄마의 한 소리까지 더해졌다. 무서움과 함께 서운한 감정까지 더해진 채로 내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해야 했다. 아이들이 내 잠을 깨웠을 때 어린 내가 느꼈던 무안함과 서운함을 똑같이 느끼겠지? 결국 나는 닮고 싶지 않았던 어른이 되어있다.


아빠와 한 침대에서 자던 딸이 잠에서 깬 뒤 무서웠던 걸까? 작은 목소리로 아빠에게 말한다. "안아줘" 그 말에 잠귀가 밝은 내가 먼저 잠에서 깼다. 나는 옆 침대에 있고 안아줄 수 없다. 아이는 한번 더 말한다. "아빠 안아줘." 조금 텀을 두고 남편이 움직인다. 아이의 방향으로 돌아누워 아이를 꼭 안아준다. 이런 순간이 종종 있다. ‘아! 내가 이래서 이 사람과 결혼을 했구나.’ 생각하게 되는 순간말이다. 아이들에게 이런 아빠를 만나게 해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선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하고 공포가 찾아올 때면 옆에서 자고 있는 남편을 끌어안았다. 잠든 나를 남편이 갑자기 끌어안는다면 짜증을 냈을 텐데 남편은 나의 손을 잡아준 채로 다시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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