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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Feb 23. 2023

속 좁은 아내의 사연

결혼 전 장점은 결혼 후 단점이라는 진리


경남 창원에 살고 있는 40대 주부입니다. 한 살 많은 남편과 8세, 4세 남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30대 초반 자전거 동호회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둘 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남편의 고향에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 남편의 일 때문에 거주지의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상담을 받고 싶지만 오늘 상담받고 싶은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말이 없어 가볍지 않아 보이던 남편이 저에게 호감을 보였을 때 소개팅에 지쳐있었기에 한번 만나나 보자 그런 마음으로 연애를 시작했는데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친구들에게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 남편의 어떤 매력을 느껴 결혼까지 하게 된 건지 궁금해했습니다. 질문을 받으니 답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대화가 시작되면 매번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말싸움에서 격렬한 몸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전쟁터와 같은 환경 속에서 마음 편한 날 없는 성장 시기를 보낸 저는 다른 사람과의 원만한 의견조율의 과정을 보고 배우는 기회가 드물었습니다. 부모님은 대화하고 합의점을 찾기보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상의 없이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일단 저지르고 보는 편이었습니다. 잦은 의견충돌을 보고 자라서 인지 타인과의 갈등을 회피는 성향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직장생활을 하며 사회생활에서도 내 의견을 건의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대신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는 편입니다. 타인에게 좋은 무언가가 꼭 나에게도 좋다는 법은 아닌 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런 관계에서는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며 나의 의견을 묵살하고 대세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는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갔습니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얼마나 효율적이 던지요. 약속을 잡는 소통의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고 여럿이 움직일 때보다 기동력도 좋아졌습니다. 효율적으로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전시회에 다녔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혼자서만 지내다 보니 또 문득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타인과 내가 느끼는 감정을 공감받고 싶다는 욕구 또한 내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취향이란 게 없는 걸까? 의심이 들 정도로 모든 걸 저에게 맞춰줬습니다. 밥 먹을 시간이 되어 먹고 싶은 메뉴를 물으면 딱히 먹고 싶은 메뉴가 없었습니다. 내가 먹고 싶은 걸 말하면 그럼 그걸 먹자고 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가보고 싶은 전시회에 함께 가고 내가 보고 싶은 공연을 함께 보았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 데이트를 이어가는데 의견 조율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보고 싶었던 공연이나 영화를 본 뒤에도 남편은 전반적으로 만족해하는 편이었습니다. 불만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뭘까 싶었습니다. 내 영혼의 단짝이라도 만난 것일까 만족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결혼까지 하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연애와 결혼 생활을 합쳐 10년 정도가 되어가는 지금,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제가 변한 걸까요? 제 의견만을 따라주는 남편에게 조금씩 불만이 쌓이고 있습니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남편. 결혼기념일에도 아내의 생일에도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아내의 생일날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전화를 건 남편이 물었습니다. “아빠 엄마랑 밥 먹을래?” 여기서 엄마아빠는 옆 동에 살고 계신 시부모님을 말하는 겁니다. 친정부모님은 현재 경기도에 살고 계십니다. 아이들 생일에도 남편의 생일에도 시부모님의 생신에도 시부모님과 항상 저녁식사를 하고 생일을 축하합니다. 그런데 제 생일까지 시부모님과 식사를 해야 하는 게 맞습니까? 저는 남편에게 버럭 화를 냈습니다. 남편은 생각이 짧았다며 아빠가 저녁을 먹을지 물어보길래 그랬다며 사과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의 울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생각이 짧은 게 아니라 생각이라는 게 아예 없는 거 아닙니까? 아내 생일날 무얼 할지 아무런 생각도 해보지 않고 계획이 없으니 시아버지의 한마디로 이런 결과를 낸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화가 나는 부분은 이 부분입니다. 어떤 계획도 없다는 거 그저 내가 하자고 하는 것을 따라올 뿐.


앞에서도 말했듯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결혼 전과 달라진 게 없습니다. 그저 같은 상황을 두고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저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화가 나는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해 사연을 보냅니다. 이런 저에게 선생님이라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지 궁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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