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끝내고 퇴근한 남편은 집으로 제2의 출근을 했다. 집에 도착해 손을 씻고 나옴과 동시에 공동 육아가 시작된다. 나는 저녁 준비를 하며 남편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상태에서 남편이 해줬으면 하는 일들의 목록을 다다다 쏟아낸다. 말을 하는 내가 숨이 찰 지경인데 남편에게 잘 전달이 되었을까? 저녁을 먹고 성별이 같은 아이를 한 명씩 맡아서 씻기고 재우면 진정한 하루의 퇴근을 할 수 있다. 그 시각은 대략 22시 전후다. 아무리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이라도 그 시간에는 집 밖으로 나갈 의욕이 생기지 않나 보다. 그는 그저 소파에 모로 누워 TV를 켠다. 아이들이 등원한 시간 동안 연습장에 다녀온 나는 남편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내 방으로 들어간다. 남편의 마음을 알면서도 내가 먼저 선뜻 퇴근하고 연습장에 다녀와도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남편을 연습장으로 보내면 그 시간만큼 내가 남편이 맡고 있던 육아까지 커버해야 한다.
남편 일이 바빠져서 새벽에 출근하고 퇴근까지의 업무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잠깐의 휴식 시간도 없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 기간 동안 어느 순간부터 퇴근한 남편을 연습장에 보내줄까 말까 고민하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내가 연습장에 다녀온 날이면 남편도 연습장에 가야 하는 게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머리로는 아는데 부부사이에 모든 일이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내가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남편의 업무시간에 여유가 생기길 바라며 버텼다. 그러다 문득 나 스스로 이기적인 아내라는 생각을 그만하고 싶어졌다. 남편 등에 매달려 있던 군장을 일주일에 2시간가량 내가 대신 짊어지겠다는 다짐을 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퇴근하고 운동하고 와도 돼."
"두 번은 안돼?"
"없던 일로 할래?"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전부터 계획이 있었던지 15분 정도의 레슨 말고 돈을 좀 더 지불하고 50분 동안 진행되는 1:1 레슨을 받고 싶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 육아가 시작된 후로는 한정된 시간에 최고의 효율성을 끌어낼 수 있도록 고심한다. 그렇게 남편의 1:1 레슨은 시작되었다. 역시 비싼 게 좋은 걸까? 레슨 10회를 받고 추가로 10회의 레슨을 결제하고 남편의 실력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하원한 아이들이 할머니댁으로 가서 저녁을 먹는 날이면 남편과 나는 스크린골프를 예약한다. 1게임을 하려면 대략 2시간 정도가 걸린다. 18시 30분부터 20시 30분까지 게임이 끝나면 바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 내일을 위해 아이들을 씻기고 재워야 하니까. 남편과 나는 저녁을 먹을 시간이 따로 없다. 김밥과 떡볶이를 포장해 간다. 남편이 먼저 공을 치고 나는 김밥을 입어 넣는다. 내가 공을 칠 순서가 빠르게 돌아온다. 공을 치는 건지 김밥을 먹으러 온 건지 모르게 전반 9홀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이제 몸도 풀렸고 후반 9홀에 집중해 본다. 나보다 2년 정도 먼저 골프를 시작한 남편이 연습을 못하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연습을 하며 남편의 스코어를 따라가고 있다. 내심 남편을 이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레슨을 받고 난 남편은 나의 격차는 다시 벌렸다. 나의 최고 스코어는 94타. 남편의 최고 스코어는 75타. 골프는 골프채를 적게 든 사람이 이기는 운동이다. 나를 이기고 있으면서 계속해서 정타를 못 맞췄다며 아쉬워하는 남편에게 한 소리 한다.
"자꾸 그렇게 앓는 소리 하면 같이 게임 안 다닌다!?"
나보다 잘 치면서 매번 나를 패자로 만들면서. 마음속에서 어떤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왜 너만 비싼 레슨 받아? 나보다 운동 신경도 좋으면서. 이럴 때만 남편과 공평해지려 한다. 결국 나도 같은 프로에게 1:1 레슨을 등록한다. 일단 10회 등록. 나보다 잘하는 남편이 20회를 끊었다면 나도 최소 20회 이상의 레슨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나중에 추가 등록해야지! 전보다 현장에 나가는 일이 줄어들면서 드디어 남편에게 연습장에 갈 여유가 생겼다. 마침 내가 다니는 연습장에서 1+1 등록 이벤트 중이다. 남편이 6개월 등록을 하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6개월 이용기간이 연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