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은 Oct 17. 2023

1%의 남자

1:1 레슨을 시작한 후 첫 라운딩을 앞둔 시점이었다.  프로가 이번주에는 주 2회 레슨을 받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번주 화요일 레슨이  4회 차. 프로가 첫 레슨을 끝내고 레슨 후의 달라진 나의 비거리를 예상했었다. 7번 아이언 110미터. 드라이버 170미터. 겨우 4회 차 레슨만에 프로가 이야기한 비거리를 정말로 넘겨버렸다. 프로 점쟁이야 뭐야! 이게 된다고? 얼떨떨한 나와 다르게 프로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기쁜 마음에 프로는 목표치를 수정했다. 본인이 10년 넘게 레슨 하면서 여자 수강생 중 드라이버 비거리 200미터를 넘긴 회원이 5명 정도뿐인데 내가 여섯 번째 회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프로의 기대를 받자 내 어깨에 부담감이라는 녀석이 매달렸다. 또 한편으로는 어쩌면 정말 장타를 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이라는 싹이 올라왔다. 프로는 SNS 기록용으로 동영상을 좀 찍어도 되는지 물었다. 나는 상관없다고 말하며 다만 동영상을 공유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금요일도 레슨을  예약했다. 5회 차 레슨을 앞두고 수요일엔 혼자 연습장에 다녀왔다. 목요일엔 점심시간에  남편과 김치찌개를 먹었다. 육아를 하면서 우리 부부의 식사시간은 크게 줄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부부 중에 누가 먼저  밥 한 공기를 먼저 먹는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식사시간만 줄어든 건 아니었다. 대화도 줄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는 각자 핸드폰만 보았고 음식이 나온 순간부터는 말없이 밥만 먹었다. 그나마 함께 운동 친구가 된 뒤에 대화가 늘어난 게 이 정도다. 하루 중 한 번은 연습장에 갈 건지 묻는 톡을 보내게 되었으니까. 그리고는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할 여유도 없이 함께 연습장에 갔다. 남편을 내 앞 타석에 세운다. 남편을 뒤태를 보며 나도 연습을 시작했다. 야외 연습장에서 레슨을 받을 땐 프로가 몇 마디 해주지 않아도 평소보다 공이 잘 맞는다. 실내연습장으로 돌아와 지켜보는 사람(프로) 없이 연습을 하면 이상하게 레슨 전의 실력으로 돌아가서 공이 잘 맞지 않는다. 화요일 레슨보다 수요일 연습 땐 공이 덜 맞았고 목요일인 오늘은 어제보다 더 상태가 나빠졌다. 연습장 등록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성실하게 출석을 하는데 공은 점점 더 맞지 않는 아이러니. 왜일까? 성실하게 바보가 되어가는 이 느낌. 연습 중간 잠깐 쉬는 시간을 갖는  남편이 나를 향해 돌아서서 묻는다.

"잘 돼 가?"

"아니"

묻긴 뭘 물어. 언제쯤 자신 있게 "이야, 오늘 진짜 공 기가 막히게 맞는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시어머니는 라운딩에서 공이 너무 잘 맞아 기분이 업된 상태로 퍼터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녹조가 가득한 연두색불투명한 연못에 새로 산 비싼 퍼터를 퐁당 빠뜨린 적이 있다고 하던데. 얼마나 더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해야 공을 치며 그렇게 기분 좋은 날이 올까? 과연 내게도 공치면서 그렇게 신바람 나는 순간이 찾아올까?

남편은 연습을 쉬는 동안 나의 연습 스윙을 본다. 아무 말이 없다. 지금 이 순간 아내에게 어떤 말을 꺼내든 그 순간 부부싸움이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아는 눈치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아내가 안타까워서 팁을 좀 주고 싶다는데 나는 잘하지도 못하면서 앞서가는 선배의 조언을 고깝게 여기며 잔소리로 치부한다.


금요일이 되어 레슨을 받으러 갔다.

"연습장에서 잘 맞았어요?"

"아니요."

"원래 회원님 모두 그렇게 말해요. 어디 한번 봅시다."

프로의 말과 표정에는 화요일 나에게 품었던 기대가 아직 묻어 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스윙을 했다. 몇 번의 스윙을 지켜본 뒤 프로가 말했다.

"수요일 목요일 이틀 동안 도대체 회원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화요일의 장타꿈나무는 지금 여기 없다.

"연습장에서 계속 이랬어요?"

"네..."

"조**회원님이랑 같이 안 갔어요?"

프로는 남편과 함께 연습장에 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같이 갔는데요..." 내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진다.

"아무 말씀도 안 했어요?"

"얘기하는 거 싫어해서 아무 말도 안 해요."

"와, 진짜 대단하시다. 1%로의 남자와 살고 계신 거예요. 보통은 부부가 함께 치면 남편 분들이 운동 신경도 더 좋은 편이고 더 잘 치기도 해서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스윙을 보다 보면 답답해서 뭐라도 알려주려고 하거든요"

남편이 1%로의 남자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남편이 연애 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는 건 안다. 남자 친구인 본인이 아는 것을 여자 친구인 내는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 실제로 내가 골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해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자신이 아는 것을 내게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 중에는 남편이 맨스플레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한 몫했다. 물론 살다 보니 이 남자가 맨스플레인을 안 한 게 맞는지, 그냥 나보다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건 아닐까 하고 의문이 생길 때도 있다. 자주 있다. 


육퇴를 한 뒤 남편은 내게 오늘 레슨을 잘 받았는지 묻는다. 레슨에서 뭘 배웠는지도 묻는다.

"프로가 파리채로 파리 잡아본 기억을 떠올려 보라더라. 배드민턴 친 적 없냐고 묻고, 손목을 꺾어야 한다고. 배드민턴을 쳤을 때 네트를 넘어오는 공을 한 번도 되받아 쳐본 적이 없거든. 그래서 배드민턴을 거의 안 쳤는데 알리가 있나?"

"아... 망치질할 때, 블라블라블라"

프로의 말을 모르겠다는 아내에게 남편은 친절하게 다른 예를 들어 이해시켜 보려 한다. 아내의 수준에 맞게. 나는 다급하게 남편의 말을 끊는다.

"아니야 오빠 됐어. 거기까지!"라며 두 손을 내 가슴 앞에서 남편에게로 밀어낸다.

"아 그래. 여기까지."라며 남편은 웃는다. 나는 서둘로 내 방으로 숨는다.

이전 05화 왜 너만 비싼 레슨 받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