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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Apr 13. 2023

잔소리는 거들뿐

잠들기 전 딸은 샤워를 시켜주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오늘은 친구에게 서운한 게 있었던 모양이다. 친구가 한 말을 듣고 속상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친구가 너에 대해 어떤 평가를 했다고 해서 그 말이 사실은 아니라고 교과서 같은 말을 한다. 친구가 나에게 바보라고 했다고 내가 바보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속상해하는 딸을 보면 함께 속상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속상하다고 표현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면 친구는 화를 낸다는 말에 나의 뇌관에 스파크가 인다.

"친구는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너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친구가 화를 낼까 봐 할 수 없다면 그건 진짜 친구가 아니야. 사이좋게 지내려고 참기만 하면 안 돼. 그 말을 해서 싸우게 되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다른 부분이 있다면 맞춰나가야 해."   


인간관계에서 하고 싶은 말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런 말까지 내게 한다고? 예의는 밥 말아먹었나 싶은 상대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잠들기 전 내가 그에게 아무 말도 못 한 상황이 분해 이불킥을 날린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그 상대와 어떤 이유로든 계속해서 부대껴야 할 때면 스트레스를 주체할 수 없다. 그 상대가 직장 동료일 때도 있고 친구일 때도 있었고 부모님이나 남동생일 때도 있었다. 우정만으로 친구관계가 유지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필요에 의해서 싫어도 끊어낼 수 없는 친구도 있으니까. 친구도 그런데 피를 나눈 가족이며 돈 받고 일하는 회사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와중에 오로지 내 의지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중단할 수도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남자친구. 남자친구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했다. 물론 하고 싶지 않은 말이 있으면 하지 않는 것도 가능했다. 어떤 상황을 마주한 순간 정확하게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시간이 한참 지났어도 할 말이 남아 있다면 꼭 하고 넘어갔다. 종종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화를 내고 나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듣기 싫은 잔소리일 때도 있었다. 결혼을 한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상태로는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 반대로 나는 남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아내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까지 이기적으로 굴어본 상대가 있었을까? 나의 이런 태도 아래에는 이렇게까지 해도 남편이 나를 다 받아줄 수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믿음이 있는 걸까? 남편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는 걸까?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말들을 어디에 털어놓고 있는 걸까? 남편의 어딘가에 고여 썩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남편의 점심시간에 맞춰 만났다. 남편 사무실 근처의 자주 가는 김치찌개집. 남편은 라면 사리를 좋아하지만 내가 먹고 싶은 당면사리를 추가한다. 지난주부터 메뉴에 계란말이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계란말이 하나에 행복해지는 사람이 바로 나다. 맛있게 먹고 배부른 상태로 식당을 나와 함께 걸어가는 길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는 나한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있어?"

"하는 것도 있고 안 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으면 답답하지 않아?"

"순간이더라고 말을 하고 싶은 그 순간만 참으면 또 괜찮더라고."

"그런데 말을 하지 않으면 나는 모르잖아? 그러면 그 상황들이 계속 반복되잖아?"

"말을 해도 똑같더라고."

최애메뉴인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먹고 행복했던 나는 팩폭을 날리는 남편을 보고 박수를 치며 과장되게 웃어 보일 수 있다. 만약 배가 고프고 예민한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언제 그랬냐며 남편의 말에 발끈하며 따지고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작년 나의 생일, 올해 나의 생일. 생일마다 무심한 남편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남편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지 아주 세세하게 이야기했다. 시댁 옆에 살면서 아이들의 생일날도 남편의 생일날도 시부모님의 생신에도 시부모님과 함께 저녁식사를 한다. 그런데 왜 내 생일까지 시부모님과 식사를 해야만 하는 거냐고. 생일날까지 불편한 식사를 해야만 하는 게 불만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멀리 양주에 계신 나의 부모님 생각이 난다. 왜 내 부모님은 생신 당일에 자식들과 밥 한 끼를 먹을 수 없는지. 남편은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잘 듣는다. 과거와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나는 내가 그런 남편을 키웠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편을 변화시킨 거라고. 반면에 나는 어떨까? 빨래를 개키지 않고 소파 위에 올려두는 나를 보며 남편은 말했다. 빨래를 했으면 개켜서 옷장에 잘 정리해 뒀으면 좋겠다고. 그때 나는 선언했다. 앞으로도 빨래를 개키지 않을 거라고 그 일이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런 나에게 남편은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냐고 ‘정상'적인 주부는 아니라고 말했었다. 정상은 아니라는 말에 나는 또 발끈한다.

"그런데 오빠, 식탁 위치가 바뀌면서 식탁 위에 있는 등 위치를 옮겨달라고 부탁했고 오빠가 알겠다고 했잖아. 그 이야기 한지 2년이 넘은 것 같은데 오빠 계속해준다고만 하고 안 해주잖아. 해준다고 하고 안 하는 게 나은 거야? 하기 싫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차라리 포기시키는 게 나은 거야?"

참고로 우리 남편은 전기기술자이다. 부탁이 계속되면 잔소리가 될까 싶어 6개월 정도의 간격을 두고 다시 이야기했다. 남편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아내의 변론에 할 말을 잃는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산처럼 쌓여있는 빨래를 남편이 하나씩 개킨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의 아빠로 성장해 가는 노력은 나의 잔소리 때문이 아니다. 그의 의지였을 뿐.


공상이 많은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만 같다. 반면 남편은 내가 아니라도 어느 누구와도 잘 살아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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