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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Oct 21. 2023

대화 없는 우리 이대로 괜찮은가

남편이 남자친구이던 시절의 우리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수시로 주고받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잠에서 깬 순서로 연락을 했고 서로 출근을 잘했는지 메시지를 확인했다. 누가 먼저 연락을 하는지, 메시지를 읽고 바로 답장을 할 건지 아닌지 밀고 당길 필요가 없는 사이였다.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짧은 통화를 잊지 않았다. 어느 날은 몸이 좋지 않았다. 평소처럼 꽉 찬 열차칸에 몸을 욱여넣고 출근을 했다. 오전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업무를 끝내고 점심식사 대신 휴식을 선택했다. 여성용 직원휴게실의 이층 침대 2개 중 비어있는 매트리스에 누웠다. 오후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깨어나기 위해 알람만 겨우 맞추고 잠이 들었다. 남자친구에게 연락할 정신이 없었다. 알람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 사이 남자친구에게 부재중 전화가 걸려와 있었다. 전화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 전화보다 먼저 도착한 메시지에는 답이 없어 걱정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바로바로 연락이 되지 않으면 서로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걱정하던 싱글시절의 우리.

부부가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 후 남편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아버지와 함께 일하기로 했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익히는 동안 전 직장을 다닐 때처럼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기보다는 공사 현장에 직접 나가는 날이 많았다. 2년 동안은 주말도 휴일도 없이 출근했다. 공사 현장이 타 지역이면 숙소에 머물며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올까 말까 했다. 사실 남편이 월급쟁이라는 점이 결혼을 결심할 때 큰 역할을 했다. 연봉이 높지 않더라도 칼퇴근하고 저녁이 있는 생활을 하던 남자친구. 그런 남자친구와 결혼을 한다면 함께 하는 저녁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돈보다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직업을 바꾼 남편은 저녁은 고사하고 주말 휴일도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독박육아를 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긴장을 놓는 순간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남편이 일하는 시간에는 최대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온 남편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숙소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또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과 나 사이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모처럼 시간이 맞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 냉면맛집을 찾아갔다. 맛집답게 식당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전화를 받자마자 '여보세요'라는 말도 꺼내기 전에 내가 황급히 뱉은 말이다.

"아니야. 그냥 점심 먹고 있나 전화했어."

남편의 대답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되며 묘한 슬픔이 찾아왔다. 이제 우리 부부는 무슨 일이 있기 전에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걸까? 남편이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오늘 먹은 냉면이 맛있었는지 오늘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나는 남편에게 이야기했을까? 서울에 살다가 남편의 일을 따라 마산에 내려왔다.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과 시부모님뿐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를 키우며 쌓이는 내 안의 이야기를 만나서 터놓을 사람이, 남편을 제외하고 한 명도 없다.

주말 동안 남편에게 휴가를 달라고 했다. 홍대 근처 호텔을 예약하고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행 KTX를 탔다. 도착하자마자 부암동으로 이동했다. 11시 환기미술관 관람 예약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렀다. 그리고 오랜 친구를 만났다. 비혼주의 친구는 나의 결혼 생활에 궁금한 게 많다.

"남편이랑 요즘 무슨 이야기해?"

"아이 이야기 빼고 무슨 대화를 하더라? 딱히 할 얘기가 없는 것 같아..."

부부사이에 이렇게 대화가 없어도 괜찮은 걸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우리 부부처럼 이렇게 대화가 없어지는 걸까? 우리 부부만 이런 걸까? 남편에게 이렇게 궁금한 게 없어도 되는 걸까? 이번에는 슬픔을 넘어 위기감이 찾아왔다.

"아, 맞다! 선물로 보내 준 샴푸 잘 쓰고 있어. 남편 못 쓰게 하고 나만."

"잉? 그게 가능해? 같은 화장실 사용하는 거 아니야?"

"같은 화장실 쓰지. 그냥 남편이 씻을 때 말했지. '초록색 샴푸 친구가 선물해 준 거니까' 이렇게까지만 말했는데 알아듣더라. '그래서 그거 나 쓰지 말라고?'라고 묻길래 바로 '응'이라고 대답했지."

"아, 그러고 보니까 그런 경우 또 있었다. 마트에 갔는데 사고 싶었던 인덕션용 뚝배기가 있는 거야. 집에 돌아와서 장 본거 냉장고에 넣으면서 TV 보고 있는 남편에게 뚝배기 이야기를 했나 봐.  씻고 나와서 남편에게 이야기 한 걸 까먹고 또 인덕션용 뚝배기를 마트에서 봤다고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그러더라 '아까 이야기했잖아. 그래서 그 뚝배기 사고 싶다는 거지? 사.'그러더라. 사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내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차리더라?!"

"뭐야?! 많은 말이 필요 없는 사이였네."

친구와 나는 크게 웃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연애 시작부터 10년 가까이를 함께 한 남편.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아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듣는다. 그렇긴 한데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말은 친구에게 덧붙이지 않았다. 아무리 부부라도 해도 매 순간 함께 일 수는 없고 우리는 매일 다른 경험을 쌓으며 살아가니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조금 달라져있다. 저녁에 무엇을 먹일지, 아이에게 지금 한글교육이 필요한지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생활대화만 나누고 싶지 않다. 오늘 어떤 기사를 읽었는데 그 기사를 읽고 내가 어떤 마음을 품게 되었는지 알려주고 싶다. 시간이 계속 흐르면 아이들이 다 크고 우리의 품을 떠나갈 것이다. 다시 우리 부부만 한 집에 남게 되었을 때 우린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까? 그때의 우리는 소통 없이 살아오며 서로에게 쌓인 간극을 다시 대화로 메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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