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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Oct 22. 2023

나보다 먼저 태어난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아이가 등교할 때는 비가 올 날씨는 아니었는데 하교할 때가 되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멈출 듯 멈추지 않는 비. 집에서 아이의 학교까지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린다. 하교 후 아이는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교문 앞에서 학원 버스를 타고 영어학원에 다녀온다. 학교 건물에서 나와 교문 앞까지 걸어가서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그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가 혼자 비를 맞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내 마음과 달리 딱 그 시간에 운동 레슨이 잡혀 있다. 당일에는 시간 변경이나 취소를 할 수 없다.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남편에게 우산이 없이 등교한 딸 이야기를 꺼낸다. 오후에 별다른 일정이 없다면 남편이 잠깐 아이의 학교 앞에 다녀왔으면 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는지 남편이 우산을 들고 학교 앞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식당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편은 질문을 이어 간다. "몇 시까지 가야 해?" "몇 분에 학교에서 나와?"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을 이어가다가 "주차는 어디에 해?"라는 질문에는 입을 잠깐 닫았다. 숨을 고르고 앞의 대답과는 다른 톤으로 쏘아붙인다. 

"오빠, 주차 위치까지 내가 정해 줘야 해? 아이 학교 데리러 갈 때 나에게 주차 위치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을까?"

그렇게 말은 했지만 핸드폰에서 지도 어플을 켜고 학교 주변을 캡처한다. 사진 편집에 들어가 빨간색으로 차가 가는 길, 주황색으로 주정차를 할 수 있는 지역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걸어서 학교까지 가는 길을 따라  검은선을 그었다.

"여기다 주차하고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돼."


사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지역사랑상품권 판매를 시작하는 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서 농협에 가서 지역상품권 20만 원을 구매하라고 했다. 1인당 20만 원까지 1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밥을 결제할 때 아이의 학원비를 결제할 지역사랑상품권을 쓸 수 있었다. 농협에 간 남편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거 카드로 구매가 안된다는데 현금이 있어야 한다는데?"

나는 남편이 은행에 가서 카드로 상품권을 살 생각을 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현금을 준비 못했다 해도 옆에 현금인출기에서 현금을 출금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알고 있는 걸 남편에게 알려주는 게 돈 드는 일도 아니고 알려주려고 하면 또 못 알려줄 일도 아니지만 가끔 도대체 내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는 걸까 답답해지는 순간이 있다. 두 아이와 함께 남편을 키우고 있는 느낌이 든다.


친정엄마를 만나면 서로의 남편에 대한 불만 배틀을 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항상 내가 진다. 엄마는 나의 하소연에 그런 건 단점 축에도 끼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아내 말도 안 듣고 상의도 없이 밖에 나가 사고 치는 것보다 귀찮게 느껴지더라고 아내에게 질문하고 상의하는 게 나은 거라고 한다. 듣고 보니 맞다. 남편을 키우는 게 낫지 남편이 친 사고를 수습하러 엄마처럼 따라다닐 생각을 하면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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