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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은 Oct 22. 2023

청개구리 아내

큰 아이가 2살일 때 남편의 고향인 창원시로 이사했다. 올해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는 서울로 꼭 돌아갈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혼자만의 다짐은 아무런 힘이 없는 걸까? 나는 여전히 창원시민이다. 문득문득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참을 수 없는 날이 있다. 꾹꾹 눌러 담았던 마음이 터지는 날은 보통 남편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다.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일을 배워보겠다며 남편의 선택은 존중하지만 꼭 나까지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걸까? 싫다는 사람을 끌고 와서 보여주는 모습이 고작 이것인가? 그런 마음이 드는 날이면 남편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혼자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남편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어도 지금처럼 살 것만 같은데 나는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서울에 살고 있을 것만 같은데 왜인지 억울해진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남편도 나도 육퇴를 한다. 나는 현관문과 가까운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는다. 남편은 소파에 널브러져 TV를 켠다. 꼭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없어도 일단은 TV를 켜고 눈꺼풀의 무게를 더 이상 이길 수 없을 때까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시간을 죽인다. 그 모습이 꼴 보기 싫은 날이 있다.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을 때 더욱 그렇다. '2년이면 일 다 배우고 서울로 돌아갈 수 있다고 나한테 약속했잖아. 약속한 곱절의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 그렇게 마음 편히 TV가 눈에 들어와? 퇴근 후 시간을 좀 더 생산적으로 보낼 순 없는 거야?' 그런 생각을 품고 나는 정수기에서 물을 받기 위해 거실로 나가 남편을 바라본다. 이런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 남편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인다. 티비를 보며 낄낄거리고 있다. 나는 냉수 한 잔을 받아 방으로 돌아온다. 책상 앞에 앉아  <싱글맘 부동산 경매로 홀로서기>를 읽는다. 확정일자 어쩌고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은 사진을 찍어 경매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묻는다. 결국은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해서 돈을 모아야 서울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도 서울의 집 전세 구하기도 부족할 것 같다. 서울의 집, 정가 구매가 어렵다면 경매를 통해 세일가를 노려봐야 하는 걸까?

경매책을 어느 정도 봤다 싶으면 다시 오늘 읽으려 했던 소설책이나 에세이집을 펼친다. 혼자서 정한 오늘 읽을 분량을 읽고 나면 글쓰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A4용지 1장 분량의 에세이를 써 내려가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이번주도 제출 기한을 맞추지 못할 것 같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 또 내가 꼴찌로 과제를 제출할 것 같다. 자판에 두 손을 올리고 리드미컬하게 두드리다가 백스페이스를 신경질적으로 때리기를 반복한다. 냉수를 다 마셨다. 빈 컵을 들고 다시 거실로 나간다. 남편이 나를 바라본다.

"해야 하는데 숙제하기 싫다"

"그럼 오늘은 그냥 쉬어."

나는 컵 가득 냉수를 떠서 말없이 방으로 다시 돌아온다. 덕분에 과제를 마무리한다. 숙제하기 싫다는 나에게 남편이 그래도 해야 한다고 했다면 거실 소파에 눌러앉아 나도 멍하게 티비를 보며 낄낄 거렸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랬을 거다. 나는 남편의 말에 반대로 행동하는 청개구리 같은 아내니까. 남편도 이런 내 심보를 알고 있겠지. 그래서 냉장고가 텅텅 비어 장을 보러 마트에 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트에 가기 싫다는 아내에게 그럼 다음에 가라고 말하는 거겠지? 백화점에게 가서 비싼 카디건이 마음에 들어 사진을 찍어 보내며 사고 싶다고 말하면 사고 싶으면 사야지 마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 어차피 우리 가족의 생활비는 내가 관리하니까. 남편이 성격이 너무 타이트하지 않아서 그래서 결혼을 했지 그래서 나 같은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거지 생각하다가도 또 너무 나만 혼자 아등바등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날 때도 있다. 이 또한 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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