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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Feb 11. 2024

다시없을 최고의 007

007 스카이폴(007 Skyfall, 2012)

 007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고, 또 007이라는 장르물의 특성으로 인해 쳐다도 안 보는 사람도 있다. 007 시리즈 중 손꼽히는 작품들은 대부분 007이 가진 장르적 특성과 그 매니악함에 매료된 팬층에 의해 거론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007 시리즈를 한 번도 보지 않았어도, 첩보 장르를 전혀 좋아하지 않아도 너무나 재밌게 볼 수 있으며, 나아가 007 시리즈적 특성까지도 놓치지 않은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이렇게 말하니 007의 명작 계보에서 언급되지 않는 것 같지만, 역대 최고의 007 시리즈로도 거론되는 작품인, [007 스카이폴]이다.




 먼저 배경지식. 007이라는 장르는, 영국의 정보기관인 MI6에서 운영하는 00X 에이전트가 있는데, 이 중 007의 번호를 부여받은 에이전트의 이야기이다. 이언 플레밍이라는 영국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영화가 처음에 시작하면 몇 분간 진행되다가, 유명한 총열 시퀀스가 나온다.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총열 시퀀스]

https://youtu.be/bhSfxiu1GIk?si=6IOoS31eCcHTVTml


 이후에는 007 특유의 오프닝 크레딧이 나온다. 영화마다 주제가 되는 것들과 키워드 등을 이용하여 몽환적으로 꾸며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화와 별개로도 평가가 이뤄지는 전통 있는 영역이며, 어떤 가수가 오프닝 시퀀스의 음악을 맡는지도 중요하다. 아래의 예는, 피어스 브로스넌과 소피 마르소가 주연인 007 언리미티드(원제: World is not enough)의 오프닝 시퀀스인데, 전반적인 주제가 석유와 여성, 그리고 핵무기라는 것을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알 수 있다.


[007 World is not enough(골든 아이), 오프닝 시퀀스]

https://youtu.be/LzvNDR5OrqM?si=ivoWFymAqwYMYo3F


 이전까지의 007은 냉전시대의 구 소련 또는 러시아에 대항하는 자유진영의 요원이거나, 혹은 세계적인 권력 카르텔에 대항하는 요원이었다. 하지만 냉전 이후 대부분의 첩보영화들이 겪은 문제점을 007도 직면했었고, 그로 인해 어느 시점부터 007은 SF 판타지 첩보 영화라는 인식이 생길 정도로 비현실적인 설정과 연출로 욕을 먹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007 어나더데이(피어스 브로스넌, 할리베리 주연)가 되지도 않는 북한과 한국 묘사를 하여 분노를 샀고, 영화 자체의 수준도 너무나 참혹했기 때문에, 007 시리즈는 더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역시 길을 잃은 것 같을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했던가. 이언 플레밍의 첫 번째 007 소설인 '카지노 로얄'로 리부트 한 007은 엄청난 대 성공을 이루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물론 이 복귀의 핵심은, 새로운 007인 다니엘 크레이그였다. 지금껏 단정한 흑발에, 킹스맨에서 강조하는 정통 영국 수트를 입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여유 있게 적을 처리하던 윤기 나는 제임스 본드에 대한 인식을 한 방에 깨버린 다니엘 크레이그로 인해, 올드팬들은 엄청나게 분노했다. 금발에 분노조절도 잘 안되고, 흑먼지 뒤집어쓰면서 사실상 파쿠르를 하고 있는 근육질의 007이라니.


[007 카지노 로얄, 오프닝 추격씬]

https://youtu.be/iZxNbAwY_rk?si=c7YqPhu24hDyKU-q


 그럼에도 이 21번째 007은, 역대 최대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성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007의 모습에 환호한 것이다. 서툴고 흔들리고, 실패하기도 하는 007의 인간적인 모습도 좋았고, 정통 영국 수트핏은 아니라도, 역사상 최고의 수트핏이라 불리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이 가진 무시무시한 외모와, 여기에 용호상박을 이루는 에바 그린의 무시무시한 외모가 잘 어우러지면서, 대중들은 007을 다시 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카지노 로얄의 후속인 [007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충분한 흥행수익을 올렸음에도, 이 헐떡이는 007은 도대체 제이슨 본과 뭐가 다른 것인가 하는 정체성의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다. 나아가, 다니엘 크레이그의 매력으로 잠시 덮어두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냉전 이후 007 시리즈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인 '이제 누가 적인가?'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한 007이었기에, 이 모든 문제는 다음 시리즈인 [007 스카이폴]로 넘어가게 된다.




 [007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으로 제작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도 [007 스카이폴]의 흥행 수익을 넘는 007 시리즈는 없고, 대중과 평론가들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007 시리즈가 나온 것이다. 물론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올드 팬들에게는 007 영화라기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영화다 라는 는 비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확장성을 갖춘 영화라는 말이기도 하다.


 [007 스카이폴]에서는 꽤 많은 클리셰를 깨트리는데, 먼저 본드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 매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본드걸이 어떤 배우인지, 얼마나 관능적인지로 승부하는 저열한 마케팅을 집어던진 것이고, 또 영화의 줄거리 상 불필요한 섹슈얼 마케팅이 끼어들 틈이 없다. [007 스카이폴]의 샘 멘데스 감독은, 인간 서사를 그려내는 데 있어서 세계 최고의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데뷔 때 이미 정점을 찍어버린 '아메리칸 뷰티'부터, '로드 투 퍼디션', '레볼루셔너리 로드'까지, 인간 중심의 연출로 상을 수집한다. 여담으로,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당시 자신의 아내였던 케이트 윈슬렛을 [타이타닉]에서 호흡 맞췄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부부로 연출하여, 결혼 생활의 이상과 현실에 대해 지독하게 그려낸 영화이다.


 그런 샘 멘데스 감독이 첩보 액션 영화를 하게 되면서, 007이 가지고 있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감독은 심지어 그 고민을 영화 안에서, 평화의 시대에 정보기관 및 특수 요원이 가지는 정체성의 위기를 영화의 메인 주제로 삼아버린다. [007 스카이폴]은, 007 시리즈와 정보기관이 가진 공통된 위기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샘 멘데스 감독답게, 이 주제는 한 치의 모자람도 없이 완벽하게 문제가 제기되고, 완벽하게 그 답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액션 연출은 매우 걱정되는 게 사실이었지만, 감독 또한 첫 액션 연출에 대한 부담을 이겨내고자 [다크 나이트]와 [나 홀로 집에]를 열심히 오마주 했고 베꼈고, 심지어 성공했다. 정보기관의 존재 의미에 대한 영국 국회의 청문회가 이뤄지는 와중에, M이 알프레드 테니슨 시인의 '율리시스'를 읊는 것을 배경으로, 빌런 진영이 청문회장을 침투하는 장면은 정말 다크나이트의 그 연출과 똑 닮았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의 저택 내 전투씬은 웃음기 뺀 맥컬리 컬킨을 연상시킨다. 물론 성공적이다.


 이 외에도 Q가 주인공보다 어린 풋내기라는 점, 투명 자동차로 인공위성 무기와 싸우던 007이 위치 추적기와 권총 한 자루로 적진에 침투하는 점 등은 적당한 올드 팬들에게도 어느 정도 미소를 지을 수 있게 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역대 최고라고 꼽히는 멋진 연출이고, 노래 또한 아델이 참여하여 주제가상을 받았다. 영화를 보지 않고 들어도 너무 좋은 곡이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듣게 되면 그 형언하기 힘든 쓸쓸함과 가슴 저림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스스로 봉착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돌파하는 영화의 전개방식과, 그 과정에서 007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을 통한 캐릭터성의 극대화,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 거기다 올드 팬들도 대우하고자 집어넣은 서비스 씬과 클리셰까지. 최고의 007 시리즈가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 이후 멘데스 감독의 후속작은 정말 볼품없었고, 이후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은퇴작이 노타임 다이도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별로였다. 그렇기에 [007 스카이폴]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것도 있는 게 아닐까.




 다시 한번, 이 영화는 007 시리즈의 팬이든 아니든, 첩보 액션 영화를 좋아하든 아니든, 그냥 볼 만한 이유와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다니엘 크레이그의 팬이 될 것이고, 분명히 이 영화가 제시하는 문제의식에 본인을 투여하게 될 것이며, 분명히 이 영화가 주는 결론에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연휴 동안 볼 영화가 없다면, 이번 기회에 꼭 감상해 보시길 권한다.


[007 스카이폴, 공식 트레일러]

https://youtu.be/6kw1UVovByw?si=XzyWzeWBmIq7gr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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