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술 마셔서 살찌면 술만 마셔도 살겠네

나쁜 것은 나쁜겁니다

by 도원

시대의 난제 중 하나는 술이 살이 찌느냐 이다. 누구는 빈 칼로리이기 때문에 살이 찌지 않는다고 하고, 누구는 알코올이 1g당 7kcal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술은 고열량 식품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 여기서, 술과 살의 논쟁을 한 번 끝내보자.


[주의] 과당 등 당류가 없는 술을 기준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과당이 들어간 소주, 발효 중간 산물이 남아있는 맥주, 와인, 막걸리 등 당류 및 탄수화물이 존재하는 술은 그 자체로 살이 찔 수 있는 것이 당연하며, 이 글에서는 알코올 그 자체를 다룹니다.






거두절미하고, 술은 살이 되지 않는다. 이게 술을 마셔도 살이 찌지 않는다 와는 엄연히 다른 뜻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지식이 필요하다. 어렵지 않으니 이해해 보자. 혹시라도 이해하기 싫은 분들은 다음 단락으로 바로 넘어가셔도 좋다.


우리 몸, 아니 고등 생명체가 에너지를 내는 방법은 TCA 회로에서 생성된 NADH가 전자전달계로 가서 ATP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외울 필요는 없다. TCA 회로에 들어갈 수 있는 입장권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분해된 결과물이다. 이들이 TCA 회로에 들어가면 NADH가 생성되고, 이게 전자전달계를 통해 ATP를 만들어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알코올의 대사는 유명하다. 알코올은 몸에 들어오면 아세트 알데히드로 바뀌었다가 아세트산으로 최종분해되고, 이 과정에서 NADH가 생성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세트산도 TCA 회로 입장권이 있다. 그래서 알코올은 TCA 회로도 돌릴 수 있고, NADH도 만들 수 있으니 7kcal의 고에너지 식품이라는 것이다. 다행히도 알코올로 인한 열량은 대부분 호흡과 발열 등 에너지로 사용되고, 유의미하지 않은 정도가 중성지방으로 전환된다. 술을 마시고 힘을 내서 일하던 농부의 새참이나, 일터의 소주 한잔이 그런 의미라고 보면 되겠다.


그럼 뭐가 문제인가. 알코올은 TCA 회로 입장권을 가진 녀석과, TCA 회로의 결과물을 모두 만들어 낸다. 결과물이 충분하기 때문에, 몸은 굳이 TCA 회로를 돌리려 하지 않는다. 즉, 술을 분해해서 얻은 에너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섭취했거나 체내에 존재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분해해서 에너지로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살'로 전환될 수 있는 잉여 에너지원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발생하는 물질의 변화는 대부분 간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과음을 하게 되면 간은 엄청나게 지치게 된다. 지친 간은 뭔가를 변화시키기에는 힘이 들어서, 우리 몸은 잉여 자원을 그냥 안 쓰고 저장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게 된다. 즉 살이 찌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정리해 보자. 술은 그 자체로 살이 되지는 않지만, 같이 먹은 모든 것의 진행 방향을 살 쪽으로 바꾸는 엄청난 물질이다. 안주 없이 술만 마신다면 적어도 살이 찔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만, 우리 술 좋아하는 뚱땡이들의 특징은 술만 좋아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기갈나는 안주와 함께하는 술자리라면, 살찌는 것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혹시라도 서두에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던 술 좋아하는 분이 있다면 죄송한 결론이지만, 나에게도 이것은 매우 슬픈 사실이다. 사실 논란의 여지없이 술은 몸에 좋지 않다.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은 한 잔도 먹지 않는 게 좋다고 말씀하시고, 그 말에 매우 동의한다. 내 경우도 살이 찐 원인 중 큰 부분은 술과 함께한 음식들이라고 생각한다. 입사 후 5, 6년간은 폭음하는 경우가 많았다.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는 체질임에도 회사의 문화가 폭음과 속주로 점철된 헤비 인더스트리이다 보니,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인당 3~4병은 마시는 술자리를 가지고 비틀대며 집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에, 어머니께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라면 회사 그만두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결혼하면서, 그리고 회사 문화도 점점 젊은 세대들이 증가하면서, 과도한 술자리는 점점 줄었다. 이제는 예전 같은 삶이 상상도 되지 않지만, 가끔 지난 시간을 함께 해온 동료들과의 자리에서는 꽤 많은 술을 마시곤 한다. 그래도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이제는 원하지 않는 불필요한 술자리는 없고, 일주일에 몇 번을 따지던 음주 횟수는 월 1회 또는 2회를 이야기하는 수준이 되었다. 좋지 않은 술을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 마셔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다 보니, 조금씩 바뀌어가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내 몸에 큰 위기가 오지 않는 이상, 술은 간간히 함께 하게 될 것 같다. 술과 함께 하는 동료들과의 즐거운 자리는 내겐 큰 가치가 있고, 또 살면서 술이 있으면 약간은 더 즐거운 상황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열심히 내 몸을 모니터링하고, 적정 수준의 음주 습관과, 평상시 건강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서도 술을 즐기고, 먹는 것도 좋아하는 분이 있다면, 오래오래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함께 열심히 건강을 관리해 보는 게 어떤지 제안해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