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들
잠시 길을 잘 못 든 적이 있다. 형편이 못 된다고 부모님은 재수를 못 하게 하셨고, 첫 단추를 좀 잘못 끼웠다고 생각한 나는, 군대 가기 전까지 피시방에서만 살았던 터라 학점은 2점대의 처참한 상태였다. 뭐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전역하고 나서는 공대생과는 전혀 관계없는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처음 1년은 창문이 없는 2평짜리 고시원에서 생활했는데, 여기를 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밥, 라면, 김치를 자체적으로 제공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1년 동안 친구랑 가끔 치킨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저 라면과 김치, 라면 국물에 말아먹는 밥으로 살았다. 의심의 여지없이, 전역 후 최상의 상태였던 몸이 수직하강 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몸은 항상 찌뿌둥했고, 아침마다 운동장 한두 바퀴 뛰는 것이 무색하게 살은 펑펑 쪘다.
첫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며 적당히 공부하던 시기에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부모님과 살며, 약 20km 거리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다섯 시간 정도 걸어서 왔다. 하루 20km씩 주 5일을 걷는 것과 함께, 부모님이 해주신 건강한 음식을 먹으니 살은 한 달 만에 10kg 가까이 빠졌다. 물론 찐 만큼 빼지는 못했기에, 내 컨디션은 전역 직후의 그것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다.
2회 차, 3회 차 시험을 치르면서, 한 끼에 3,000원짜리 신림동 고시식당은 내 영양상태를 지배하는 곳이었다. 20대 중반의 남성이 한식 뷔페에서 뭘 먹겠는가, 항상 내 접시에는 제육볶음과 돈까스가 가득했다. 물론 고시 식당 음식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몸 생각 안 하는 성인 남성의 식단은 필연적으로 염증성 식단이 된다. 고시 실패 3 연타 후 복귀한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를 할 때에는, 이미 100kg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어릴 때는 꽤 가난했다. 물론 지금도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는 사는데, 어릴 때는 먹고살기 힘든 때도 많았다. 찬밥 한 공기를 물을 넣고 끓여서, 가족 네 명이 나눠먹던 때도 있었다. 학교에서 급식 배식하고 남은 반찬 가져갈 사람을 묻길래, 칭찬받을 줄 알고 냉큼 받아서 어머니께 드렸다가, 거지같이 이게 뭐하는거냐며 펑펑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도 봤다.
몸에 각인된 가난은, 기회가 될 때 많이 먹어야 한다는 생각과, 싼 음식을 선호하는 경향으로 발전했다. 대학생 때 하루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두 탕씩 뛰기도 했는데, 중간에 밥 먹을 시간이 충분해도 편의점에서 김밥과 라면을 사서 먹었다. 배가 고픈 날엔 컵라면을 두 개 먹는 선택을 했다. 부모님은 가난해도 손맛이 좋으셔서, 어떻게든 싼 재료로도 맛있는 요리를 해주셨었는데, 바보 같은 내가 받아들인 것은 가난하다는 사실뿐이었던 것이다.
어느새 나도, 누나도 월급을 받고, 어머니도 부업을 그만두고 늦깎이 공부로 자격증을 따서 일을 하시고, 아버지는 공무원 30년 차가 되면서 가족 네 명이 모두 돈을 버는 순간이 되었는데, 그때도 우리는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을 꽤 주저했다. 한 번은 아버지 생신이 되어서, 누나랑 어떤 식사를 할지 고민하던 중에, 우리도 신라호텔 한 번 가보자 하는 생각으로 파크뷰 레스토랑을 예약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할인을 10% 정도 받고, 술값까지 80~90만 원 정도의 돈을 썼던 것 같다. 예전 같으면 한 달 생활비였을 금액을 하루에 쓰는데, 우리 가족은 아버지 생일을 온전히 즐겼다기보다는, "괜찮아 우리, 이제 생일에 이 정도는 쓸 수 있어."라고 서로를 다독이느라 바빴다.
물론 그 후로 다시 그 레스토랑을 찾은 적은 없다. 하지만 그 일은 우리 가족에겐 꽤 큰 의미가 되어서, 예전에는 쓰지 않던 규모나 용도의 돈을 써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우리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라고 우스갯소리로 자신을 다잡는 것이 웃음포인트가 되었다. 어머니는 최근에 집에 공기청정기를 놓고 싶은데, 어떤 걸 사면 좋을지 물어보시기도 했다. 삶의 질을 생각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가난은 행동의 위축을 불러온다.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나, 사회생활에서 위축되는 경향은 없었지만, 나를 위해 돈을 쓰는 것에는 지금도 위축되곤 한다. 아직도 생일 선물을 뭐 받고 싶냐는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평소에도 내가 뭘 가지고 싶은지 모르겠다. 아내는 매번 그냥 넘어가는 내 생일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하는데, 내가 간절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정의 재정상태에 유리하다는 생각만 든다.
하지만 아내를 만나고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 아내는 이 전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활동 시간이 적어서인지 먹는 횟수가 나에 비해 현저히 적다. 하지만 매번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이전 끼니에 먹었던 음식을 다시 먹으려 하지 않는다. 까다로워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아내의 패턴은 매 끼니를 생각 없이 채우기에 급급했던 내 식사의 비용에 비해 훨씬 저렴한 방식이었다. 나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값싼 음식들로 끼니를 허겁지겁 채우면서, 몸은 망가지고 돈은 돈대로 들었다. 아내는 적은 횟수라도 매 끼니마다 존엄성을 갖춘 식사를 함으로써, 건강도 유지하면서 나보다 적은 유지비용을 쓰고 있던 것이다.
여전히 나는 퇴근길에 마트를 기웃거리며 상태는 아직 쓸만하지만, 유통기한이 가까워져 타임세일을 하는 채소가 없는지 둘러본다. 동료들과 술 한 잔이라도 할 때면, 맛집을 많이 안다는 명성과는 다르게 강남에서 아직도 1인당 8,000원 하는 백반집에 가서 술을 마시자고 했다가, "야 우리 좋은 것 좀 먹자."는 아우성을 듣곤 한다. 그래서 가끔은 백반집 말고 프리미엄 삼겹살이라고 하는 가게에서 술을 마시기도 하고, 아내랑은 미슐랭 별 받은 식당도 가 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쓰는 게 아니더라도, 매 끼니를 때운다 라는 접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굳이 먹어야 할 끼니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혹은 타성에 젖어서, 배도 고프지 않은데 먹는 일은 없다. 이제는 뭔가가 먹고 싶을 때, 생각날 때, 그것을 찾아서 먹으려고 노력한다.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에게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한다는 행위를 하려 한다.
다이어트 칼럼을 처음 시작할 때, 인생은 레버리지 효과가 심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뚱뚱하고 망가진 몸은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게 만들고, 그렇게 존중받지 못한 나의 몸은 더욱 천대받고 망가져간다. 금융시장이 망가져 갈 때, 필요한 양 보다 더 많은 양의 양적 완화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것처럼, 또는 신용카드로 살아가다가 체크카드로 바꾸려면 두 달 치의 여윳돈은 있어야 신용카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몸도 다시 방향성을 바꾸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존중과 대접이 필요하다. 나에게 투자하는 것을 아끼는 것은 절약이 아니다. 그것이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스스로를 존중하고 대접하는 행위를 통해 나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 다이어트, 그리고 건강을 찾는 첫번째 걸음이 된다. 동료들과의 자리를 정할 때, '우리 좋은 것 좀 먹자'고 얘기하는 사람이 다음번에는 내가 되는, 또 여러분이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