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쉬쉬하지 맙시다

더 많이 해야 하는 이야기 (마지막)

by 도원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곧 다이어트를 시작하는데, 나의 글을 읽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더 힘이 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며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니, 나와 같은 상처를 가졌거나 어려움을 겪었을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의 편견, 가까운 사람들의 무심한 비난, 이유 없는 조롱, 거짓되거나 오염된 정보들로 몇 번이나 실패하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자존감은 떨어지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 나와 같은 사람들. 우리가 일그러진 마음과 자아를 붙잡고, 건강한 마인드와 올바른 정보, 그리고 다이어트를 넘어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가지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하루에 두 편씩 글을 쓰기도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껏 뚱뚱해도 괜찮다는 듯이 글을 써 왔으면서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내가 중요하다는 것은 날씬한 몸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몸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그것이 생활화되어서, 오해와 편견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동양철학적 기조에 의해, 몸은 껍데기일 뿐이고, 정신을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 있다. 육체는 정신에 의해 따라오는 것이고, 부수적인 것이며, 정신을 수양하거나 지식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배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대사와 생식을 하는 생명체이고, 결국 몸이 없으면 정신도 없다. 몸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우리임을 증명하고 규정하는 것이며, 정신에 조금도 그 중요성이 밀리지 않는다. 과학적으로도, 나의 정신력과 의지는 호르몬의 결과물일 뿐이며, 성격은 심장, 두뇌, 허파, 소화기관의 개성으로 볼 수도 있다. 혈압이 낮아서 아침형 인간이 힘든 것이고, 소화기관이 건강해서 감정의 기복이 적은 것이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몸을 이야기하는 것을 저급한 이야기라고 치부해 왔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하면서도 몸에 대한 관심은 생명체로써 버릴 수 없는 부분이었고, 그렇게 평소에 드러내지 못한 은밀한 관심과 욕망은 일그러진 형태로 사람들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은밀한 욕망을 캐치한 자본은, 당연하게도 가장 돈벌이가 잘 되는 수단인 획일화와 줄 세우기를 통해, 훌륭한 몸의 이상형을 만들어내고 지향하게 하여 사람들에게 만들어진 욕망을 선사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그 욕망의 노예가 되어, 우리와 맞지도 않는 이상을 좇고, 실패를 반복한다.


줄의 앞에 서있는 사람은 뒷사람에게 우월감을 가지고, 뒤처진 사람은 자존감의 하락과 더 큰 욕망에 시달린다. 언뜻 보면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것 같지만, 앞선 사람도 불안하고 뒤처진 사람은 우울하다. 이러한 시스템으로 돈을 벌고 있는 누군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패배하는 게임이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세상은 외향성을 강요했지만,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모두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 성격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으며, 그러한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전히 누군가는 "남자가 그렇게 쪼잔하면 안 돼." 라던지, "그렇게 내성적이면 사회생활 못한다."라는 경악할만한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사람도 있지만, 아마 절반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 그렇게 생각해도 입으로 그 말을 뱉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나머지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몸에 대해서도 그런 세상이다. 누군가는 팔이 짧고 굵으며, 누군가는 상체보다 하체가 짧다. 몸통이 두꺼운 사람, 허리가 넓은 사람, 골반이 좁은 사람, 다리가 X자인 사람, O다리인 사람, 전반적으로 살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성격만큼 정말 여러 가지의 사람들이 있다. 외향적이고 쾌활한 것이 좋은 성격의 지표가 아닌 것처럼, 긴 팔다리와 얇은 허리가 지표가 아닌 세상. 각자의 개성이 인정받는 세상. 함부로 뭐가 좋은 거다라고 말하지 않는 세상. 설사 자기가 그런 생각이 있더라도, 입 밖으로 내뱉는 게 실례임을 아는 세상.


그런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몸에 대한 담론을 양지로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수많은 논의와, 전문가들의 매체 출연, 많은 사례 공부를 통해 우리가 성격의 개성을 점점 인정해가고 있는 것처럼, 몸에 대해서도 같은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의 몸에 대한 논의는 너무나 빈약하고 편협해서, 전문가랍시고 나와서 다이어트를 정신력의 문제인 것처럼 다그치는 모습이나 보여주고 있다. 인바디 기계는 자신의 몸이 변하는 과정을 간접적이고 적정 수준의 정확성으로 모니터링하는 기기일 뿐인데, 거기에 점수를 부여해서 누가 더 높은 지를 경쟁하는 구도를 만든다.







안타깝게도, 의학은 이런 문제의 해결사가 되지 못한다. 나는 현대 의학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얼마나 바쁜지도 알고, 의학계의 현실도 이해한다. 죽고 사는 문제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 살고 못 살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으로 호흡하는 습관은 삶에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입으로 호흡한다고 100살까지 살 사람이 50살까지 사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도가 더 빨리 닳고, 상대적으로 호흡기 질환에 몇 번 더 걸리면서 더 낡은 기관지를 가지고 있다가 10년 정도 빨리 죽겠지. 이러나저러나 노환이다. 그보다는 중증 호흡기 증후군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상기도 폐쇄성 질환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숨을 쉬게 해 줄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이 더 급하다. 입으로 호흡해서 얼굴 모양이 어떻게 변하든, 입 냄새가 얼마나 나든, 연구와 치료의 대상이 되기에는 우선순위가 밀린다.


언젠가는 오은영 선생님이 부모와 자식의 멘털을 치유해 주는 것처럼, 훌륭하신 분이 나타나서 우리의 몸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날이 올 것이다. 다만 아직은 아니기에, 우리 스스로 하는 수밖에 없다. 나의 태생적, 사회적 조건 하에서, 더 건강한 몸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우리의 몸을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지 생각하고, 실천과 피드백을 통해 나만의 옳은 길을 찾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신과 잘못된 지식을 타파하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오류를 제거해 나가는 것. 그런 활동들이 건강하지 못한 몸과 낮은 자존감으로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몸에 대한 근거 있고 탄탄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 그 에너지를 통해 주변을 변화시키면서, 점차 무례함과 수군거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많은 자기 계발서들의 주인공들과 달리,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시작해야 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의사도 아니고, 영양학 학위가 있지도 않으며, 전문적으로 운동을 해 본 사람도 아니다. 그렇게 나는 상처받은 여러분과 같은 사람이기에, 함께 달려가는데 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더 건강해지는 나의 모습을 보일 것이고, 여러분들도 함께 건강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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