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자존감을 지키는 데에 탁월하다. 성공의 범위가 넓고, 가는 길은 기준이 있지만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으며, 시각, 청각, 촉각, 미각을 종합적으로 자극하는 활동이고, 즉각적으로 내게 보상이 주어진다. 생계 수단이 아니라면 꽤 의지할 만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중학생 때부터 간간히 요리를 했다. 군대에서 주말 취사 보조를 할 때면, 취사병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눈여겨보며, 칼은 어떻게 쥐는지, 팬은 어떻게 돌리는지 관찰했다. 칼 등을 엄지와 검지로 쥐고 썰면 제법 태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한동안 양파 썰기에 심취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요리는 결혼하면서, 아내와의 시간에서다. 나이 먹고 회사에서 해고되면 주점이나 할까 하는 실없는 소리를 곁들여서 먹는 음식들은 맛있고, 또 행복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삶을 바꾸면서, 재택근무가 허용되지 않는 아내는 매번 출근했지만,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혼자 하는 식사가 많아지면서, 함께 먹기 위해 하던 요리는 내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변해갔다. 일 하다가 중간에 요리를 해서 식사시간 내에 밥을 먹으려면, 많은 것들이 생략되기 시작한다. 기준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활동이기에, 결과물의 만족도는 나쁘지 않았고, 그렇게 내 식사를 위한 요리는 하나씩 과정을 잃어갔다.
함께 먹기 위한 요리가 남긴 산더미 같은 설거지는 기꺼이 해도, 나 하나 파스타 먹자고 냄비와 팬을 둘 다 쓰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결국 팬에서 면을 삶고, 거기에 볶아지지 않은 마늘과 올리브유를 넣는다. 어느 날인가는 처음부터 토마토소스에 면을 삶기도 했다. 10분 동안 졸아 없앨 수 있는 물 양이면 결과적으로 똑같지 않나, 쉽게 가야지. 까르보나라에 달걀흰자가 들어간다고 못 먹을 맛은 아니잖아. 음식이 간만 맞으면 되는 거지. 파슬리가 떨어졌네, 그게 뭐 중요한가. 이렇게 내 식사는 점점 포만감과 특정한 몇 가지 맛을 공식처럼 해내기만 하는 활동이 되어갔다.
그때 즈음, 회사 생활에서도 권태가 찾아왔다. 같은 팀에서 7년째 같은 일을 했다. 프로젝트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족히 백 번은 봤으리라. 누군가는 효율적이라고 표현 할 것이다. 군더더기가 하나씩 사라져 갔고, 더 이상 떨어져 나갈 군살이 없던 시점부터는 생 살도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했더니 지난번 상사가 왜 쓸데없는 일 하냐고 했는데, 안 해도 되나 보네 하는 안일함과 매너리즘은 내 회사생활을 잠식해 나갔다. 번 아웃이 온 거라고, 좀 쉬면 괜찮을 거라는 말도 들었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결국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것도 저것도 안 해도 된다면 어떻게 열심히 하는 걸까, 나는 왜 여기 있을까.
투자 광풍이 불던 몇 년간, 노동은 천시되고 회사에서 열심인 사람은 바보라는 식의 콘텐츠들이 세상을 뒤덮었다. 나는 더욱 일어서기 힘들었다. 주식창과 부동산 시세표를 띄워놓은 듀얼모니터 앞에서, 구운 건지 찐 건지 구분도 되지 않게 대충 익힌 삼겹살과 파김치를 먹으면서, 이게 잘하고 있는 거라고 자위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이미 나는 한없이 망가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체중이 20kg나 늘어 정장이 맞질 않아, 검은 니트에 검은 고무줄 바지를 입었지만, 아끼는 후배의 결혼식이라 큰맘 먹고 부산에 간 적이 있다. 지인들과 해운대에서 한 잔 걸치면서, 2021년도에는 뭐 하고 지냈는지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눴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중 20개가 넘는 산을 올랐다고 하고, 경영 수업을 위해 MBA를 수강 중이라 하고, 골프에 재미를 붙여서 열심히 배우는 중이라고 하는데, 나는 [집 샀어] 한 마디 밖에 하지 못했다. 정말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 하루는 항상 책상에서 모니터만 보면서 거북목과 늘어진 뱃살을 늘려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농담 섞인 야유와 질시를 들으면서 웃어 보였지만, 오랜 시간 외면했던 자기혐오가 현실이 된 그 순간의 서늘하고 짠 공기, 새벽 2시가 가까워져 오는데도 모멸감에 정신이 또렷해지던 그 장면은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걸까.
아마 파스타를 팬에서 삶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채소를 먼저 볶지 않고 고기를 처음부터 같이 볶으면서 이렇게 된 거다. 도마 씻기가 싫어서 파를 가위로 자르고, 손으로 찢어 넣었던 게 잘못이다. 내가 먹는 거라고 대충 해도 된다면서, 요리의 자율성을 만끽하는 것 같았던 생략의 과정은, 더 이상 요리를 요리라고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송송 썰어진 대파와 대충 찢어놓은 대파는 같은 맛이지만, 돌아보면 하나는 요리고 다른 하나는 사료였다. 꼭 해야 되나 하던 것이 한두 개 결여되었을 때는 몰랐지만, 누적된 결여는 결국 본질을 잃게 했다.
출장을 다녀왔는데 꼭 보고 할 필요가 있을까. 협력업체 점검을 나가야 하는데 알아서 잘하겠지. 오늘까지 보고서 기한인데 뭐라 안 하는 걸 보니 내일 해도 되겠다. 한두 번이면 그랬다면 재미로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은 하나씩 쌓여가며, 종국에는 내가 아무 일도 안 했는데 프로젝트는 잘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나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본질적인 것은 결국 사소함이었다. 가벼이 여긴 것들이 모여 본질이 된다. 그리고 그 본질은 사소한 것을 잃어가면 시나브로 함께 사라져 간다. 설거지를 안 해서 젓가락이 없다고 수육을 포크로 찍어 먹을 때, 컵 가지러 가기 귀찮다고 국그릇에 물을 담아 먹을 때 나는 이미 요리를 잃었고, 밥 먹고 삼십 분 걸으나 안 걸으나 대세에 지장 없다는 생각을 할 때 건강을 잃었다. 경조사에 돈만 보내면 되는 거지, 돈 내고 안 가는 게 최고 아닌가 하는 작은 게으름에 사람들을 잃었고, 어제 술안주가 튄 부분을 물티슈로 대충 닦아 얼룩진 티셔츠를 입고 출근할 때는 예의를 잃었다. 내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나는 처참하게 변해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글을 붙잡아 본다. 모든 것을 잃었어도 나는 아직 나라고 말하기 위해 글을 쓴다. 30년 넘게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가장 사소한 본질은 나의 이야기뿐이다. 자조를 적고, 망가진 나를 쓴다. 이 것부터 하나씩 지켜나갈 것이다. 이 밑바닥에서 나를 지켜줄 글을 계속 쓰다 보면,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저녁식사는 예쁘게 플레이팅 할지도 모른다. 스스로 먹는 파스타에 이탈리안 파슬리를 올릴 수 있을 거다. 체중을 덜어내 깔끔한 정장을 입고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한 나를 발견하고 누군가가 [이야, 사람 됐네]라는 말을 한다면, 피식 웃으며 [전에는 아니었나?]라고 대답할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