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곱씹는 About Time
괜한 감상에 빠지고 싶지는 않지만, 출산이 다가올수록 자꾸 말랑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어바웃 타임]이란 영화를 보면, 시간 이동 능력자인 주인공에게 더 이상 시간을 뒤로 돌리지 못하는 시점이 오는데, 바로 셋째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동일한 시간능력자인 아버지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얄궂게도, 자녀와 온전히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강요한다. 당연하게도, 아버지 또한 주인공과 함께 하는 삶을 위해 담배 피우던 자신의 과거를 수정하지 않는 선택을 했었던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결국, 아버지와의 작별을 고한다. 이제 아버지는 아버지의 시간 속에서만 남고, 주인공의 시간 속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영화는 단순한 장치로 우리가 상대와의 시간을 얼마나 착각하고 있는지 깨닫게 한다. 시간은 언제나 모두에게 동일하게 흐른다고 생각하며, 나에게 흐르는 시간만큼 상대도 항상 함께한다 생각하고 그것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건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하는 상대와의 시간임에도, 우리는 그 상대와의 시간이 끝났을 때 비로소 아쉬워하고 슬퍼하며 그것을 인식하게 된다.
내 수명이 100년이고, 아버지의 수명이 100년이라고 해서 우리가 100년을 함께하진 않는다. 그중 아주 어린 시절은 대부분 기억에서 잊히고, 학교에 가면서는 친구와의 시간으로 기억을 채운다. 사춘기부터 성인이 된 어느 시점까지, 부모님은 어느 면에서는 귀찮고, 불편하면서도 항상 있어서 한 편으로는 든든한 존재가 된다. 결혼하면서는 갑자기 그동안의 고마움이 몰려들고, 앞으로 잘해드려야지 하지만, 그 또한 결혼 생활이 지속되다 보면 늘 그랬듯 부모님은 항상 어딘가에 있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회귀한다. 결국 부모님과 함께한 시간은 아무리 잘 쳐줘도 30년이 못 된다. 그 조차도 시간의 밀도를 따진다면 말하기 부끄러운 정도일 것이다.
고등학생 때의 친구들은, 어느새 20년 지기가 되어있다. 나의 20년 지기 친구들은 나와 20년을 함께 한 걸까. 20년 동안 우리는 몇 번이나 봤을까. 당장 회사에서 매일 만나는 사람보다도 함께 한 시간이 적을지 모른다. 중학생 때 친하게 지낸 아이들은, 앞으로 살면서 한 번이라도 볼 기회가 있을까. 만약 그럴 일이 없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가 된다. 기억에서조차 잊힌 사람이라면, 이미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없다.
우리는 하루에도 꽤 많은 마지막을 고한다. 다음에 한 번 보자 라는 말로 다시는 보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는 횟수는, 나이와 비례하여 많아진다. 그들과의 인사는 작별인사와 다를 것이 없다. 오늘 농구공을 사야지 하고 먹었던 마음을, 바쁘다고 혹은 귀찮다고 다음에 사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10년, 20년 후에 늙어진 몸으로 무슨 농구냐 하면서 영원히 농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집에 쌓인 책이 많은데 그거 먼저 읽고 이 책 사야지 하고 돌아선 서점의 책 한 권은 영원히 읽지 못하는 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매 순간 만나는 나와 객체의 시간이, 마치 나의 시간처럼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며 언제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많은 경우 그 순간이 작별의 시간이 된다. 만나는 모든 것으로 채우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부족하고, 그 객체도 영원히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느 부모님들이 하신 것처럼, 나의 부모님도 내가 태어난 말 못 하던 3~4년 동안 보여준 귀여운 모습, 아장아장 걸으며 빵긋 웃던 모습으로 충분하다 하신다. 눈을 너머 마음에 담았던 그 한도 초과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지난 세월을 견뎌오셨겠지. 그리고 아마 그와 비슷한 모습을 또 보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
아마 나도 같은 과정을 걸어가겠지만, 아직은 잘 모른다. 하지만 [어바웃 타임]의 메시지는 하루하루 실천해보려 한다. 결국 서로가 함께할 수 있는 그 짧은 시간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내 눈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더 새기고, 그들에게 다정하게 대할 것. 불필요한 화와 부정적인 감정으로 소중한 내 시간을 채우지 말 것. 마지막일지 모를 매 순간과 만남에 아쉬워하며, 삶을 더 사랑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