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22일 차. 회식과 다음날 해장
어제는 회식이었다. 아이가 생기면서 술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마시고 있는데, 이 다이어트 매거진을 쓰면서는 처음 맞이하는 술자리였다. 케톤 수치가 아주 높아서, 회식 불참하고 이 상태를 쭉 유지하고 싶었지만, 지속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번 다이어트의 관점에서 볼 때 참석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참석하게 되었다.
1차는 팀 사람들과 함께 치킨집에 갔다. 나는 치킨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먼저 대학생 때 너무 많이 먹으면서 몸이 뚱뚱해지고 건강이 나빠진 역사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는 하루에 한 마리씩 꼬박꼬박 먹었던 것 같다. 밀가루를 입혀서, 몸에 안 좋은 식물성 기름으로 튀기고, 거기에 액상과당으로 이루어진 소스를 발라서 먹는 치킨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이보다 더 몸에 안 좋을 수 있을까 싶은 조합이다. 두 번째로는, 치킨 가격이 너무 비싸서이다. 같은 가격으로 삼겹살을 먹는 게 모든 면에서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아 저는 몸과 가성비 생각해서 치킨은 먹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K-회사에서는 불가능하다. 입 다물고 조용히 가서 먹으면 된다.
치킨집에서는 당연히 맥주를 먹는다. 맥주는 곡물발효주이기 때문에 가장 숙취가 심한 술 중 하나이다. 정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알코올 외에도 탄수화물 함량이 아주 높고, 퓨린 함량이 높아 통풍을 유발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시원하지 않은가, 500cc 두 잔 털어 넣는다. 대신 다음 잔부터는 소주 먹겠다고 주종을 바꾼다. K-회식은 재밌는 게, 소주 먹다가 맥주로 바꾸겠다고 하면 허가해주지 않지만, 맥주를 소주로 바꾸겠다고 하면 "오오오오" 하면서 흔쾌히 승낙한다. 아무리 봐도 서로 아프게 때리자고 하는 게 회식인 것 같다.
소주든 맥주든 몸에 안 좋기는 매한가지이다. 대신 다이어트 하는 사람으로서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술을 마실 때는 최대한 순도 높은 술을 먹어야 다이어트에 타격이 적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주종이든 많이 마시면 다 문제가 되지만, 대체로 적당히 마셨다고 하는 수준에서는 과당 없는 소주나 보드카 등 희석주가 제일 낫고, 위스키나 브랜디 같은 증류주 계열도 상대적으로 괜찮다. 다이어트에 가장 위험한 술은 과실주나 곡물발효주인데, 맥주, 와인, 사케, 막걸리 등이다. 이 순서는 숙취가 적은 술부터 많은 술로 가는 스펙트럼과도 일치한다.
데이브 아스프리는 [최강의 식사]의 후속 편 격인 [최강의 단식]에서, 술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가장 비싼 술을 먹으라고 한다. 그래야 돈이 부족해서 많이 못 먹기 때문이라고.
1차가 끝나고, 예전 팀 동료들이 여의도로 불러서, 강남에서 여의도까지 이동했다. 이미 영원식당에서 수제비와 막걸리를 먹고 온 동료들은 2차로 '황금마차', 일명 '황마'라고 불리는 여의도의 터줏대감 격인 실내 포장마차에 있었다. 이곳의 대표메뉴는 오돌뼈짜장밥인데, 다이어트랑은 또 상극을 달리는 메뉴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맛있죠? 소주와 함께 싹싹 긁어먹는다.
여의도는 목요일 밤에도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3차는 원래 가려던 곳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자리 있는 근처 맥주집에 들어가서 막내가 제안하는 술게임으로 맥주와 소주를 섞어서 또 얼마간 마시다가 12시가 다 되어서 자리를 마쳤다. 이동시간을 빼도 장장 6시간 가까이 술을 마셨다. 1차에서는 맥주 1,000cc 와 소주 1병, 2차에서는 소주 2병, 3차에서는 맥주 350cc에 소주 한 잔 섞은 것을 두 번 마셨다.
오늘 아침에는 아이가 빨리 깨서 울어서, 4시 반부터 아이를 달래고 기저귀 갈고 유축해 놓은 모유 먹이고 하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해장국으로 빨간 순댓국을 먹었는데, 잘 들어가지 않아서 먹다가 남기게 되었다. 막판에 맥주를 계속 섞어 마신 게 평소보다 더 힘든 이유 같다. 숙취가 이렇게 심할 줄 알았으면 콩나물 국밥으로 해장을 했을 텐데. 나는 숙취의 강도에 따라 해장 음식이 바뀌는데, 숙취가 적고 재미로 해장을 할 때는 소 내장이 들어간 양평해장국 스타일의 해장국을 먹고, 적당한 숙취일 때는 돼지국밥, 순대국밥 등의 뽀얀 국물 음식, 출근한 게 대견한 수준의 숙취일 때는 콩나물 국밥이 필요하다. 숙취의 강도에 따라 점차 맑아지는 게 특징이다. 뭐가 됐든 든든하게 살을 찌우는 음식들이다.
내 보통의 술자리는 이런 식으로, 평균적으로 다섯 시간 정도 마시면서 소주로 환산하면 3병 정도를 마시게 된다. 내가 안주를 정할 수 있을 때에는 회나 해산물(굴, 해삼, 멍게, 오징어 등)을 선호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많기 때문에, 보통은 다이어트하는 사람이 입에 대면 안 되는 음식들을 먹게 된다. 이렇게 많은 양의 술과 나쁜 음식들을 먹는 회식은, 나처럼 외향적이고 사회활동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피할 수 없는 존재다.
몸에 나쁜 활동을 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길게 단식을 해서 몸을 개선할 예정이다. 기존의 상태로 돌아가는 데에는 내일을 포함해 3일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 예상한다. 먹고 마시고 출근하고를 반복하던 예전에는 항상 힘들어서 잘 몰랐지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지금에는 한 번의 과음이 3일 이상 몸을 훼방 놓는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고 있다. 생각도 창의적이거나 진취적이지 못하고, 게으름이 많아지고, 식탐이 생긴다. 그래서 이제는 기준을 가지고 술자리를 대하는 자세를 가져보려 한다.
1. 음주 횟수는 최대 월 2회로 제한한다. 가능하면 월 1회로 유지한다.
- 자리는 당연히 적을수록 좋다.
2. 소주 계열만 마신다.
- 맥주나 와인 등을 먹는 자리라면, 맞는 잔으로 1잔만 마시고 끝낸다.
3. 수면시간을 8시간 이상 가져간다.
- 자리를 빨리 끝내고, 다음날 숙취를 덜 수 있다.
4. 최대한 좋은 안주와 마신다.
- 돈이 좀 들어가도 회나 해산물, 건강하게 조리한 육류와 채소
5. 해장국을 먹지 않는다.
- 다음날은 물로 버티고, 저녁에는 토마토 수프를 만들어 먹는다.
매거진이 종료되기 전 몇 번의 자리가 더 있을 텐데, 그때 이 기준으로 음주 후 효과를 분석해 볼 예정이다.
22일 차 체중 : 99.55kg (2일 전보다 -0.4kg / 목표 체중까지 20.45kg 남음)
- 호흡 케톤 : 68ppm (음주 다음날 케톤 수치는 음주로 인한 수치로, 체지방 분해와는 무관하다.)
- 22일 차 식사 : 해장 순대국밥, 토마토 수프
- 음주 직후에는 수분 손실로 체중이 줄어드나, 이후 식탐으로 인해 더 증가하는 것이 보편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