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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May 29. 2023

일상 속에서 단식의 모습

25일 차. 직장인의 하루 with 단식

 오늘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가니, 음주 전 몸무게인 두 자릿수로 회복이 되어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딱 3일이 소요됐다. 적당한 음주였으면 하루 또는 이틀이면 되었겠지만, 소주 3병이 넘고 자리도 두 번이나 옮긴 거한 자리였기 때문에, 회복하는데 3일이나 걸린 것이 좀 과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돌아왔다. 이제 또 감량 시작이다. 






 내 아침 루틴은 이렇다. 출근하는 날이면, 4시 40분쯤 일어나서 찬물로 물샤워를 한다. 체중을 재고, 호흡 케톤 수치를 측정한다. 데드행 자세로 철봉에 1분간 매달릴 수 있는지를 확인함으로써 몸 상태를 체크한 뒤, 간밤 뉴스와 외신, 날씨를 읽고 방탄 커피를 마시면서 카카오닙스를 3 테이블 스푼 먹는다. 단식하는 날이면 이게 그날 섭취량의 전부인 것이고, 단식하는 날이 아니면 이후에 점심이나 저녁을 한 끼 먹는다. 


 5시 30분쯤 집에서 나온다. 원래 버스를 타는 정류장은 집 앞 3분 거리에 있지만, 30분 정도 공원 길을 걸으면 6개 정류장 앞선 곳에서 버스를 탈 수 있다. 햇빛이 강하지 않은 아침에 30분 정도 걸어서 버스를 타면, 운이 좋으면 기사님이 에어컨을 틀어주셔서 살짝 나려는 땀을 식힐 수 있다. 회사에 도착하면 7시가 조금 되지 않는데, 임원을 제외하고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시간대라 이때 조용히 할 일을 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도착하자마자 커피 한 잔 내려서 마시면서 한 시간 정도 일을 하면 사람들이 대부분 출근을 하고, 그때부터 회사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시작된다.


 담배를 피우지 않다 보니, 중간에 쉬는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은 선배가,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씩 15분 정도 걷자고 해서, 그렇게 회사 주변을 한 바퀴 걷는다. 단식하는 날이 아니면 점심에는 보통 샐러드를 받아서 먹는데, 받아서 자리에 온 뒤 탄수화물, 당류를 모두 걷어내고 서랍에서 올리브유를 꺼내서 뿌려 먹는다. 골라낼 때마다 이놈의 옥수수랑 압착 귀리, 시리얼 같은 파편들 안 넣으면 안 되나 싶다. 단식하는 날에는 그냥 잔다.


 요새는 오후에 커피를 잘 마시지 않으려 한다. 숙면에 관심이 많아져서, 정오 이후로는 카페인 섭취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별 일이 없다면 오후에는 4시까지 일을 하고 퇴근한다. 회사는 고맙게도 탄력근무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나처럼 수도권 위성도시에서 출근하는 사람들은 일찍 출근, 일찍 퇴근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집에 도착해서는 혼자 육아를 전담하면서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었을 아내를 위해 최대한 맛있는 저녁을 차려준다. 단식하는 날에는 내가 먹을 애플사이다비네거 + 탄산수 + 얼음을 넣은 음료를 마시면서, 아내 앞에 앉아서 하루종일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나면, 육아 좀 하다가, 브런치에 글 한두 개 쓰고, 인터넷으로 장 좀 보거나 생필품 사고, 샤워하고 웹툰 좀 읽다가 11시쯤 잠에 든다. 







 평범하고 이상한 것 없는 삶이지만, 잘 보면 식사가 없다. 식사가 없어도 충분히 바쁘고, 할 일이 많고, 딱히 시간은 나지 않는다. 버스 이동시간에 자는 것, 점심시간에 자는 것을 합쳐야 겨우겨우 6시간 수면이 나오는, 아주 바쁜 삶이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시간이 없다. 앞으로는 숙면 시간을 좀 늘리려고 하기 때문에, 10시쯤에는 자보려고 하는 중이다. 그러면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꽤 오래 운영했는데, 주로 먹는 것에 대한 계정이었다. 지금은 직무가 바뀌었지만, 한 때는 전국팔도, 전 세계 안 가는 곳이 없는 직무였던지라, 전국구, 가끔은 전 세계 단위 맛집을 포스팅하는 계정을 운영했다. 광고를 받아서 갈 때도 있었고, 협찬으로 먹고 올리기도 하고, 꽤 유명세를 탄 적도 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도 밥을 먹고, 거북한 배와 나른함으로 오전을 커피로 도배하며 지내다가, 점심에 또 국밥 같은 거한 음식 들이키고, 졸려하면서 또 커피로 도배하는 오후에, 저녁은 인스타 올려야 된다고 맛집을 찾아갔다. 그러면서 점점 생활은 개차반이 되고, 회사 일도 겨우겨우 해내는 수준에, 자기 계발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먹는 시간이 없어지면서, 여유롭게 많은 일을 한다. 눈 떠서 밥 먹고 출근하기 바빴던 시절에 비하면 정말 여유롭다. 찬물 샤워로 몸의 열충격단백질을 깨우고, 물리/화학적으로 몸 상태를 점검한다. 아침에 나무와 호수를 보면서 걷는 30분은 출근 시간을 전혀 괴롭지 않게 해 주고, 회사에 도착해서는 바로 일을 할 수가 있어서 하루 종일 여유가 있다. 점심을 먹지 않으면 배가 부르지 않아 앉아있는 게 불편하지도 않고, 케톤이 충분하면 머리도 더 잘 돌아가는 느낌이다. 저녁에 아내가 밥을 먹는 장면을 봐도 식욕이 터지거나 하지 않고, 애플사이다비네거 한 잔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종일 에너지가 넘치고, 집중력이 있고, 밀도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심지어 회사와 육아를 병행해도 크게 힘들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단식의 완성은 식사다. 예전처럼 기계적으로 먹던 식사에 비해, 단식 끝에 하는 식사는 중요한 행사다. 재료의 질과 요리의 완성도에 예민해지고,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먹는 이 한 끼 식사를 보잘것없는 음식으로 때우고 싶지 않아 진다. 자연스럽게 건강하고 훌륭한 음식을 찾게 되고, 이것은 또 단식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좀 비싼 재료를 쓰거나, 비싼 음식을 먹더라도, 기계적으로 3 끼니 챙겨 먹던 시절에 비하면 식비는 훨씬 적다. 식사에서의 매스티지 실현이 가능한 것이다.






 당분간 약속이 없어서, 이제 또 한동안은 감량 시즌이다. 꾸준히 감량되는 모습을 보여서, 나의 전략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함께하는 분들이 더 동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 메인 사진은 오늘 아내에게 해 준 유사 치폴레. 근래 가장 맛있게 먹은 것 같다. 잡곡밥과 과카몰리, 소금만 뿌려서 간한 차돌박이와 토마토 볶음, 반숙계란과 그린올리브를 한 그릇에 담고 트러플 올리브오일을 뿌렸을 뿐인데 너무 맛있다고 해줘서 고맙다.



25일 차 체중 : 99.85kg (어제보다 1.9kg 감소 / 목표 체중까지 20.75kg 남음)

 - 호흡 케톤 : 8.5ppm 

 - 25일 차 식사 : 방탄 커피, 에그마요샐러드(아보카도마요네즈 이용), 과카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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