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2023.4.26)
전형적인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 농촌에서 자랐어도 나처럼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이즈음 파꽃 안부를 묻는 고향 친구도 어쩌다 간혹 있다. 마늘과 함께 대표적인 양념인 만큼 어느 집이나 당연하게 심어먹기에 흔히 보고 자랐던, 그래서 그리운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파꽃은 쉽게 볼 수 있어 흔한 꽃이다. 이즈음 텃밭 주변을 가다보면 파꽃이 피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흔해서일까? 무리 지어 피어나 눈길을 끌지만 언뜻 단순하고 수수하기 때문일까? 파꽃은 사람들의 눈길을 오래 붙잡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파꽃을 둥글게만 기억하기 쉽다.
파꽃은 4월 중순~5월 초까지 가장 많이 핀다. 4월 중순 무렵, 굵고 단단해 보이나 속이 빈 꽃대(파 잎처럼 생겼다)가 가운데서 올라 자라기 시작, 한순간 공처럼 생긴 것이 달린다. 크게 자란 파에서는 큰 꽃뭉치가, 작게 자란 포기에서는 작은 꽃뭉치가 맺히는데, 아무리 큰 포기여도 탁구공 크기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싹을 틔워 겨울을 난 것이면, 즉 묵은둥이 파라면 아무리 작아도 반드시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파꽃을 살피다 보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파가 간신히 꽃을 피운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그처럼 작은 파가 꽃을 어김없이 피우는 것을 볼 때면 생명의 강인함과 질서에 묵묵한 감동이 일곤 한다.
봄볕이 많아지면 꽃대가 쑥 올라와 이런 모습으로 꽃을 준비한다. 꽃이 아니라 수많은 꽃이 뭉쳐있는 꽃뭉치다(2023.4.27) 위, 가운데부터 꽃들이 피기 시작하는데 이처럼 껍질을 아예 벗어버린 것보다 피면서 껍질이 조금씩 벗겨지는 것이 더 흔하다 (2023.4.27)
파꽃은 스치듯 보고 말면 둥근꽃으로 기억되기 쉽다. 그래서 더욱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 둥근 그 자체가 한 송이 꽃이 아니라 수많은 꽃으로 된 꽃뭉치인지라 제대로된 파꽃 모습이 아니어서다.
탁구공보다 작았던 꽃뭉치가 점점 커져 테니스 공만큼 커진다. 셀 수 없이 많은 파꽃 봉오리들이 차츰차츰 꽃잎을 펼침에 따라 부피가 커지는 것이다. 꿀벌 덕분에 수정을 마친 꽃은 초록색으로 바뀐 후 영글어 가는데 차츰 흰색 가까운 색으로 말라간다. 그래서 한여름이 되면 꽃뭉치였던 씨앗 뭉치는 흰색에 가까운 색으로 셀 수 없이 까만 씨들을 품고 있다. 이 씨앗을 채취해 뿌리고 싶을 때마다(봄부터 10월까지) 뿌리면 된다.
파씨를 털어보면 정말 많다. 그래서 튼실해 보이는 씨앗뭉치 서너 개만 털어도 충분히 뿌릴 수 있을 만큼 정말 많이 나온다. '셀 수 없이'란 표현이 딱 맞다. 파꽃에 씨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작은 파꽃 한송이에는 3개의 씨방이 있는데 씨방 하나에 씨앗이 2개씩, 즉 그 작은 꽃 한 송이가 6개의 씨앗을 만들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파꽃이 필 때 파 꽃 앞에 잠시 앉아 꽃구경을 하다 보면 '저 작은 꽃에 꿀이 얼마나 있다고 저렇게 많은 벌이...?' 의아해질 정도로 꿀벌들이 정말 많이 날아들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올해는 날씨가 불순해 벌이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지 두세 마리 정도만 보인다. 그런데 다른 해에는 왕왕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정말 많은 벌들이 파꽃에 모이는 것을 보곤 했었다.
솔직히 꿀이 있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가까이에 있어도 향이 크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업진흥청 자료에 의하면 파꽃에는 꿀이 정말 많단다. 아마도 아까시꽃과 파꽃이 동시에 피었다면 파꽃에 벌이 더 많이 날아들 정도로 말이다. 파꽃의 꽃말은 인내다.
파꽃 확대(2023.4.26)
파(대파) 원산지는 중국 서북부로 우리는 통일신라 때부터 심어 먹은 것으로 추정한단다. 대파와 쪽파, 달래, 부추 모두 같은 집안인 부추속 식물들로 뿌리로 겨울을 난 후 꽃샘추위 속에 싹을 틔워 자란다. 이들의 공통점은 매운맛이 대표적인 맛이라는 것. 그리고 겨울을 나고자 뿌리에 당분을 듬북 저장했다가 이른 봄 새순에 당분을 밀어 올려 달짝지근 맛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시골이라고 하는 곳들을 주로 탐방하는 <신계숙의 맛터 사이클>(EBS)을 보다보면 파 구워 먹는 장면이 더러 보인다. 그런 장면이 보이면 함께 보던 남편이 파 구워 먹던 때를 추억하곤 한다. 이처럼 그런 장면이 보이면 누구나 선뜻 그때를 떠올려 낼 정도로 예전엔 봄날에 파를 많이 구워먹었기 때문이다.
2020년 4월 중순, 친정 동생에게 맛보인다고 움파(겨울을 나고 봄에 돋아 자란 파를 부르는 별칭) 몇 개를 뽑아 지하철을 탔다가 스스로 민망했더랬다. 숨겨지지 않는 진한 파 향기 때문이었다. 봄 대파는 향기도, 맛도 진하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맛있어서 전을 부쳐 먹어도 된다. 기분 좋은 매운맛이라 간장물 끓여 붓는 장아찌를 담가먹어도 맛있다.
밭을 일군다면 누구나 심어 가꿀 정도로 대파는 요긴한 식재료다. 음식마다, 특히 국물요리에는 꼭 넣기 때문인지 2021년 봄(기억이 맞다면)처럼 유독 비쌀 때도 있다.
대파값이 비쌌던 2021년 그 무렵, TV나 인터넷에서 흔히 보이던 풍경이 있었다. 물이 담긴 용기에 꽂혀 있는 굵은 대파 끝부분을 잘라 음식에 넣는 모습이었다. 베란다에 놓은 화분에 굵은 대파를 말뚝 박아놓듯 꽂아놓고 길러가며 먹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오죽했으면 파테크, 대파코인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정말 파값이 비쌌고 그래서 키워 보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을 볼 때면 '저렇게 길러(?) 먹는 파에서 어떤 영양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까? 비싸면 넣지 않으면 되지 저렇게까지 넣을 필요가 있을까?'의 아쉬움이 일곤 했다.
음식에 대파를 넣는 이유는 대파만의 영양을 섭취하고자, 그리고 감칠맛 때문일 것이다. 이미 그렇게 길러먹어 본 사람들은 경험했겠지만, 솔직히 맛은 그다지다. 점점 갈수록 빈약해진다. 결국 남는 것은 두껀워진(질겨진) 몇 겹의 대파 흰 부분, 게다가 물에 담근 경우라면 썩는 냄새까지 날 수 있겠다. 비록 말뚝처럼 박아 심었다지만 흙에 심었기에 그나마 나을 수 있겠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보다 나은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꽃뭉치 가운데가 수정을 끝낸 꽃 부분(2023.4.27)
이모티콘 옆 노란색 동그란 것이 파 꽃뭉치. 작아도 겨울을 난 것이면 반드시 꽃이 핀다(2023.4.27)
비료를 전혀 넣지 않고 소량의 퇴비로 키우기 때문인지 좀 부실해 보일까? (2023.4.27)
대파를 보다 쉽게 먹을 수 있는 방법들
1. 물 재배보다 흙재배가 영양도 맛도 우수하겠다. 물에 꽂아놓고 잘라먹는 것이 파 재배법인양 되어버렸는데 한꺼번에 구입한 파를 다 먹지 못할 때 선택하는 어쩔 수 없는, 한시적인 보관법이라 생각하는 것이 맞겠다. 농부였던 부모님은 김장 무렵 비닐포대에 파를 잔뜩 뽑아 넣은 후 흙 두어 삽을 넣은 후 실내에 두고 겨울 한동안 먹었다. 가끔 물도 주면서. 물에 담가놓고 잘라먹는 것은 이마저도 쉽지 않은 어쩔 수 없는 경우 짧게 보관하면서 먹는 것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2. 파는 베란다에서도 쉽게 자란다. 그러니 파씨를 구입해 뿌려 가꿔보자. 어느 정도 자라면 뿌리째 뽑아 먹어도 되고 잘라먹어도 되는데 다 자란 파를 말뚝처럼 박아 심어놓고 잘라먹는 것보다 맛있고 파도 잘 자란다. 한마디로 차원이 다르다. 게다가 꽃을 볼 수도 있다.
3. 4월~5월 대파 모종을 판다. 모종컵 하나에 여러 개가 심어져 있다. 이걸 하나씩 떼어내 적당한 거리를 벌려 심으면 된다. 씨앗으로 심는 것보다 훨씬 빨리 먹을 수 있다.
4. 대파 모종은 5월 중순이 지나면 팔지 않기도 한다. 그렇다면 봄에 잠깐 많이 파는 실파를 구입해 간격 벌려 심으면 된다. 이때 가급이면 실파 녹색 부분을 잘라내고(음식에 넣어 먹는다) 심는다. 그래야 뿌리가 빨리 정착한다. 대파도 뿌리째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심어놓고 잘라먹으면 되는데, 대파는 이미 다 자란 것을 수확한 것인 만큼 더 자랄 소지가 있는 실파를 심는 것보다 별로다.
6. 대파를 누구나 아는 것처럼 대략 썰어 냉동실에 두고 먹는데, 이때 봉지에 담은 후 식용유 한두 방울을 넣고 가볍게 흔들어 섞은 후 냉동 보관하면 뭉치지 않고 언다. 먹기에 훨씬 편하다.
7. 최근 몇 년 전 식료품가공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다. 어떤 채소든 동결건조해 가루로 생산해 내게 된 것. 대파나 청양고추도 마찬가지. 건조해 판매되는 제품들(라면 수프 속 파처럼)이 있으니 음식을 자주 해 먹지 않는 편이라면 이런 제품들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쪽파는 대파와 양파 교잡종이다. 대파처럼 모든 포기가 꽃을 피우지 않는다. 드물게, 그리고 대파 꽃보다 훨씬 작게(마늘만 한 크기) 대파 꽃이 필 무렵에 핀다. 그런데 씨앗을 맺을 수는 없단다. 그래서 쪽파는 씨앗이 아닌 종구(쪽파 머리가 여문 것)로 심는다.
쪽파 꽃(2023.4.27)
쪽파 꽃(2023.4.26)
쪽파 꽃(2023.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