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여니맘 Feb 24. 2023

우리 분유 유감

며칠 전(2월 20일), '이름만으로도 분유를 떠올릴 정도로 과거 분유 생산을 많이 했던 회사들이 이제는 노년층을 위한 영양식 생산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뉴스에 의하면 5일 중 4일은 성인영양식을 위해 가동하고 1일만 아기용 분유를 생산해 낼 정도라 아기 분유를 뜻하는 용어가 포함된 회사이름까지 바꾸자 검토할 정도란다.


급속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때문이란다. 공감한다. 아마도 뉴스를 본 사람 대부분 공감할 아쉬움일 것 같다. 그런데 산후관리사인 내게 이 뉴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낄 그런 아쉬움 정도로만 와닿지 않는다. 씁쓸함도 있다. 해당 기업의 '안일함'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지난 한 해(2022년) 케어해 준 산모는 7명이었다. 이들 중 케어하는 기간에 우리 분유를 먹인 산모는 단 한 명. 나머지 6명은 수입분유를 먹였다. 그들이 처음부터 수입분유를 먹였던 것은 아니었다. 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는 우리 분유를 먹였다. 그런데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수입분유로 갈아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 산모를 대표하진 않는다.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여하간, 요즘엔 (아마도) 우리 분유보다 수입분유를 먹이는 산모가 더 많은 것 같다.


"친구가 좋다고 해서요!"

"배앓이를 하지 않는다고..."

"황금똥 분유로 유명하잖아요!"


왜 수입분유를 선택했나? 물어보면 이처럼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입분유를 선택한 이유 중 '배앓이를 잘하지 않는다'가 있는데, 솔직히 아기 뱃속 사정을 모르기에 어떻다 말하진 못하겠다.  둘 다 먹은 후 트림과 역류 때문에 어떻게 해줘야 하는 것은 같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먹여도 아기마다 다르기에 비교는 더욱 쉽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수입분유를 먹는 아기 중에는 샛노란 똥, 즉 황금똥을 싸는 경우가 많다는 것. 수입분유를 먹는 아기들은 대체적으로 덜 지린다는 것. 대부분 1일 1회 혹은 2회 똥 싸는 경우가 많다는 것. 너무나 자주 지려 기저귀 발진까지 갔던 한 아기가 수입분유로 바꾸고 더는 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입분유를 처음 접한 것은 2012년 전후. 지난 십 년 동안을 돌아보면 그렇다.


과거 우리 분유들. 오른쪽 만세부르는 아기는 우량아 선발대회에서 수상한 아기이다. 


"우리나라 분유는 타기도 어렵다면서요? 내 친구가 그래서 둘째 땐 무조건 수입분유로 먹이겠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래요?"


결론부터 말하면 "네. 맞아요", 혹은 "수입분유 타기가 훨씬 쉽긴 해요"다.  


우리 분유는 필요한 물 일부를 젖병에 붓고 권장량의 분유를 넣은 다음 조금 흔들어 섞는다. 그런 후 나머지 물을  넣고 흔든 후 체온 정도로 식혀 먹인다. 반면 수입분유는 필요한 물을 아예 처음부터 모두 넣은 후 권장량의 분유를 넣고 흔든 후 식혀 먹이면 된다.


이렇게 설명하지만, 둘의 차이는 다. 국내분유는 물을 2차에 걸쳐 넣게 된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런데 나머지 물을 채울 땐 보통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분유를 넣고 섞이도록 조금이라도 흔들어 섞다 보면 거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거품이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거품 사이로 물과 눈금을 확인하며 부어야만 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어려울 것이 없겠는데, 아기가 먹겠다고 보챌 때 타기 일쑤라는 것이다. 정확하게 타려면 편편한 바닥에 놓고 물을 부어야 한다. 그래서 허리는 엉거주춤, 눈은 젖병에 두고 물을 붓는다. 급한 마음에 눈금 보기가 쉽지 않다. 아차! 넘어뜨리는 일도 다반사, 처음부터 다시 타야 한다. 그새 아기는 울고 또 운다. 그렇다 보니 힘들다.


그런데 수입분유는 앞에서 설명한 대로 처음부터 필요한 양의 물을 부은 후 적정량의 분유를 넣고 흔들면 되니 훨씬 쉽고 빠르게 탈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앞에서 말한 대로 황금똥을 싸는 데다가 하루에 한두 차례 싸는 것으로 그치네. 어제까지 그렇게 지렸던 아기가. 그래서 기저귀 발진 직전까지 가기도 했던 아기가 수입 분유 반나절 먹였을 뿐인데 지린 것을 멈췄네. 이런데 어찌 수입분유를 선택하지 않으랴.


솔직히, 예전엔 '분유까지 수입품을 먹일 필요가 있나?', 다소 부정적이었다. 막연히 찝찝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까지 말한 수입분유들의 두드러진 장점 때문이다. 그와 함께 우리 분유 회사들이 참 안일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과거 우리나라 분유들


우리 분유 역사까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1980년대 이미 분유가 많이 보급되었고, 1990년대 붐까지 일 정도로 정말 많이 먹였으니. 얼핏 봐도 도입된 지 몇십 년이 훌쩍 지났음을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거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처럼 역사가 꽤나 되었다면 최소한 수입분유처럼 쉽게 탈 수 있도록 바꿀 수는 있었지 않았을까? 바라고 기대하게 되면서 아쉬움이 더해졌었다.


이런 기대를 안 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어느 나라 분유이건 우리나라 젊은 엄마들이 먹이는 몇몇 수입분유들 모두 타는 방법이 똑같기 때문이다.


'수입분유가 우리 분유보다 타는 것이 훨씬 쉽다더라'가 수입분유를 선택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이유는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엄마들이 왜 수입분유를 선택했을까? 고민했더라면, 목소리라도 들어봤다면 지금과 같은 참패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 분유를 먹인 아기 중 무난했던 아기도 많다. 솔직히 여전히 분유까지 수입해 먹여야 하는 것이 한편 아쉽긴 하다. 그런데 훨씬 쉽고 빠르게 탈 수 있는 수입분유들의 장점을 들먹이는 산모에게 할 말이 없다. 숙련된 나도 우리 분유 타는 것보다 수입분유 타기가 훨씬 수월하니 말이다.



최근 몇 년 날개 달린 듯 급속하게 확산 중인 육아템이 있다. 몇 번 먹일 물과 분유를 미리 넣고 필요할 때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분유를 타주는 분유제조기다. 분유제조기가 급속하게 확산되는 것은 뭣보다 편리해서다. 우리 분유보다 타기 쉽다는 수입분유까지  타는 것을 힘들어하거나 번거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훨씬 까다롭고 번거로운 우리 분유를 굳이 선택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좋다니까 먹여 보고는 싶은데... 우리 건 떨어지면 마트 가서 사면 되지만 수입분유는 안 그렇잖아요."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면서요? 그래도 한꺼번에 많이 사야 해서 부담스러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처럼 말하는 산모들이 있곤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분유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산모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직구로 구매해도 일주일 안에는 온다. 2~3일 안에 배송받을 수도 있다.  물론 현지에서 팔리는 것과 같은 것이 말이다. 마트로 달려가 1통씩 살 수도 있다. 새벽 배송으로 받을 수도 있다. 예전엔 오직 직구로만 구입했던 수입분유들이  국내에서도 생산되기 때문이다. 우리 분유는 더더욱 참패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조건이 되어버린 것이다.


더욱이 요즘 육아 필수품처럼 되어가고 있는, 특히 유명한 몇몇 분유제조기들이 수입제품이다 보니 수입분유 조제비율에 맞춰져 있다. 


이런 생각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들어 우리 분유 업체에 일종의 유감? 아쉬움? 같은 것들이 많았기에 며칠 전 뉴스를 계기로 이 글을 쓰자 싶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중 더더욱 아쉬워지고 말았다.


'이러다가, 이렇게 우리 분유가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나라 아기들 모두 수입분유만 먹고 자라는 날까지 오는 것 아냐?'


이런 상념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기와 한 침대서 자도 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